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넷째 주 찬송/636장 하늘에 계신(주기도문)
찬송 가사 양식에 따라 저마다 가진 뜻이 있어
찬송가에 있어서 가사 붙이는 양식은 네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양식은 음절식(syllabic style)입니다. ‘거룩 거룩 거룩’(8장)에서 첫째 마디 “거룩”을 보면 ‘거’자 모음 한 음절에 4분음표(♩)가 한 개입니다.
마지막 “우리 주로다”의 ‘주’도 ‘주’자 모음 한 음절에 점 4분음표가 한 개이며, ‘로’자 모음 한 음절에 8분음표(♪)가 한 개이며, ‘다’자 모음 한 음절에도 온음표가 한 개입니다. 박자의 길이에 상관없이 가사와 음절이 1;1인 양식을 음절식이라 하는데, 경건한 찬송가는 거의 이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양식은 네우마식(neumatic style)입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258장)에서 “샘물”을 보면 ‘샘’자 모음 한 음절에 8분음표가 두 개입니다.(♫) “정하게 되겠네”의 ‘네’도 ‘네’자 모음 한 음절에 음표가 세 개. 이처럼 가사 한 음절에 음표가 두 개나 세 개인 것을 네우마식이라 하는데 네우마(neuma)란 찬트(chant)의 악보인 4선보(線譜)의 이름입니다.
세 번째 양식은 시편식(psalmodic style)입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왔으니’(634장)에서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를 보면 온음표(o)한 개에 많은 음절의 가사가 붙어 있습니다. 이는 시편을 노래하는 시편창으로서 영창(Anglican Chant)이라고도 부릅니다.
네 번째 양식은 멜리스마식(melismatic style)입니다. ‘천사들의 노래가’(125장)에서 후렴의 ‘영광을’을 보면 ‘영’자 모음 한 음절에 많은 음표가 붙어 있습니다. 멜리스마(melisma)란 한 음절 가사에 많은 음표가 있는 것을 뜻하는데, 교회음악에서 ‘기쁨 동기’(joy motive)로 쓰입니다.
주기도문 영창은 1917년 4월 18일자 ‘기도신보’에 호가 죽남인 최동준이란 분이 악보에 주기도문을 배열하여 실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의 오르가니스트인 다운즈(Lewis T. Downes, 1824-1910)가 만든 이 곡은 시편식의 영창입니다. 시편식 영창의 연주법은 표시와 같이 말하듯 노래하면 되는데, 어절(articulation)마다 잠시 끊습니다.
온음표 “하늘에 계신 우리”를 네 박자에 맞춰 급하게 노래하면 안 되고, 4박자는 무시하고 “하늘에계신”(♪♪♪♪♩)하고 잠시 멈춘 뒤, “우리”(♪♩)를 노래합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도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하면 됩니다.
우리 찬송가에 시편을 노래한 영창이 거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4월 첫째 주 찬송/638장(통 550장) 주 너를 지키시고
천상 찬양대가 일곱 번 아멘 노래하는 아론의 축도송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연주하다 보면 많은 멜리스마(melisma)를 만나게 됩니다. 원어로 노래할 때 바로크(Baroque)시대 음악이라 ‘깨끗케 하시리라’에서 “퓨리파하하하하하이”(purify)라든지, ‘우리를 위해 나셨다’에서 “보호호호호호온”(born), ‘그 멍에는 쉽고’에서 “이히히히히히지”(easy)라 모음에 ‘h’ 발음을 붙여 노래합니다. 마치 “하하하하” “호호호호” “히히히히” 소리내어 즐겁게 웃는 소리 같습니다.
멜리스마 양식은 헨델이나 J.S. 바흐가 살던 바로크 시대에 많이 쓰였는데 ‘기쁨 동기’(joy motive)라 하여 중요한 단어에 맞춰 사용하였습니다. 나는 우리가 주님을 만난 이후 슬픔이 기쁨으로, 통곡이 웃음으로 바뀌었으니 이를 천국 잔치 자리의 웃음소리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특히, 그레고리안 찬트 시대로부터 ‘알렐루야’의 ‘a’ 음절에 멜리스마를 붙인 것을 유빌루스(Jubilus)라 하여 신앙심의 표현으로 사용하였는데, 시대를 거치면서도 연주 스타일은 달라져도 그 멜리스마 전통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춤추라 기뻐하라’(Exultate Jubilate)에 나오는 저 유명한 ‘알렐루야’도 ‘아’ 멜리스마로 표현된 유빌루스이며, 찬송가 ‘예수 부활했으니’(164장)에서의 “할—렐루야”도 유빌루스입니다. ‘천사들의 노래가’(125장) 후렴의 “영—광”이나 축도송인 이 찬송의 장대한 “아—멘”도 기쁨 동기인 것이죠.
곡명 BENEDICTION은 미국 태생 오르가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러트킨(Peter Christian Lutkin, 1858-1931)이 작곡했습니다. 구약의 축도(민 6;22-25)를 의역한 가사에 작곡하였습니다.
1905년 그가 편집인으로 편찬한 미국 감리교 찬송가(The Methodist Hymnal)에 수록하였고, 그때엔 지금처럼 긴 후렴의 ‘아멘’이 없었습니다. 러트킨은 노스웨스턴(Northwestern)음대 초대 학장을 지낸 분으로 1918년 출판된 성공회 찬송가(Episcopal Hymnal) 편집인으로도 참여하였습니다.
낮은 성부(聲部)로부터 대위법적으로 점차 모방 상승하는 아름다운 일곱 번의 “아멘” 멜리스마가 고음에 이르면 마치 천상에 이르는 것 같지요.
칼뱅은 예배 시 아론의 축도(민 6;26)와 바울의 축도(고후 13;13) 두 가지를 겸하여 사용하기를 권하고 있으나 한국교회는 거의 신약의 축도 하나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로 시작되는 신약의 축도에 이같은 구약의 축도송을 잇는다면 완전한 축도의 순서가 되지 않을까요.
성가대가 애창하는 러터(John Rutter)의 “주 너를 지키시고”(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는 찬양곡(Anthem)이라기보다 축도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