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을 건너온 북한군인

인류와 동족을 살상하는 핵무기를 탑재하며 미사일을 발사하는 현장에 어린 딸을 참관시키고 자랑하는 사람이 북한의 백두혈통 김씨 왕조의 3대 세습체제 주체사상의 위대한 지도자 그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고 사진에 먼지도 용납하지 않는 그 사진을 보고 숭배하지 않고 불경한 말을 하였다고 임신한 여성을 처형하는 그야말로 백성을 종과 노예로 부리고 사는 절대 존엄의 김정은이다.

두만강 하류 힘차게 내달리던 강물이 민족의 통한과 아픔의 굽이를 몇 번이나 돌아서 그 여한이 흩어져 갈래 길로 접어드는 산 깊은 동네에 설레는 마음으로 지금은 그 이름을 내놓을 수 있는 월청교회 김영걸 전도사(나중에 그의 아들이 목회할 때 미국의 여기자들이 그곳에서 북한으로 잡혀갔다)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목사님! 내가 말임다,”
“아니 전도사님, 여기선 목사라 하지 말고 사장이라 합시다. 그렇게 무심코 부르다가 실수하면 어떻게 합니까!”
“아! 그렇디요, 그러나 일없슴다(괜찮습니다). 한국에서 온 사장이라 하면 대충 짐작들 하디요. 여기엔 북한에서 식량을 구하고 돈 벌러 온 사람들이 벌목과 잣 따는 일을 하면서 20여 명이 따로 집을 얻어 사는데 말임다, 지금까지 우리 식량(난민기구의 비상식량)을 대 주고 있슴다. 그리고 오늘 가는 곳은 촌장(중국의 공산당원) 집인데 그곳에 다 모이라 했음다!”

북한의 제대한 군인을 만나다!
“아니, 북한 사람들이 중국인 촌장 집에 모여도 괜찮은 겁니까?”

2001년,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 비상식량에는 양식뿐 아니라 설탕, 소금, 비누 등의 생필품과 만병통치약인 아스피린 등이 들어있다. 촌장의 안내로 방에 들어서는데 너무도 낯선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그 순간 몸을 타고 흘렸던 충격의 전율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이 공허한 젊은이들이 과연 북한에서 왔단 말인가, 가족과 이웃이 굶어 죽는 데서 살아보겠다고 두만강을 건너온 우리의 동족이란 말인가!

“반갑습니다, 짐작들 하시겠지만 저는 한국에서 온 동포이며, 영국에서 살다가 여러분을 도우러 온 국제난민기구의 일원입니다.” 그렇게 몇 마디 인사를 하고 준비한 식사를 하며 여기서 사는 형편이 어떠냐고 묻는 가운데, 처음부터 유독 불안한 태도를 보이는 20대 후반 가량의 청년이 눈에 띄었다.
“언제 여기에 왔습니까? 지금 지내기는 어떻습니까!”

몇 번을 물었지만 대답은 하지 않고 심한 경계의 눈초리만 보낸다. 옆에 있던 사람이 말을 거든다. “이 동무 말임다, 어제 왔는데 군에서 제대한 지 며칠 안 됐슴다!”

“13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 집 기차역에 내려 보니 길 좌우측으로 사람들이 누워 있습데다, 뭔가 싶어 가까이 가니 이미 죽어있는 시체였디요!. 너무 놀라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니 ‘넌 어디서 왔네? 조선인민이 아니네?’ 하고 되러 역정을 냈음다. 정신없이 집에 와보니 150호 정도 되던 꽤 큰 축에 들었던 마을의 사람들이 절반도 안 남았슴다. 오마니가 하는 말이 그중 반은 죽고 반은 양식을 구하려 타지나 대부분 중국으로 나갔으니 너도 가라하여 같은 동네 사람 편으로 강을 건너 이리로 오게 되었음다!“

중국은 우리의 혈맹이 아님다!
“전에 우리는 중국 사람과 조선족을 못 배우고 더러운 떼 놈이라고 조롱했는데, 여기 와보니 촌동네지만 쌀(북한에선 옥수수를 쌀이라 하고, 진짜 쌀은 입쌀이라 부른다)을 소나 돼지도 먹고, 옷 입은 것이나 생활 형편이 천국 같아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시오. 우리 인민은 이 짐승이 먹는 옥시도 없어서 굶어 죽는데 말임다”

중국은 “혈맹”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저 생색만 내고 그 많은 사료의 옥수수도 북한에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내가 놀란 것은 만나는 북한의 동포마다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을 중국인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하는 것 때문이다. 한결같이 중국은 우리 조선을 살려낼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들을 한다.

지금은 세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서 경제적 사정이 심각해져 있다. 그 가장 큰 원인이 러시아의 원유인 가스의 중단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1994년 김일성 사망 전부터 북한의 경제가 급격하게 붕괴되기 시작한 원인이 1989년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전적으로 의지하던 옛 소련의 중유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70년도 전까지 북한의 집단 농장까지도 모두 기계화(뜨렉또르/트랙터)되었었는데 갑자기 고기 잡던 배까지 기름이 없어 손을 놓게 되고 부대에선 전투기의 기름을 뽑아서 쌀을 구입하는 형편에까지 처하게 되었다.

자연의 재난인 홍수와 기근까지 연이어 겹치면서 북한의 땅은 황폐화되고 3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한 것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의 식량 사태와 자력갱생 이후 지금이 가장 심각하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핵미사일 개발과 연이은 발사로 긴장을 고조시키며 건재함을 과시하는 이면의 북한을 말하면 최고의 위기를 향해서 멈추지 못하는 브레이크를 상실한 기차와 같이 달려가고 있다고 하겠다.

“영적인 전쟁입니다!” 북한을 육신의 이스라엘과 같이 보게 되면 도무지 답이 없다. 영적 전쟁의 무기는 “복음과 기도”이다. 지금도 북한으로 복음은 흘러가고 있다. 지금은 저 78년 참혹한 고난 가운데 거대한 감옥이 된 곳에서 종과 노예로 살아가는 동포와 동족과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의 지체된 형제를 위하여 기도할 때이다.

이제는 기도가 선교를 지나서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한 문제와 방법이 되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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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길
총신신대원 졸업. 영국 런던개혁침례신학교 신학석사 과정 수료. 국제난민기구와 두만강 유입 북한 난민에게 비상 식량 지원하는 ‘두만강 프로젝트’ 운영. 현재 북한 크리스천살리운동 대표. , 에젤, 2020 발행. 한반도에도 복음적인 통일이 이루어지질 소망하며 북한 선교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