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이데올로기- Forum on the Family 2023

번역_ 윤미리 선교사

Asian woman using her hands to protect against incoming dangers

성전환자의 삶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 도와줘야

가정과 생명의 기독교적 가치를 지키는 운동 단체 Family First에서는 지난 6월 30일 오클랜드 Due Drop Centre에서 <담대한 문화 세워가기>라는 주제로 연례 정기 포럼을 개최했다.

뉴질랜드의 가정을 강건하게 하고 생명을 보호하는 문화의 힘을 불어넣고자 가정중심의 사회 변화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국제 네트워크의 단체와 학자, 리더들을 강사로 초대한 이 포럼에는 뉴질랜드 각지에서 800여 명의 청중이 참석하여 뜨거운 열기 가운데 진행됐다.

강사: John Anderson (Aus)- Woke Culture/ Walt Heyer (US)-젠더 이데올로기/ Lila Rose (US)-낙태/ Kevin Sabet (US)-마약/Deborah Acason (Aus)- 공정한 여성 스포츠 / John Steenhof (Aus)-종교 자유

다음은 월트 헤이어가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월트 헤이어는 8년간 트렌스젠더로 살았다. 현재는 어린이들을 호르몬 요법과 수술로부터 보호하고 성전환자의 삶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돕는 열정으로 살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며 컨퍼런스, 교회, 대학, 텔레비전 쇼에 출연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SexChangeRegret.com과 최근 저작, 성전환자의 생존기를 통해 후회, 고통, 비극적인 결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월트의 이야기는 Kid Dakota and The Secret at Grandma’s House and in his autobiography, A Transgender’s Faith. 책에서 소설 형태로 읽을 수 있다. 다른 책들로는 종이로 만든 성 그리고 성(Paper Genders and Gender), 거짓말과 자살(Lies and Suicide). 2018년 뉴질랜드 가정 포럼에서 강연했었다.<편집자 주>

Sex changes in Serbia

“저 위의 빨간 스웨터를 입은 사람은 여성이 아닙니다. 40년 전의 나입니다. 나는 로라(Laura)라는 이름으로 8년을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아내 케이시와 같이 왔습니다. 오늘 나는 어떻게 저 빨간 스웨터를 입은 사람이 만들어졌었는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나는 4살 때부터 여성복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을까요? 나는 지금 내 아내와 함께 ‘성전환 후 후회’라는 단체를 운영하며 전 세계에서 강연하고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의 웹사이트는 160여 개국에서 200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으며 우리를 거쳐 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부터 연락을 받고 있습니다.”

‘성전환 후 후회’웹사이트에 160여 개국에서 200만 명 이상이 방문
나는 1942년에 태어났는데 우리 집은 매우 가난했고 게다가 진주만 공격도 있던 전쟁 시대라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이미 자녀가 있던 어머니는 저를 임신하셨지만 원치 않으셨어요. 내가 두살 반쯤 되었을 때 어머니는 프라이팬으로 나를 때리셨다고 합니다.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나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사랑받을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정체성 혼란이나 동성애와는 관련 없는 것입니다. 그냥 사랑 받고 싶었던 어린아이였을 뿐입니다.

엄마는 그냥 나를 싫어했습니다. 나는 엄마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4살 때 나를 할머니 집에 보내 놓았는데 할머니는 여성 옷을 만드는 재봉사였어요.

내가 카우보이 옷을 입었을 때는 누구도 나를 칭찬해 주지 않았어요. 관심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댁에서 할머니가 만들어 준 보라색 시폰 드레스를 입었을 때는 모두 나를 예쁘다며 박수 쳐 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여자 아이 드레스를 입으면 누군가가 나를 사랑할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저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이때의 보라색 드레스는 감정적, 정신적인 아동학대였습니다. 이것이 트라우마 시스템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정체성이 형성될 때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학대고 트라우마입니다. 평생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나는 할머니 집에서 보라색 드레스를 가져왔습니다. 그 드레스를 입으면 귀엽고 잘생겨 보였으며 멋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매를 때리는 무지한 방법으로 나를 남자답게 만들려 했습니다. 이 보라색 옷 때문에 나는 9살 때 이복 삼촌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습니다.

