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문을 여시고

나의 어머니는 믿음이 돈독하신 분이었는데 평생 간절한 한 가지 소원이 있으셨다. 우리 가정에 목회자가 하나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늘 기도하셨다. 아들을 하나 주시면 주의 종으로 바치겠다고…. 

그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나를 얻으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너는 주의 종이 돼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살아왔다. 단순한 소망의 말씀이 아니라 절대 거역할 수 없는 경고였다. 

“너는 주의 종이 안 되면 벌 받는다.”

이 말씀은 어린 나에게 거역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마음판에 새겨졌다. 반드시 주의 종이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죽어도 목회자는 되기 싫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가난이었다. 평생 가난의 굴레에서 고통 받고 살아 왔는데, 목회자가 되어 다시 가난한 삶을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섰다. 하필 내 주위에 목회자들은 하나같이 왜 그렇게 가난했는지, 목회자 자녀인 내 또래들을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때때로 먹을 것이 없어 국수를 도시락으로 싸오곤 했다. 가난이 나에게는 고통 그 자체였다. 

결혼 후 한국전력공사라는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내 집도 가지고 차도 가지고 어려움 없이 살게 되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행복한 삶이었다. 비록 여러 번의 사건을 통해 주의 종이 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은 했으나 이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신학을 한다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다 큰 매를 드셨다. 우리 가족이 대형 교통 사고로 모두 죽다 살아났다. 나는 사고로 무릎이 박살나 5급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두 손 들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38세에 집을 처분한 돈으로 뉴질랜드 신학대학에 유학을 왔다. 공부를 시작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돈은 다 떨어지고 집세를 낼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밤마다 눈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간절한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하늘문을 열어 주셨다. 인간의 머리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적의 역사로 물질을 쏟아부어 주셨다. 지금까지 빌딩 4채를 주셨고, 2만 평 가량의 대형 쇼핑센터도 주셨다. 그리고 바닷가에 너무도 아름다운 대형 크리스천 캠프장도 허락하셨다. 수십 채의 장학관과 수만 평의 땅 등 어마어마한 물질을 부어 주셨다. 

절대 물질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無)에서 하늘문을 열어 쏟아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리려는 것이다.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뉴질랜드 땅에서 밥 한 끼도 해결할 수 없었던 나에게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물질을 부어 주셨다. 

내가 아끼고 노력한들 몇 푼이나 벌겠는가? 외국 땅에서 밥 세끼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지금까지 마음껏 구제와 선교를 하고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고 역사하신다. 절대로 인간의 머리로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한다. 내 평생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사는 말씀이 있다. 

“With God nothing is impossible!”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이 없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 8:18)

지프(JEEP) 10대
뉴질랜드에서 신학 공부를 하는 동안 뉴질랜드 현지 교회에서 아시안 담당 교역자로 잠시 섬긴 적이 있다. 어느 날 인도에서 한 목사님이 와서 간증을 하셨다. 
당시 인도에는 복음의 불길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본인의 교회에도 1년에 새신자가 무려 4만 5천 명이 등록하고 있으며, 지금 복음의 불길이 타오를 때 인근 마을마다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도는 워낙 땅이 넓어 다른 지역을 이동하려면 반드시 차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당장 전도용 차량 24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뉴질랜드 성도들을 향하여 간절하게 지프를 후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도 목사님의 간절한 요청을 듣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뉴질랜드 교회의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교회도 은행 빚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일전에 도저히 은행 빚을 감당 못해 은행 경매에 넘어간 적도 있었다. 이슬람이 이 교회를 낙찰 받았는데 가까스로 교단에서 구해 냈다. 이런 형편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저분이 괜히 와서 비행기 값만 날리셨구나”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내 안에 간절한 마음이 일어났다. 어떻게 하면 저곳에 지프를 몇 대만이라도 사서 보낼 수 있을까? 예배 내내 그 생각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나 역시 넉넉한 상황이 못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뉴질랜드인이 경영하는 영어학교에서 한국인 담당으로 일을 하고 있어 때때로 약간의 수입이 생겼다. 사실 이 일을 시작한 것도 내가 다니는 신학대학이 재정적으로 너무 어려움이 있어 나를 통하여 한국 학생들을 모집해서 영어학교로부터 어느 정도 재정적인 도움을 받기 위함이었다. 

한국 학생들이 많이 오면 올수록 나의 수입도 늘어났다. 앞으로 수입이 얼마나 될지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인도의 사역자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서 예배 도중에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지프 10대 보내겠습니다”라고 대책 없이 서원을 했다.

그 당시 인도 교회에서 원하는 지프는 대당 7천 달러로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다. 그러나 10대의 비용은 장담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매번 수익금이 나오는 대로 한 대씩 보냈다. 

그렇게 해서 몇 년에 걸쳐 간신히 10대의 값을 다 보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 지프를 통해 인도 전역에 복음이 전파될 것을 생각하니 그 기쁨은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얼마 뒤 지프를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사진이 나에게 전해졌다. 이 일을 하도록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다. 외국땅에서 밥 세끼 해결하기도 너무 어려운데 이렇게 선교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니 그 감격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이 지프 비용을 인도에 보낼 때에 뉴질랜드 교회를 통해 보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가 직접 하는 것으로 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영광을 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