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대기자가 된 지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젠 기적 같은 은혜만 기다릴 상황이 되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하나님의 강력한 평강을 경험한 자로서 그 경험이 나의 착각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사실 그러한 하나님의 평강은 오래전에도 한 번 더 경험한 적이 있었다. 목회학 박사 과정 학생 비자를 받기 위해 미국 대사관에 인터뷰가 잡혔다. 워낙 목회자들에게 미국 비자를 내 주지 않기에 함께 공부했던 다른 분들도 비자 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오전 9시에 비자 인터뷰가 잡혔다. 충분하게 1시간 여유를 두고 서둘렀지만 차가 너무 막혔다. 식은땀이 났다. 인터뷰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도저히 갈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결국 운전 중에 인터뷰 시간인 9시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순간 신기한 일이 생겼다.
불안했던 내 마음이 갑자기 평안해졌다. 왜냐하면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능력 밖의 일에는 더욱 더 평안하다. 그때도 하나님이 순탄히 해결해 주셨다.
이번에도 내 능력 밖의 일이기에 더 평안했다. 이미 합격자 발표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고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저 은혜를 구하고 기적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기도 중에 죽음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던 히스기야 왕이 생각났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사 38:2∼3)
기적이 필요하고 은혜가 필요한 그때에 히스기야는 과거 자신의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이 기도에 힘입어 나도 딸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딸이 어릴 적에 혼자서 교회 부엌을 청소한 것을 기억해 주세요.’
유학생 중심으로 목회를 했기에 청년들은 가득했지만 다른 기관들이 없었다. 흔히 말하는 주일 학교도 중·고등부도 없었다. 청년들만 가득했다.
어느 날 예배 후 청년들은 다들 삼삼오오 그룹 모임으로 흩어졌고 나도 성경 공부를 인도하러 갔다. 성경 공부를 마치고 교회 부엌에 들어갔는데 11살 먹은 어린 딸이 혼자서 부엌에서 대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아니, 너 뭐해?” “나? 청소해.”
그러면서 딸은 환하게 웃으며 언니, 오빠들 다 성경 공부 갔는데 자기는 모임이 없으니 그냥 청소한다며 혼자서 즐겁게 대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늘 부모가 봉사하는 모습만 봐 와서 어린 나이에도 불평 없이 혼자 부엌을 청소하는 그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짠했다. 그러면서 ‘그래, 분명 이 일을 하나님께서 언제가 기억해 주실 거야’라며 축복해 준적이 있다.
합격과 불합격의 기로에 놓인 중요한 이 순간에 히스기야의 기도를 이용하여 나도 기도했다.
‘하나님! 목회를 하는 부모를 만나 많이 희생하고 수고하는데 자녀들의 수고를 꼭 기억해 주세요.’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이들이 행했던 과거의 선한 일들을 기억해 주셨으리라 믿는다.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우애에 대해서는 좀 남달랐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장난감을 서로 자기가 갖고 놀겠다고 하면서 다투면 나는 그 장난감을 버렸다. 우애를 방해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며 매몰차게 버렸던 기억이 난다. 또 컴퓨터, 노트북을 서로 먼저 하겠다고 다툼을 하면 컴퓨터까지 버리면서 우애를 강조했다.
반면 누구라도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 오면 상장 받은 사람만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둘이 똑같이 선물을 사 주었다. 그러다 보니 동생이 상장을 받아 와도 오빠가 좋고, 오빠가 상장을 받아 와도 동생이 좋게 되어 서로 시기하지 않고 서로를 축하해 주게 되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이제 그 어린 아들딸이 다 커서 성인이 되었다. 참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벌써 이렇게 둘 다 대학생이 되었다니… .
오빠가 먼저 치대를 도전하여 성공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아들에게 먹을 음식들을 싸서 소포를 보낼 때에 동생이 오빠를 응원한다고 소포 박스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며 자기는 오빠처럼 그렇게 공부로 고생하기 싫다며 ‘난 그 대학교에 안 갈래’라고 웃으며 글을 썼었다. 그런데 어느덧 동생도 오빠가 했던 그 도전을 하고 있었다.
