무식하면 정말 용감할까?

우리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합니다. 무모한 도전을 하거나 말이 안 되는 것을 우기는 사람들에게 주로 이러한 표현을 씁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누구보다도 아는 체하고 나선다는 뜻입니다. 같은 맥락의 속담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이와 같은 속담이나 격언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찰스 다윈은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갖게 한다’고 했으며, 마크 트웨인은 ‘곤경에 빠지는 것은 무언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엉터리로 배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다’고도 했습니다.

서양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이와 관련한 금언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고 말했습니다. 예기에는 ‘배운 후에야 부족함을 안다(學然後知不足)’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학사는 ‘난 무엇이든 다 안다’고 느끼는데 대학원에서 석사를 졸업한 사람은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 느끼며, 교수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말하면 다들 믿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많은 말들이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사람들의 행동이 흥미롭습니다.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는 것이 있습니다. 1999년 코넬 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과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의 결과입니다.

더닝과 크루거는 자동차 운전, 체스 게임, 테니스, 문법, 논리적 사고력 등의 분야에서 자신이 얼마나 잘 알고 있다고 느끼는지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아는 것이 적은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그 분야에 유능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능력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발생한 결과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이 실험은 심리학의 수많은 연구 중 하나이며, 효과에 대한 비판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후에 수행된 어떤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정확한 상태를 알려주더라도 자신에 대한 판단의 오류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있는 근거 없는 낙관성을 유지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의 오류들을 범하게 되는 것일까요?

인간은 느끼고 생각하고 사고하며 행동합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우리의 뇌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을 인지라고 하는데 인지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며, 받아들인 지식을 판단하는 일체의 과정을 나타냅니다. 또한, 인지는 사고, 지각, 기억, 학습, 문제 해결, 언어 이해 등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포함합니다.

최근에는 메타인지라는 교육학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메타인지란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능력이 메타인지입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메타인지에 대해 ‘자기 자신을 거울로 정확히 보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학창시절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어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시험 보는 꿈을 꾼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말에 동감한다는 것은 시험에 대한 좋은 기억보다 힘들고 안 좋은 기억들이 더 많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얼마만큼 학습을 잘 따라가고 있는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것이 발견되면 그 부분을 보충해서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험은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워 평가하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시 말해 시험이 우리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교육시스템이 너무나도 제도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험이 중요해지고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해서 성적이 잘 나올까를 고민하다가 온갖 사교육들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학습을 위한 뇌 구조에도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시험 볼 때를 떠올려 보면, 분명 공부할 때는 다 아는 것 같았는데 막상 시험지를 받아 드니 이것도 답인 것 같고 저것도 답인 것 같던 기억이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 아는 문제인 것 같아 풀어 내려가려고 하면 그 과정이 머릿속에서는 맴돌지만, 막상 연필이 움직이지 않던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메타인지는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일까?’를 인지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모른다면 왜 모르는지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하여 효과적인 학습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학습에도 속도가 붙게 됩니다.

선생님이 제시하는 방식에 대한 의문점을 가지기도 하고 나의 방식에 대해 고민도 하며 스스로 창의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메타인지가 잘 발달한 학생들의 학습수행 능력이 뛰어납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이 메타인지는 어떻게 해야 발달할 수 있는 걸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도 이 메타인지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 스스로가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습이 부족하면 학원을 다니거나 보충수업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모르면 왜 모르는가를 인지하는 것은 결코 학습이나 보충물을 통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 우리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을 잘 훈련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상태를 파악하고 우리가 지금 어느 선에 와 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말씀에 늘 깨어있으라고 하셨나 봅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생각에 대해서도 잘 나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린도전서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린도전서 8:2)

메타인지는 ‘생각에 대한 생각‘입니다. 이번 기회에 말씀에 기초하여 주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 생각을 어떻게 잘 조절해야 할지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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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경
연세대교육대학원 석사. 홍익대대학원 교육학 박사 수료. 창천감리교회 장로.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이사로 활동하며 술, 담배, 마약 중독문제와 태아알코올증후군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영혼육이 건강한 미래세대 세워 가기위해 부모와 자녀 교육에 관해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