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리

“배가 고파서.”

사람이 먹지 못하고 굶는 날이 길어질 때 본능적으로 먹을 것을 훔쳤다가 잡혀 하는 말이다. 이와 다르게“먹고 살려고” 한다면. 사람이 평생을 사는 동안에 겪는 어렵고 힘들고 다투어야 하는 생존이다. 먹고 산다는 것이 남과의 경쟁이고 투쟁이며 전쟁이다. 이는‘사느냐 죽느냐’의 절박한 상황이고 여건이다. 사람은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잘 곳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의 생리적인 주기를 따라 산다. 남보다 더 먹고 살자고 하는 일에 자신에게 주어진 생애의 시간을 쓴다. 조금만 더 하면서 고민하고 고단하게 고생하면서 고난도 견디고 살다가 정작 고장 난 몸을 치료하려고 악착같이 모은 돈은 다 쓰고도 못 고치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남보다 더 가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훔치거나 빼앗은 것을 숨기고 감춘 것이 드러나면 수치를 가려보려고‘먹고 살려고 그랬다’라고 변명할 때가 온다. 사람에게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욕구이다. 다만, 의식주를 넘어서 탐심으로 이어지는 부정과 부패가 의도적이었다면 나쁜 것이다.

세상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세상을 만든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사람의 정직과 사회의 공의가 공존할 때 공생하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정치와 경제의 부정과 부패보다 속으로 뿌리내린 교육과 종교의 윤리와 실천이 사회에서 책임지는 상태에 따라 죽어가는 나라인지 살아나는 나라인지 드러나게 된다.

바르지 못하면 자꾸 거짓말로 변명하고 잘못을 나에서 남으로 돌린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법리를 이용하는 기술자가 있다. 사람에게는 근원적인 죄에 관한 양심이 있어 악한 자일지라도 죄와 죽은 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의 죄를 씻어줄 미신을 믿고 의지하고 신명을 따른다. 자신을 포장하고 보여주기를 원하고 과시하기 좋아한다. 허영을 유지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하면 찌르는 창이 되고 자신에게 불리하면 막으려는 방패가 된다. 보이지 않는다고 곁에 없는 것은 아니다. 죄는 흔적을 남긴다.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죄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다가 때가 되면 드러나고 알려지게 되어 수치를 당하는 그날이 반드시 온다.

나에게 유리하다고 말하고 불리하다고 숨긴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다. 먼저 예수의 이름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회복되어야 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을 체험하게 되면 죄와 악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러면 입으로 말하는 거짓말이 줄어들다가 없어진다. 거짓과 악을 멀리하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것으로 살게 되니 ‘먹고 살려고’를 염려하지 말라. 다만,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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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현
본지 발행인. 마운트 이든교회 담임.“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생명구원”(요한복음 20:31) 위해 성경에 기초한 복음적인 주제로 칼럼과 취재 및 기사를 쓰고 있다. 2005년 창간호부터 써 온‘편집인 및 발행인의 창’은 2023년 446호에‘복 읽는 사람’으로 바꿔‘복 있는, 잇는, 익는, 잃는, 잊는 사람과 사유’를 읽어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