딸아이의 합격을 기다리던 어느 날, 아들이 가족기도회를 인도하게 되었다.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동생을 위해 기도하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을 눈물의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본인도 그 힘든 과정을 겪었기에, 동생이 얼마나 힘들게 수고를 했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동생의 치대 합격을 놓고 기도하다가 한참을 울었던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이것이 참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 가족이 함께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동생을 위해 울면서 기도해 주는 오빠가 있다는 것이 또 얼마나 큰 행복일까!
비록 현실 남매처럼 서로가 관심 없는 듯 시크하게 살아가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도로 하나 되는 모습을 보니 그 어떤 합격보다도 더 기쁘고 행복함이 충만하다.
저 치대 됐어요. 아∼ 손이 떨리네요
하나님은 정말로 역사와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역전의 하나님이시다.
최종 합격이 발표되기 전에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기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시며 기적을 경험하는 날 되게 하옵소서.”
하루를 열며 딸을 위한 기도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그 월요일도 그냥 조용히 지나갔다. 사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일해 주실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월요일을 보내며 아쉬운 하루를 마감했다.
새 학기 둘째 날, 그날도 딸을 위해 같은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대부분 오전에는 기도와 말씀으로 경건의 시간을 갖는다. 점심때가 되어 거실로 나가려는 찰나에 가족 카톡 방에서 소리가 울렸다. 카톡에 올라온 글을 보자마자 소름 돋듯이 하나님의 일하심이 강력히 보였다.
딸아이의 문자가 왔다. ‘저 치대 됐어요. 아∼ 손이 떨리네요.’ 학교 측에서 합격 오퍼 레터가 온 것이다.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일해 주셨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응답의 기적이라서 그 감동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딸과 전화하면서 할렐루야를 외치며 기뻐서 박수 치고 축하하고 환호하고 있는데, 딸이 전화기 너머로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기도해 주세요.”
그냥 합격했다고 좋아라 하면서 기뻐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딸이 그 상황 속에서 기도를 요청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딸도 알기 때문이다. 합격의 함성을 멈춘 채 기도했다. 그런데 기도가 안 나온다. 기도를 해야 하는데 기도가 안 나오고 눈물만 나온다.
전화기 넘어서도 감사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딸아이의 눈물이 보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역사와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역사와 환경을 바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려운 환경이었고, 답답한 환경이었고, 절망적인 환경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품고 있으면 예수님이 일하신다. 늘 딸과 대화하면서 “기도하고 있지?” 물으면 “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 기도하고 있어요.” 합격 소식도 기쁘지만 더 기쁜 것은 이렇게 딸아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이 사실 너무 좋다.
아들이 그 어려운 치대를 들어가고 나서 주변에서 자주 했던 말이다. 그 어려운 치대를 딸도 들어갔으니 또다시 묻는다. “아니, 도대체 누굴 닮아서 아이들이 그렇게 공부를 잘해요?” 누굴 닮았을까? 부모의 유전일까?
답은 엄마도 아니고 아빠도 아닌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드셨으니 우리는 다 하나님을 닮은 존재들이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자식 잘되기 원하는 마음은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다. 내 자식이 잘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똑똑하여 공부도 잘하고 좋은 대학교, 좋은 학과에 합격하는 것인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출세도 하는 것이 자식 잘되는 것인가?
자식이 잘되는 비결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다. 창조주가 있음을 알게 해야 하고 믿게 해야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1장 1절을 통과시켜야 한다. 이것이 통과되지 않으면 아무리 이 세상에서 성공해도 실패이다. 그 실패는 단순한 실패로 끝나지 않고 멸망으로 끝난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그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움직이신다. 원숭이가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빅뱅에 의해서 우주가 폭발하여 지구가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창조주가 분명히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 자녀가 잘되는 원칙이고 비결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아들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