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년 초등학생부터 50대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정직에 관한 윤리의식을 조사하여 정직지수 보도자료를 내고 있는 기관이 있습니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가 그러한 조사 기관입니다.
조사는 초등생부터 50대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정직과 도덕성에 관련된 설문을 합니다. 설문들이 매년 동일하기에 연령별 응답 비율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추이 변화에 대한 비교도 가능합니다.
설문 내용 중에는 ‘만약 10억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라는 문항이 있습니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9년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초등학생의 23%, 중학생 42%, 고등학생 57% 그리고 성인들은 20대가 53%, 30대 43%, 40대 40%, 50대 이상에서는 23%가 10억이 생긴다면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는 응답을 하였습니다.
초등학생부터 50대 이상의 성인을 모두 합해서 ‘괜찮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많은 연령층은 고등학생으로 나타났으며 그 비율이 무려 57%나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20대의 ‘괜찮다’는 응답률이 53%였습니다. 가장 낮은 비율을 보인 연령층은 초등학생과 50대 이상이었으며, 23%로 동일했습니다.
결과로 유추해볼 때 우리 사회의 물질 만능적인 가치관이 10대 후반부터 30대 사이의 젊은 층에서 가장 심각함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불안정한 사회와 직업에 대한 불투명함으로 인한 걱정 등이 더욱 물질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려 해도 왠지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다른 설문 문항으로 눈에 띄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친구(동료)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항목의 조사 결과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초등학생의 20%, 중학생의 28%, 고등학생 31%, 20대 65%, 30대 52%, 40대 44%, 50대 이상 31%가 ‘그럴 수 있다’는 응답을 하였습니다.
역시 이 결과도 초등학생의 비율이 가장 낮았으며, 20대와 3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대는 무려 10명 중 6~7명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친구나 동료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친구나 이웃의 어려움과 관계없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항목의 조사 결과도 초등학생 23%, 중학생 32%, 고등학생 35%, 20대 59%, 30대 53%, 40대 46%, 50대 이상 33%가 ‘그렇다’는 응답을 보였습니다.
위의 결과를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친구나 동료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른 이들의 어려움과는 상관없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개인주의, 이기주의 의식이 나이가 들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20대에서 이기심과 개인주의 비율이 가장 높았고, 그다음으로 30대 그리고 40대까지도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렇습니다.
왜 정직과 윤리 그리고 도덕과 인성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하고 학습한 20대, 30대, 40대 그리고 그 이상의 연령층이 초등학생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을까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길래 우리는 이렇게 변해가고 있을까요? 도대체 우리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저학년에서 교사가 잘 준비시킨 학생들은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성공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McCaffrey, Lockwood 그리고 Hamilton). 다시 말해서 성공이 성공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결코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올바른 인성과 윤리교육을 ‘잘 준비시킨다면’ 학년이 올라가고 성인이 될수록 우리 아이들은 바른 인성과 도덕성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이미 우리는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사랑과 양육방식 그리고 학교에서 교사가 보여주는 교육자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교육학자 콜버그는 주변에 타인을 배려하고 인품이 있고 인격적인 성인 롤모델이 있다면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권리와 감정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는다고 주장합니다.
가정과 학교가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 어떠한 것을 담아주고 어떠한 것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이것은 어떠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관과 인성을 키우는 데 큰 영향을 끼칩니다.
성경에서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한일서 2장 15~16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경적인 가치관의 기준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 살아가기 위한 삶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필자가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를 생각해 보면 가르치는 사람이 확실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을 가르칠 때는 짧고 간결하지만 핵심 포인트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사 자신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내용을 가르칠 때는 장황하게 말이 길어지면서, 핵심적인 내용도 의미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무슨 말인지 서로 이해가 안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세상에서 바른 크리스천으로 살도록 양육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말씀을 충분히 알고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본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교육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신앙이 생기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은혜의 선물을 통해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할 수는 있습니다. 말씀 안에서 바르게 인도하심을 받고 이것을 제대로 실천하여 보여주고, 들려주고, 알려준다면 분명 우리 자녀들의 미래는 정직한 삶, 남을 돕는 삶, 세상의 가치관과 물질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다음에 제시하는 글은 도덕 발달 이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콜버그의 ‘하인츠 딜레마’입니다.
하인츠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매우 특이한 종류의 암에 걸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데 마침 아내의 병을 치료할 신약이 개발되었다. 약의 원가는 이백 달러지만 신약을 개발한 약사는 그 약에 대한 값으로 이천 달러를 요구했다.
가난한 하인츠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는 사람을 모두 찾아가 간신히 천 달러를 모았다. 비록 천 달러밖에 모으지 못했지만, 하인츠는 약사를 찾아가 자신의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약을 천 달러에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약사는 하인츠의 청을 거절했다. 하인츠는 일을 해서 나머지 천 불도 꼭 갚을 테니 제발 자신에게 약을 팔라고 다시 간청했다. 그러나 약사는 결국 하인츠의 청을 거절하였다. 절망에 빠진 하인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하인츠는 약사가 운영하는 약국을 찾아가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자신의 아내를 위하여 약을 훔쳤다.
만약 여러분이 하인츠였다면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선택을 한 하인츠는 과연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할까요? 약사는 과연 정당했을까요?
‘하인츠 딜레마’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질문 앞에서 나 자신의 도덕성과 신앙을 들여다보며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세상적 가치관과 하나님 자녀로서의 가치관을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