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정말 자유를 주는가?

서석민 목사

은혜와 함께 주어진 억울함?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단연코 ‘자유’ 일 것입니다. 때로 정치권에서도 이 단어를 자주 부각될 만큼 현대인들은 자유를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실 때부터 자유의지를 부여하셨고, 예수님 또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고자 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대부분 좋은 말씀으로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진리가 자유함을 주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알고 진리를 알아서 내 삶은 정말 자유해졌나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요? 진리를 알면 오히려 자유가 없어지고 더 매이게 되는 것은 아닌가요?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나는 대학교 1학년 때에 성경공부를 하다가 예수님을 진지하게 믿기로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고 주님이 나를 구원하셨다고 하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변의 믿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서 힘든 마음이 함께 공존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변 친구들이 가진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억울함이었습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젊은 나이에 예수님을 믿어서 나의 청춘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고 이렇게 매이게 되었는가? 나도 내 친구들처럼 자유롭고 싶다.”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분명히 있었지만,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러한 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앙생활을 하는 나보다 내 친구들이 자유해 보였고, 그것이 부러웠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때에는 복음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복음과 구원을 예수님 믿고 “죽어서 천국에 가는 문제”로만 이해하는 개념이 강했기 때문에 죽기 전까지의 나의 현재의 삶과 복음이 주는 축복을 연결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은 것이 감사하면서도 여전히 나에게 더 좋아 보였던 option은 예수님 옆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던 죄수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했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체득하면서 내가 가졌던 이러한 오해가 풀려지고, 복음이 죽음 이후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에 어떠한 축복을 주는지, 무엇보다 복음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진리가 주는 자유함
대부분의 사람은 자유를 생각할 때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맞는 측면이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의 ‘자기 중심성’이라는 죄성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감춘 것에 불과합니다. 자유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자기 중심성’을 가지고 자유를 행하면 내 자신의 삶과 주변 이웃들의 삶과 이 세상을 망가뜨리는 자기 파괴적인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내가 행하는 자유가 오히려 나의 삶과 주변 이웃의 삶을 망가뜨린다면 과연 그것이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유에는 분명히 그 자유가 파괴적인 결과를 주지 않도록 보호하는 경계선 (boundary)이 필요합니다.

우리 두 아들이 어렸을 때에 놀이터를 데리고 가면, 대부분의 놀이터에는 fence라는 boundary가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서 필수적인 Boundary가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만큼은 아이들도 마음껏 자유롭게 놀 수 있고, 나 또한 불안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Boundary가 참된 자유와 행복과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복음이 주는 진리라는 것을 하나의 boundary로 볼 수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더 자유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자유라는 것은 오직 진리라는 boundary 안에서만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 boundary는 어떻게 설정이 되는 것일까요? 우리의 존재와 본성에 맞게 설정이 되야 합니다. 물고기는 그 존재와 본성상 물 안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만약에 물고기가 자신의 자유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물 밖으로 나간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고기의 본성이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재와 본성을 가장 잘 아시기에 우리에게 맞는 boundary를 설정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안에서 사는 삶이며, 우리가 따르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본성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알 때에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선과 악을 판단하고 내 마음대로 사는 자기중심성이 얼마나 위험하고 해로운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과 명령을 반항심으로 바라보지 않게 하고 신뢰하게 하며 순종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안에 있을 때에 우리는 가장 자유하고 안전하고 평안을 누리며, 본래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살 수 있게 됩니다. 복음의 진리를 알 때에 우리는 그래서 참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 무엇이 옳고 그른 지, 무엇이 위험한지 인지하지 못할 때에 부모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안돼! 하지 마!” 입니다. 그것은 아이의 자유를 빼앗기 위험이 아니라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신앙을 처음 가지게 되거나 신앙이 어릴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들이 자유를 억압하는 것들처럼 보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 해야 할 것들이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우리의 행복과 평안을 위한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안돼! 하지 마! 이거 해야 해!!”라고 외쳤던 그때의 마음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