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오빠도 4점 맞았어? 나도 4점 맞았는데”

아들이 대학교 1학년 시작 무렵 13학년(한국 고3) 성적표가 집으로 발송되었다. 그 성적표를 보고 난 너무 깜짝 놀랐다. 4점이라니….
물론 대학교 입학과 상관없는, 장학금을 위한 과목(scholarship paper)이었지만 그래도 4점은 너무한 점수였다. 얼마나 공부를 안 했기에 4점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아들 녀석은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이미 대학교에 들어갈 크레딧을 다 확보한 상황인지라 13학년 때 공부의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다. 나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교육에 관심은 많지만 공부하라는 말은 별로 안 해 봤다. 공부는 본인들이 하는 것이다. 부모는 공부하는 목적만 제대로 알려 주면 된다.
때로 원치 않는 공부를 자녀에게 강요하면 오히려 관계가 깨질 수 있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나는 공부에 포커스를 맞춰서 자녀를 양육하지 않았다.
어릴 때야 기특해서 성적표를 봤지만 커서는 성적에 대해서 별로 신경 안 썼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한 점수가 나왔다.

대학교 1학년 공부 중인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들! 성적표 집으로 왔는데 4점 맞았네. 고등학교 3학년 때 공부랑 담 쌓았구나. 이제 지나간 것은 다 잊고 지금부터가 중요하니 최선 다하는 아들 될 수 있지?’

아들에게서 답장이 왔다. ‘네, 저 진짜로 마음먹고 공부할 거예요. 올 한 해 지켜봐 주시고 믿어 주세요 ㅎㅎ 많이 사랑하고 감사해요, 아버지.’

3년 뒤에 대학교 1학년을 다니던 딸마저도 고등학교 3학년 성적을 보면서 ‘어, 나도 장학금 과목은 4점 맞았네’ 하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부전자전도 아니고 그 오빠에 그 동생인가? 그때 깨달았다.

우리 아들딸은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안 하는 놈들이구나. 공부를 안 해도 너무 안 하는 것 아냐?

아들이 치대에 합격하고 며칠 후에 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아들 친구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왜? 친구가 왜 전화했어?”
아들이 말하길 친구가 ‘정말로 네가 치대 합격했어? 정말이야?’라며 너무 믿어지지 않아서 확인차 전화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분명히 같이 놀았는데 정말 그 어려운 치대에 합격했다고? 그 친구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뉴질랜드에 오래 사는 사람들은 그리고 자녀 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들은 다 안다. 이곳 뉴질랜드에서 치대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 알기에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나 보다. 사실 나도 그랬다. 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에 축하도 하고 감사도 했지만 드라마에서 보면 종종 좋은 대학교에 입학했다며 부모를 속이는 장면도 있던데….

합격 소식이 지나고 2학년이 되어서 치대 입학이 확실하다는 증거 사진들을 이것저것 보냈는데도 ‘정말? 입학한 것 맞아?’ 하며 웃으면서 농담을 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치대에 보내 주신 것일까? 이유는 딱 하나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사실 치대에 도전은 했지만 치대 입학 자체가 인생의 성공이 아님을 자녀에게 말했다. 삶의 목적과 의미가 바로 세워졌다면 어떤 직업을 갖든지 그것은 큰 의미가 없다. 교민 잡지에서 전교 1등을 하던 어떤 학생의 인터뷰 글을 보니 장래 희망이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란다. 그런데 우리 아들딸은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 탁월한 재능이 있으면 밀어 주겠지만 눈에 보이는 재능도 잘 안 보였다. 그래서 진로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렇게 결론지으며 자녀를 양육했다.

‘그래, 그럼 그냥 학교 즐겁게 다니고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거라. 공부야 알아서 하면 되고. 단, 하나님 안에만 있자. 그럼 아버지가 다 도와줄게.’

“아버지가 다 도와줄게”라고 큰소리는 쳤지만 내가 무슨 능력이 있나? 없다. 아버지가 도와준다는 것은 기도하겠다는 것이다.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로 양육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자녀들을 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내 자식, 내가 못 키운다. 어릴 적 부모 품안에서 최선을 다해 보호한다고 하지만 아이들이 다칠 때도 많다. 점점 자라나는 아이를 부모가 어떻게 책임지고 키울 수 있는가? 못한다. 나는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이 키우셔야 한다. 나는 말씀으로, 신앙으로 양육할 뿐이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한다. 우리 자녀들을 키우시고 돌봐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루 3시간은 자면서 공부하거라
아이들한테 장난삼아 했던 말이 있다. “너무 무리하게 공부는 하지 말고 잠은 꼭 3시간은 자거라.” 이 농담에 아이들은 웃는다. “네, 잠은 꼭 3시간은 잘게요. 낮잠 ㅎㅎ.”

