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에 목숨 걸어라

부모들은 왜 자신의 자녀들이 좋은 대학교, 좋은 학과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것일까? 왜 자녀들이 의사가 되고 판·검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할까? 성공 때문일 것이다. 전문직은 명예도 재물도 함께 따라오기에 그 성공에 목을 매는 것이다. 명예를 얻으면 얼마나 얻을 수 있을까? 재물을 얻으면 얼마나 얻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 12:20)

우리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이 있다. 성공한 자도 죽고, 실패한 자도 죽는다. 죽음 앞에서는 명예도, 물질도, 과거 화려했던 성공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딸아이가 치대에 합격하니 고등학교 친구들이 바로 이런 말을 했단다. ‘너 나중에 돈 많이 벌겠구나.’
물론 웃으면서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딱 거기까지가 우리 인간들의 생각이다. 돈도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 8:18)

재물 얻을 능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변호사가 되고 판·검사가 되고 의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벌게 해 주셔야 버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면 부가 저주가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재물관이 바로 서 있지 않으면 성공이 실패가 된다. 자녀들의 진로를 생각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몇 가지가 있었다. 바로 하나님의 날을 거룩히 지키는 주일 성수와 구제, 선교였다. 그러다 보니 할 수만 있다면 내 자녀들이 치과의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남을 치료하는 일이니 봉사하기 좋다. 재능을 가지고 선교할 수 있어서 좋고, 돈 많이 벌면 구제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직업이니 너무 좋았다. 다른 직장들에 비해 주일에 나가 일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왜 북한 땅에서, 중국 땅에서, 이슬람권에서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가?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예배를 드리다 걸리면 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생명을 걸고 예배한다. 예배는 하나님을 믿는 행위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행위요, 하나님을 구원자로 고백하는 행위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8∼10)

물론 이 안식일은 지금의 주일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로 우리는 주일을 하나님이 명하신 안식일로 정하여 하나님을 예배한다.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이다.


예배할 수 있는 환경에서 예배하지 않는다면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다. 예배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생명을 걸고 예배한다면 진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다. 예배는 내 삶의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께 둔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생명은 시간이고 그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예배이다.

우리 자녀들이 어떤 직업을 갖기 원하는가? 성공만 하면 되는가? 돈만 많이 벌면 되는가? 내 자식을 죽이는 행위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돈을 포기하는 자를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성공과 출세를 포기하는 자를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예배에 목숨 건 자녀가 되도록 기도하라. 이것이 내 자녀가 복 받는 길이다.

네 자녀를 위해 울라
부모의 소원은 모두가 동일하다. 자녀들의 행복이다.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 수고하며 헌신한다.
대학교 입시철이 되면 한국에 있는 교회들이 분주하다. 시험이 가까울수록 새벽 기도의 인원이 많아지고 철야 기도의 인원이 늘어 간다. 자기 자식들의 합격 기원 때문이다.


자식 성공을 위해서는 그렇게 열심인 부모들이 자식의 영혼을 위해서는 어떤 열심을 내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이 있음을 믿는 자들이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영생을 얻었다고 하는 자들이 영생을 얻지 못한 자들처럼 이 세상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살아간다. 세상 사람들은 영생이 있음을 알지 못하여 이 세상이 전부라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세상 가치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옥이 있음도 듣지 못하니 죄를 지어도 죄책감도 없다. 그저 걸리지만 않으면 되고 감옥에만 안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이 세상의 생명도 가장 중요한 것인데 하물며 영원한 생명이야 얼마나 소중할까! 왜 그것을 모를까?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그냥 얻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는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구원자로 믿지 않는 자들은 생명이 없기에 불 못 곧 지옥 불에 던져진다. 지금 내 자식이 불 못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데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고 있다고 마냥 좋아라 하는 부모가 정말 부모일까? 진짜 그리스도인이 맞을까? 믿음에서 떠난 자식을 보면서 울어야 한다. 엉엉 울어야 한다.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언젠가 돌아오겠지, 맞다. 언젠가 꼭 돌아온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분명 언젠가 꼭 돌아온다. 그런데 이 기대감으로 안주하지 마라. 나는 청년들에게 거룩한 협박을 한다. ‘너희들 맞고 올래, 그냥 올래?’


그냥 와야 한다. 평안할 때 와야 한다. 하나님의 사인이 올 때 와야 한다. 내가 이 협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너무 많이 매를 맞고 하나님께 돌아왔기 때문이다.


내 자식이 하나님의 매를 맞기 전에 돌아올 수 있도록 엉엉 울자. 금식하며 울자. 자식이 아프면 부모의 마음은 찢어진다. 내 자식이 하나님께 매 맞고 오기 전에 그냥 지금 돌아오도록 자녀를 위해 엉엉 울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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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재식
그리스도신학대학교(M.Div)와 침례신학대학교(D.Min)에서 공부했으며 청년사역과 다음세대 사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현재 뉴질랜드 대흥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크리스천 자녀교육에 대한 책 ‘하나님이 하셨어요’를 집필하였으며 그 내용을 본지에 연재함으로 다음세대를 어떻게 품어야 할지를 함께 공감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