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길로 달린 놈

“갸가 여기 달리다 교통경찰에 걸린 거 아닐까?”
“여기서요? 그러게~!”

“이렇게 앞 차가 천천히 달리니 앞지르기를
안 할 수가 없지~”

“갸가 앞지르기하다가 딱지를 뗐다구요?”

“그렇지! 앞 지르기해서 쌩~ 달리다 딱! 걸린 거지”

“무슨 소리에요? 길이 막혀 갓길로 쌩~ 달리다가
딱! 걸린 거랬지~~”

“당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웬 갓길?”
“난 갓길로 쌩~하고 달리다 걸렸다는 줄 알았는데?”

“갓길 얘기도 안 나왔는데 당신 어디 갔다 온 거야?”
“그러게요…… 같이 들었는데…… 갓길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분명 길이 막혀
갓길로 쌩하고 달리다
딱! 걸려 억울하게 딱지 뗐다고 했는데
앞지르기를 하다가 걸렸다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갓길이 맞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들었는데……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

딱지 하면 ‘장 딱지’라고!
그동안 내가 딱지로 벌금 낸 것만 해도
집 한 채(?) 거뜬히 살 수 있을 정도로
딱지에 도가 튼 내 말이 분명히 맞을 거라 믿습니다.

그래도 운전 중인 남편 열받게 하면
냅다 밟아 갓길이든 앞지르기든 쌩~달릴 거 같아
더 이상 진도 나가지 않고 멈췄습니다.

“참, 말이라는 게!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말을 들었는데
왜 당신은 앞지르기하다가 딱지를 뗐다고 듣고
왜 난 갓길로 쌩 달리다 딱지를 뗐다고 들었을까~?
만나면 누구 말이 맞는지 물어봐야지.”

그러면서 속으로 확신합니다.
‘갓길이 맞지~~’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오는 길에
속도 위반으로 딱지를 뗐다는 청년이
교통경찰에게 15분 넘게 좀 봐 달라고
온갖 애교와 눈물 어린(?) 호소를 했는데도
결국 큰 딱지를 뗐노라고 15분 넘게
그 아까움, 그 열받음을 토했습니다.

덩치 큰 남자 청년의 능청과 애교와 유머가 뒤섞인
너무 재미있게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에 홀려서
갓길인지 앞지르기인지도 모르고 배꼽 잡고 웃었는데

지금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가면서
앞지르기니 갓길이니 서로 맞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앞지르기하다가 딱지 뗐노?
갓길로 가다가 딱지 뗐노?”

전화해서 물어보자니 웃기고,
그냥 가자니 궁금해서 죽겠습니다.

그거 알아서 뭐 한다고
우리도 15분 넘게 앞지르기와 갓길에
진심을 다해 아웅다웅했습니다

주일에 만나서 물었습니다.

“네? 갓길로 왜 달려요?”

KO패!
누가요?
목소리 크게 우긴 제가요!

그러게요…….
같은 말, 같은 소리, 같이 들었는데
왜 이렇게 다르게 알아듣고 내가 맞다고 우기는지……

그러면서 그 말을 다른 이에게 이렇게 하지요.
“세상에, 갼 갓길로 달리다 비싼 딱지 뗐다지 뭐니~!”
“어머나, 세상에! 갼 왜 갓길로 갔데요~!”

이렇게 해서 갼 졸지에 갓길로 달린 놈이 돼버린 거죠.

살다 보면 이처럼,
내가 갓길로 달린 놈을 만들기도 하고,
졸지에 내가 갓길로 달린 놈이 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말을 듣고 똑같이 함께 들었는데
왜 앞지르기로,
왜 갓길 달리기로 다르게 들을까요?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들었기 때문이요,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주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갓길로 달린 놈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갓길로 달린 놈을 만들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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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애
크리스천라이프 대표,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사모, 협동 목사. 라이프에세이를 통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잔잔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 와 '은밀히 거래된 나의 인생 그 길을 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