트렌스젠더리즘을 다시 생각한다 Rethinking transgenderism

부모님께 이복 삼촌이 한 짓을 일렀지만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나는 모든 것을 속으로 삼키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런 것은 전부 성전환에 관한 얘기가 아닙니다. 그저 어린아이에게 일어났던 얘기일 뿐입니다.

이렇게 자란 나는 누구도 신뢰할 수 없었고 이런 일들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13살 때는 내가 잘못 태어난 건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과 1년 내내 엄마가 나를 사랑하나 안 하나 고민에 빠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괴로움을 안고 밤마다 울면서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왜 아무도 나를 남자로 좋아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여자 친구와도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들은 라디오 방송의 영향으로 나는 잘못된 몸으로 태어났나보다 생각하고 수술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우리를 주일학교에 내려주고 집에 가서 아이 없는 자유시간을 즐기며 맥주를 마시는 그런 분들이었습니다.

나는 차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있는 혼다 자동차 회사 개발부에서 일했습니다. 자동차 모델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 30-40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돈도 많이 벌어 상류층이 됐지만 보라색 드레스와 성적 학대의 기억은 해결이 안 되었습니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마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밖에서 볼 때는 매우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속사람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해결되지 않던 중에 성전환을 위해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결혼 생활을 하던 중 치료 2년 만에 이혼 소송을 당하게 됩니다.
40년 전에 성전환 수술을 하게 된 것은 엄마에게 프라이팬으로 맞고, 할머니의 보라색 드레스, 이복 삼촌으로부터의 성적 학대의 결과였습니다. 나는 로라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었지만 세상이 모두 가짜 같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성전환 문제가 아니라 어린 시절 경험한 트라우마의 문제입니다
저는 성전환하려는 사람에게 다음의 10가지를 묻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 질문에 해당하는 답을 듣게 됩니다.

  1. 어린 시절 감정적인 학대를 당했는가?

2. 가족 중에 감옥에 가거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던 사람이 있는가?

3. 가족 중에 우울증이나 자살한 가족이 있었는가?

4. 어린 시절에 신체적 학대를 당했었는가?

5. 어린 시절에 성적으로 학대를 당했었는가?

6. 부모의 별거나 이혼으로 버려짐을 당했었는가?

7. 가정 폭력을 목격한 경험이 있는가?

8. 가족 중에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있는가?

9. 감정적으로 돌봄 받지 못했는가?

10. 육체적으로 돌봄 받지 못했는가?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성전환 시도자들은 감정적인 학대를 경험한 일이 많았습니다. 이 중 감정적 학대가 가장 복잡한 것입니다. 때려서 피나게 하는 것만 학대라 생각하기 쉽지만 남자 아이에게 드레스를 입히는 것도 감정적 학대입니다.


이제 영국이나 스웨덴은 어린이에게 호르몬 투약을 중단했습니다. 핀란드, 프랑스, 노르웨이도 멈추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호르몬제 투약이 간을 상하게 하고 정신 건강에 문제를 가져오며, 뼈를 튼튼히 자라지 못하게 하고, 골다공증과 심혈관 질환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사춘기 증세는 병이 아닙니다. 사춘기를 잘 통과해야 건강한 뇌와 몸이 됩니다. 어린이에게 호르몬제를 주입하는 것은 절대적인 어린이 파괴입니다.


나는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되고 노숙자가 되어 캘리포니아 롱비치 거리에서 길바닥에 토하는 망가진 삶을 살았습니다. 한때는 부자였었지만 이제 차도 돈도 없이 토끼털 외투에는 토사물을 묻히고 망가진 나였습니다. 그러다가 AA(알코올 중독 회복 프로그램) 모임에 참여하고 싶으면 연락하라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서 근처 카페에서 동전을 빌려 연락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나를 찾아와 줬고 당시 나는 너무 냄새나고 망가져 있었기에 그들이 나를 차고에 있게 했습니다. 거기에 카우치도 갖다줬습니다. AA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고 예수님의 능력과 은혜로 씻음 받아 이제 37년째 맑은 정신으로 살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사람이 알기를 원합니다
어떤 어린이도 다른 성의 옷을 입는 것이 필요하지 않으며 호르몬 요법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남자아이에게 여자아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사회를 망가뜨리는 큰 거짓말입니다.


