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새로운 chapter가 열리다

나이 65세이면, 과거에는 인생 황혼기였는데 지금은 인생 황금기다. 100세 넘게 사시는 김형석 교수님은 ’되돌아보니 65-75세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하신다. 인생의 열매를 수확할 시기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가정적 책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고 자신을 완성해 나갈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인 것 같다.

1/3 잘 놀고, 1/3 잘 일하고, 1/3 잘 섬긴다는 나의 시니어 라이프, 잘잘잘 333 전략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잘 놀고, 잘 일하는 일은 그런대로 풀리고 있는데 주를 섬기는 일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었다. 향후 맞이하게 될 인생 황금기 10년 동안 주님께 드릴 헌신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어느 날 그 해답을 여는 깨달음을 얻었다.

광야에서 진리와 만나다
조기 은퇴는 확실히 모험이었다. 모든 보호막이 걷히고 광야에 내 던져진 기분이었다. 당장 보장된 것이 없었고, 주변에서 일을 돕던 분들이 없어지니 완전 이민 초보자가 되어 버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했다. 나이는 들었고, 가진 기술은 없고, 특별한 인맥도 없는 이민자로서 인생을 새롭게 셋팅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잘잘잘 전략을 하나씩 이루어 나갔다. 매일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자세는 낮아지고, 관계는 정리되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보면서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그러던 중 영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제 이 나이에 이 경력에 말씀 읽고 묵상하는 일에 매이지 않아도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4개월을 지나고 나니 염려 근심 걱정이 엄습했다. 어두움이 나를 삼켰다. 안절부절 전전긍긍, 갈대 같은 나를 보게 되었다.

살기 위해서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집중적으로 묵상하기 시작했다. 말씀이 들어가기 시작하니 다시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마태복음 4장 4절 말씀이 생생하게 체험되었다.

천국 문을 통과한 사람들이 보이다
마태복음 25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 끝부분이다. 여기에서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를 연이어 말씀하셨다. 슬기로운 처녀가 준비한 등불의 기름은 무엇인가? 5달란트 비유에서 그 해답의 반이 풀린다. 5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2달란트 받은 사람은 똑같은 칭찬을 받았는데 1달란트 받은 사람은 칭찬 대신에 책망받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났다.

무엇이 문제인가? 칭찬의 내용을 묵상해 보자. 25:21절,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2달란트 받은 사람도 23절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리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칭찬을 받았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맞는 재능과 능력을 맡기 신다. 5달란트냐, 2달란트냐, 1달란트냐가 중요하지 않다. 적게 받을 수도 있고, 많이 받을 수도 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다 ‘적은 일’들이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적은 일에 충성했느냐, 아니냐?’가 천국을 통과하는 척도이다. 하나님은 큰일을 못 했다고 책망하지 않으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능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적은 일에 충성했느냐, 아니냐로 책망하신다.

새로운 CHAPTER를 열어 줄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다
천국에서 의인으로 판명된 이들이 의아해서 묻는다. “주여 내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했으며, 목마른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반대로 악인으로 판정된 사람들은 항변한다. “우리가 언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주지 않았나이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영어 성경으로 보면, 지극히 작은 자, The least이다. “Whatever you did for one of the least of these brothers of Mine, you did for Me.” 하나님께 속한 가장 작은 자를 존중하고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 양이요, 의인이요,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다.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는 것은 보통 사람, 큰 사람을 포함한 모두를 섬기게 되는 출발선이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지극히 작은 자로 시작해서 모든 이를 품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핵심은 ‘지극히 작은 자를 존중하고 돌보고 사랑하는 일’이다. 이 말씀이 내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초지일관 말씀하셨다. ‘어린아이, 적은 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 많은 것, 큰 것,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능력으로 내 주변의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돌보면 되는 일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성공 지향적인 삶을 추구할 때는 보아도 보이지 않았고, 들어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광야에 서서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빈손 빈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니 주의 멍에가 얼마나 새털처럼 가볍고 쉬운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역시 주님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하시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큰일을 추구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해도, 큰 업적을 남기지 못해도 이제는 염려하지 않는다. 억지로 찾아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내가 섬겨야 할 지극히 작은 사람들을 내 삶 속에 보내 주신다.

다행이다. 그래서 이제는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주의 일 할 수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