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갈비뼈가 몇 대 금 가서 꼼짝 못 하고 누워있어요.”
“뭐여? 왜 갈비뼈가 금 갔는데?”
“어휴 몰라요. 말하기도 창피해서…”
“사람 사는 데 창피한 일들이 한두 가진가? 뭔데?”
창피해서 말을 못 한다고 하니 더 궁금해집니다.
어떤 창피한 일을 했길래 갈비뼈가 금이 갔을까?
“서방님께 얻어 맞았수?”
“그 나이에 춤을?”
“발이 꼬여 제 발에 걸려 넘어졌수?”
원래 찍기에 소질이 없는 나인지라
이것저것 찍어 봐도 맞히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거 하나 못 찍는 내가 웃긴 건지
결국 그녀의 사건 전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2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어느 날, 바퀴벌레 한 마리가 안방 침대 위 천정에서
벌벌 기어 다니고 있더랍니다.
그찮아도 ‘그깟 벌레 한 마리도 못 잡느냐?’고
핀잔을 들었던 터라
오늘은 기필코 저 벌레를 잡아
보란듯이 자랑을 하고 싶었습니다.
“봐! 나도 벌레 잡았지?”
벌레는 어떻게든 잡을 순 있겠는데
잡은 다음에 푹 눌러 죽일 때
벌레 터지는 그때의 그 느낌이라는 게
너무 싫잖아요?
휴지를 뭉쳐 들고 의자 위로 올라가
몇 번의 헛 손사래짓 끝에
겨우 그 벌레님을 잡고 내려오다
옆에 놓인 의자 모서리를 잘못 밟아
그만 우당탕탕 넘어졌답니다.
우당탕탕 넘어지는 사람이
넘어질 곳 골라 넘어지겠습니까?
박을 곳 골라 박겠습니까?
아님, 사뿐히 내려앉겠습니까?
의자와 함께 냅다 넘어지면서
하필 골라 박은 곳이
의자 가장 딱딱한 팔걸이에
갈비뼈를 대놓고 박았답니다.
“아이고, 그만하길 정말 다행이네요.
그 갈비에는 철심을 박았나?
어떻게 그리 세게 박았는데
박살 나지 않고 금만 갔데? 감사하슈~!”
“웃기지 마셔요, 갈비 아파요~!”
전에도 기침하다 갈비에 금 갔던 전과(?) 있는 사람인지라
냅다 떨어져 박았는데도 금만 간 걸 보니
그 갈비도 내성이 생겼나 봅니다.
“병문안 함 갈까?”
“아녀라, 꼼짝 못 하고 있어서 머리도 못 감고
세수도 못 하고 몰골이 장난 아녀요.”
“참내, 갈비 금 가서 아파 누워있는 사람이 당연하지.
그럼 샤워하고 머리하고 화장하고 앉아 있으려고?
그러고 있으면 미친 줄 알어~!”
“아, 웃기지 말라구요. 겨우 붙어가는데……”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우는 사람이나,
바퀴벌레 잡다 갈비뼈 나간 사람이나
도긴 개긴입니다.
그래도 감사하게도
꼼짝없이 천정만 바라보며 누워서
하나님 많이 쳐다봤다 하네요.
은혜로 충만한 시간 보냈다고 하네요.
두루두루 감사했다고 하네요.
그래요, 우리의 특권!
언제든 감사할 수 있다는 것,
무엇이든 감사할 수 있다는 것,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
갈비뼈 박살 안 난것 더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죠!
며칠 전 아침에 ‘평생 감사’의 책장을 넘겼는데
그날의 글이 내 마음에 깊이 왔습니다.
“아침에 감사로 눈을 뜨면 그 생활은 맑음,
감사의 햇살이 불평의 구름에 가리우면
그 생활은 흐림,
그리고 그 불평이 연속되면 그 생활은 장마!”
맑음! 흐림! 장마!
“오늘의 일기예보입니다!
오늘은 맑았다 흐렸다 소나기가 오락가락하겠습니다.
그래도 대체로 맑은 날씨가 예상됩니다!
우산은 안 가지고 나가셔도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