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의 통곡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으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쓰나미가 발생했다. 당시 피해를 입은 국가는 모두 12개국이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하여 스리랑카,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소말리아에까지 광범위한 피해를 입었다. 사망자 숫자는 30만 명에 이르고 이 중 3분의 1은 어린이였다. 방송에서는 온종일 처참한 피해 상황과 가족을 잃은 남은 자들의 울부짖음을 방영했다. 

그것을 보며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하루아침에 생활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매일매일 방송을 통해 들려오는 그들의 통곡이 마음 한편에 큰 아픔으로 남았다.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마음은 간절한데 그 당시 우리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하나님께서 빌딩과 학교를 주셨지만 빌딩은 8개 층이 비어 있었고, 학교는 매달 감당하기 어려운 적자가 나고 있었다. 종이 한 장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어 이면지를 활용하였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없는 암담한 상황이었으나 그들을 돕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고민하다 구호단체에게 보낼 2천 달러짜리 수표를 끊었다. 그 당시 상황으로는 우리에게 이것도 큰 금액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질책하시는 음성이 들려왔다. 

“2천 달러로 누구를 돕겠다는 거냐?”

나의 인색함이 부끄럽고 죄송했다. 하나님께서 빈손이었던 우리에게 빌딩을 주시고 학교를 주셨는데 어렵다는 핑계로 겨우 2천 달러로 생색을 내는 믿음 없는 내 모습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수표를 찢어버리고 2만 달러짜리 수표를 다시 끊었다.

다음 날 태국에서 8년간 선교사로 활동했던 학교 디렉터를 불러 이 금액을 태국의 구호단체에 직접 보내도록 부탁했다. 비록 은행 돈을 빌려 쓰는 처지였으나 이렇게라도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나니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며칠 뒤 태국으로 돈을 보내 주었던 학교 디렉터가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나는 속으로 그가 어려운 중에 이렇게 구제하는 모습에 감동되어 감사의 인사를 하러 온 줄로 생각했다. 대화 중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나는 당신의 재정 관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소. 학교가 이렇게 어려운 중에 있는데 어떻게 그 큰 돈을 이렇게 보낼 수가 있단 말이오? 나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물질사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한참 동안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조용히 이야기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나는 그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환경을 바라보고 살아 갈 때가 많다. 능력이 되고 형편이 되어서 구제를 하려면 절대로 할 수 없다. 어떤 형편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어려운 분들을 도와야 한다.

바울이 3차 선교여행 때 흉년으로 고통 당하는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하여 구제 연보를 모았다. 그때 여러 성도들이 어려운 중에 십시일반 연보를 했다. 특별히 마게도냐 교회들은 ‘극심한 가난’ 속에 오히려 풍성한 연보를 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1-2)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중에도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리고 반드시 풍성하게 갚아 주신다. 어려운 중에 드린 2만 달러가 우리 사역에 큰 축복의 열매로 돌아왔다. 이 사건 이후 하나님은 하늘문을 열어 물질의 복을 쏟아부어 주셨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 21:13)

선교·영어 장학생
뉴질랜드인이 경영하는 영어학교에서 수년간 부학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일을 한 적이 있다. 전 세계 청년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그 학교에 몰려왔다. 청년들을 바라볼 때마다 해외 영어 연수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가졌으나 결코 이룰 수 없었던 나의 청년 시절이 떠올랐다. 

그 당시 해외 연수를 간다는 것은 소수 특권층의 자녀들이나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세월이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웬만한 중산층 자녀이면 영어 연수를 올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도 한국 청년들이 제법 많이 왔다. 그들을 볼 때마다 어렵게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의 자녀들이 생각났다. 부모님이 목회자라는 이유로 극한 가난 속에서 상처받고 지내는 많은 목회자 자녀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약간의 여윳돈이 생겼을 때 한국에서 어려운 목회자 자녀 대학생 3명을 선발하여 학비를 내주고 6개월간 영어 연수를 시켰다.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좀 더 많은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으나 학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나의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매년 20명까지 연수 기회를 주도록 재정적인 여건을 만들어 주셨다. 그 당시 그 학교에는 매년 1천여 명이 넘는 중국 학생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때 하나님께서 중국 선교에 대한 강한 열망을 주셔서 우리 장학생들과 함께 유학생 교회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외국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남의 학교에서 복음을 전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마음 한편에 우리 학교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간절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11층 아름다운 선교센터 빌딩을 주셨을 때 그 빌딩 안에 중국 사람들이 세웠던 아름다운 영어학교가 있었다. 우리가 빌딩을 구입하자 학교 오너가 우리에게 영어학교를 거의 돈을 받지 않고 양도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또 기적을 행하셨다. 

그 후로 매년 20명에게 주던 장학금을 200명에게 주게 되었다. 장학금만 매년 30억에 달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늘문을 열어 필요한 물질을 쏟아부어 주셨다.

지난 20여 년 동안 3천여 명에게 장학 혜택을 주었고, 신앙 훈련을 통해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이 장학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외국 영혼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수백 명의 목회자와 선교사가 배출되었다. 

최근에 10년 전 장학생으로 이곳을 다녀간 한 자매로부터 아름다운 메일을 받았다. 참고로 이 자매는 남편과 함께 르완다에서 의료선교를 하고 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제25기 뉴질랜드 해외 연수 선교 장학생(2012년) 김한나라고 합니다. 뉴질랜드에서의 날들이 기억납니다. 너무 많은 장학생들이 있어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PPT를 한다고 늘 앞에서 예배드렸는데 졸아서 목사님 주먹에 머리 박은 기억이 나네요. 함께 살던 저희 집 뉴 알톤(장학관)에서 목사님 2명, 사모님 1명, 선교사님 3명과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꾼들로 자랐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아멘!! 예수님이 주인 되심을 기뻐하며 성령에 매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데 쓰임 받기를 간구합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씨앗들이요. 아직 깊은 기도의 단계는 아니지만 단체 카톡을 보며 중보하겠습니다. 늘 영육 간에 강건하시고 씨앗 심는 사역의 열매를 보는 기쁨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하려 하심이라”(고후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