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창밖의 길에는 분명 버스정류장 푯말과 버스를 기다리며 쉬라는 긴 의자까지 그대로 있는데 버스정류장 안내판에는 버스노선이 폐지되어 이곳에 버스가 오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버스정류장에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지붕 아래 긴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 미처 없어진 버스노선을 모르고 버스정류장이 있으니 마냥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인지 아니면 버스를 기다리는 것과는 상관없이 지나가다 잠깐 쉬어 가는지 모르겠다.

과연 저 사람은 오지 않는 버스정류장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앉아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화난 얼굴인지 아니면 환한 얼굴인지도 모를 표정을 하고 앉아 있으니 다가가 말을 걸기에는 너무 외로워 보여 주저하게 된다.

다만 인기가 있던 시절은 모두 연기처럼 지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텅 빈 존재 같다. 마치 미동조차 없이 앉아 있는 사람은 가상의 거울 속에 존재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2층 주방에서 먹고 난 그릇을 설거지하는 나와 창 너머 길가의 버스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사람은 분명 낯선 남이다.

그런데, 환한 얼굴로 설거지하는 나와 화난 얼굴로 앉아 있는 남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겹치고 있다. 마치 겉 사람의 나와 속 사람의 내가 서로 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사는 이중적인 존재와 같다. 자신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살아온 희생은 절대로 회생하지 않는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그러진 표정도 환한 얼굴이 아니라 화난 얼굴이다. 자신의 이기심을 감추고 살아도 사기꾼은 그 이기심을 자극하여 크게 사기를 치게 된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에게는 지나친 이기심이 있다.

돈을 벌면 사모라 불리고 돈을 벌려는 사람은 이모로 불리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이 없는 돈은 마치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돈은 돌고 돌아 내가 선 곳에서 멈출 것 같지만, 이미 없어진 버스노선처럼 허상에 불과하다.

집에 있든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든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거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은 예수를 아는 넓이와 깊이 그리고 길이와 높이와 같은 지각과 지혜가 필요하다.

고난 주간이 다가오고 있다. 예수 고난과 죽음이 있지만, 부활과 승천도 있다. 성령의 오심과 더불어 예수 재림도 있다. 버스가 정해진 길을 갔다가 다시 약속한 길로 오듯이 예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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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현
본지 발행인. 마운트 이든교회 담임.“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생명구원”(요한복음 20:31) 위해 성경에 기초한 복음적인 주제로 칼럼과 취재 및 기사를 쓰고 있다. 2005년 창간호부터 써 온‘편집인 및 발행인의 창’은 2023년 446호에‘복 읽는 사람’으로 바꿔‘복 있는, 잇는, 익는, 잃는, 잊는 사람과 사유’를 읽어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