자기의 생식기를 잘라내고 자랑스럽다고 하는 것은 모든 걸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죽을 날도 머지않았으니 내 힘을 다해 외치는 바입니다.


나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한 4단계에 있었고 여성을 위한 회복의 집에 있었습니다. 기독교 치료사를 만나서 나에게 상처를 줬던 모든 일들을 21장 정도의 종이 조각에 적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다뤄야 좋을지 모르겠는 것들을 말입니다.


나는 예수님께 이 모든 걸 넘겨드리기 원했고 그 기독 심리 치료사와 거의 3시간째 한 줄 한 줄을 짚으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 이 모든 수술한 것을 잘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그 시점에서 예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종이에 적힌 모든 것을 다 통과했을 때 우리는 그 종이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나갔고 치료사는 그 종이 뭉치 가장자리에 성냥불을 붙였습니다. 살랑거리는 바람을 타고 불꽃이 퍼졌으며 종이는 재가 되어 날아가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정말 카타르시스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내 모든 속을 쏟아 놓고 내 잘못을 고백했습니다. 엄마나 아빠나 삼촌이나 다른 그 누구에 대한 원망도 없었습니다. 거기엔 오로지 나와 예수님만 있었습니다.


그 치료사가 사무실로 돌아가서 같이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가 기도하기를 시작했는데 그가 한참을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지며 나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는데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고 내 앞에는 작은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바로 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더니 그 작은 남자아이를 팔로 안아 올리고 나를 향해 돌아서시더니 “너는 이제 나와 함께 영원토록 안전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은 주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던 내 삶을 구속하시고 예수님께 다시 세우기 위해 찾아오신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 계신 모든 분께 아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께 굴복하고 완전히 잘못했음을 고백하며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오실 것이며 당신의 삶을 구속하실 것입니다. 그가 구속 못 할 삶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그날 후로 전 세계에서 자기 정체성의 문제로 씨름하는 수천 명의 사람을 돕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이 일을 해 오면서 깨달은 것은 미안하지만 이것은 정말 젠더 문제가 아니라 어린 시절 부정적 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s)이나 인터넷에서 애니메이션이나 틱톡 중독된 경우와 같이 인터넷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젠더 문제가 아니라 트라우마의 문제
나는 청소년에게서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18살 때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19살인데 자기가 일생일대의 실수를 했노라며 되돌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15살부터 트렌스젠더였는데 부모님은 그저 그를 사랑하셨지만 젠더클리닉에 데려가서 사춘기 호르몬 차단제를 맞게하고 18살에는 성전환수술을 받게 했습니다. 내가 좀 더 이렇게 된 원인을 알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15살 때부터 포르노그라피에 중독되었다고 했습니다. 음란물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잃어버렸고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했다고 말했습니다.


포르노그라피는 뇌를 핵심 부분에서 파괴하며, 우리의 성관계, 개인적 관계 및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도왔던 사람 중에는 매우 강력한 사회적 전염 현상에 휘말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정체성 장애가 아니라 사회적 전염 현상인데 그룹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서 자신을 트렌스젠더로 밝히면 어린이들은 사랑과 관심을 받기 시작하고, 청소년이라면 친구를 얻기가 쉬워집니다.


부모님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들께 부탁합니다. 자녀들이 컴퓨터를 가지고 자기 침실로 들어가지 않게 하십시오. 부엌이나 거실 같은 공공장소에 두십시오. 만약 스마트폰이 있다면 밤에는 안전한 상자에 넣어 두세요.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를 보며 뇌를 파괴할 것입니다. 자녀의 컴퓨터 검색 기록을 확인하고 자녀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부모님들은 발견한 내용에 놀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젊은이를 도울 수 있습니다. 그들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찾고 트라우마 치료 센터에 보내야 합니다. 트라우마 치료 연구소는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성경 기반의 트라우마 치료 센터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젠더 문제가 아니라 트라우마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포럼 동영상: https://youtu.be/MvuGqHHZw2Y?si=tYyji1zBRTReRV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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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미리
장신대 신대원 졸업. 뉴질랜드 조이풀교회 사모. Prayer Together 대표, 뉴질랜드를 위한 기도 제목과 주요 이슈를 이메일로 전하면서 한국 에스더기도운동본부에서 제공하는 한국과 북한을 위한 기도제목을 정리하여 독자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