수많은 학부모들이 자녀 공부에 목을 맨다. 하나님을 믿는 부모이든지 믿지 않는 부모이든지 막상 학부모가 되면 다 비슷하게 움직인다. 물론 직장과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에 공부가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공부가 우리 자녀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우리 자녀들은 공중의 새보다 더 귀하다.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을 책임져 주신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도 성실하게 감당하는 자이기도 하다. 학생으로서 공부는 성실히 지켜야 할 그리스도인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러니 항상 하나님 안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날 대학교 1학년인 딸이 내게 말을 건넨다. ‘아버지, 아버지가 농담으로 했던 말인데 정말 3시간만 자고 공부해야 되네요.’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물론 시험 때는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 때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렇게 열심히 해야 되겠지.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바로 대학교 1학년 때이다.

의대, 치대를 목표로 하는 1학년생들은 공부해야 할 분량이 남달랐다. 오랜 시간 수업을 듣는 것도 쉽지 않은데 저들은 그날 들은 수업을 다 암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교수님들의 강의를 직접 듣지 않고 녹화된 수업을 듣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녹화된 수업은 빨리 듣기가 가능하기에 수업 시간을 단축하여 암기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란다. 외우고 또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우는 일이 1학년의 일상이란다.

아들이 1학년 때 공부하면서 얼마나 힘든지 ‘아버지 토할 것 같아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의대, 치대를 준비하는 1학년은 토하도록 공부해야 하는가 보다. 밥 해 먹을 시간을 줄이기 위해 대부분 기숙사를 선택한다는 말도 있다. 1학년의 일상을 아들, 딸 두 번을 경험하고 나니 얼마나 그 시간이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이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1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중간 방학을 앞두고 있기에 집에 잠시 왔다 갈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아들이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아서 안 될 것 같다는 대답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쉼은 있어야 할 텐데….“그럼 방학 때 아버지가 잠깐 방문하마.”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시간이 흘렀다. 1학기 기말 시험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아들한테 연락이 왔다. ‘아버지, 일주일이라도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시험공부 너무 힘들어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일주일이라도 쉬고 싶다는 말을 했을까! 마음이 짠하여 비행기 표를 바로 예매해 주었다. 시험 때에는 정말 분초를 아껴 가면서 전투적으로 공부해야 하기에 체력 소모도 많다.

딸아이 같은 경우도 1학기 마치고 집에 왔는데 살이 10kg 정도가 빠져 있었다. 게다가 활동량도 없이 매일 책상에만 앉아 있으니 몸 안에 있는 근육이 사라져 말랑말랑한 살이 되어 버렸다. 얼마나 시험공부가 힘들면 방학 때 집에 오지 않겠다는 애가 일주일 휴식을 원했을까? 드디어 중간 방학을 맞아 아들은 일주일 쉼을 위해 비행기를 타려고 새벽에 공항에 갔다. 안타깝게도 짙은 안개로 비행기가 오후로 연기되어 버렸다.

아들은 기숙사로 돌아가서 몇 시간 후에 공항에 다시 갔는데 이젠 비행기 자체가 취소가 되었다. 아들은 핸드폰마저 문제가 생겨 연락도 못하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와서 맥 빠진 목소리로 내게 연락을 했다. 일주일만 집밥 먹으며 쉬고 싶다는 그 작은 소망이 무너진 것이다.

마음이 안타까워서 모든 항공사를 찾아 확인해 보니 타 지역에 웰링턴 행 비행기가 바로 있었다. 그래서 아들보고 빨리 공항으로 가서 무조건 웰링턴으로라도 가라고 했다.

웰링턴에서 오클랜드까지 좌석이 없어도 무조건 가서 타라고 했다. 비행기 타고 오는 시간에 더 알아볼 테니 무조건 그 비행기 놓치지 말고 웰링턴으로 가라고 했다.

마음이 급했다. 웰링턴에서 오클랜드로 오는 비행기가 있어야 할 텐데…. 만약 없다면 아들은 웰링턴에서 더 고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일주일만 쉬고 싶다는 아들의 말 한마디에 하나님의 도움을 빌어 꼭 쉬게 하고 싶었다.

준비케 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했다. 자리가 생겼다. 웰링턴에서 오클랜드에 올 수 있는 자리가 하나 생겼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웰링턴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떠나는 비행기이다. 그래도 그것밖에 없으니 예매했다. 이젠 아들에게 연락해 줘야 하는데 핸드폰이 고장이라 어찌할 수 없어 기다리기만 했다.

웰링턴에 도착한 아들이 공중전화를 이용하여 내게 전화를 했다.

“시간이 없다. 지금 바로 오클랜드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놓치면 큰일이다.”

그날은 거의 첩보작전 수준이었다. 하나님이 도우셨다.
결국 아들은 무사히 오클랜드로 올 수 있었다. 비행기 좌석도 없는데 무조건 아들을 쉬게 해 주고 싶다는 아비의 소망에 하나님이 응답하셨다.

이전 기사‘더 글로리’
다음 기사“평안과 꿀잠을 선물로 주시기를”
정 재식
그리스도신학대학교(M.Div)와 침례신학대학교(D.Min)에서 공부했으며 청년사역과 다음세대 사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현재 뉴질랜드 대흥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크리스천 자녀교육에 대한 책 ‘하나님이 하셨어요’를 집필하였으며 그 내용을 본지에 연재함으로 다음세대를 어떻게 품어야 할지를 함께 공감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