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봄날의 햇살 같아”

얼마 전에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드라마가 너무나 인기가 많아 저 또한 관심을 갖고 아내와 함께 보았습니다. 그중에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 장면이 있었는데 바로 5화 ‘우당탕탕vs권모술수’편이었습니다. 이편에 나왔던 한 장면은 저 뿐만 아닌 많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장면이었습니다.

5화 가운데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가 대학 동기 변호사인 최수연과 대화를 합니다. 별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우영우는 ‘권모술수’ 권민우 변호사가 자신을 ‘우당탕탕 우영우’라고 부르는 것이 싫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가진 자폐와 관련된 느낌이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최수연은 자신에게도 별명을 붙여 달라며, “최강 동안 최수연”, “최고 미녀 최수연”은 어떤 지 농담처럼 물어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우영우는 “아니야!”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어 이야기합니다.

저는 당연히 그 뒤에 이어지는 우영우의 대사가 개그 포인트일 것이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영우는 최수연에게 “너는 그런 것 아니야”라며, “너는… 봄날의 햇살 같아”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우영우의 대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로스쿨 다닐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너는 나한테 강의실의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 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나를 놀리거나 속이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 지금도 너는 내 물병을 열어주고 다음에 구내식당에 김밥이 나오면 나에게 알려주겠다고 해.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그 말을 들은 최수연은 크게 감동하며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말”
잠언 가운데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언 25:11)”란 구절이 있습니다. 간혹 한 번씩 접했던 표현이었지만 어떤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경우에 합당한 말이 매우 아름다운 것이구나’라는 생각밖에 못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찾아보니 그 의미는 쉬운 말로 해서 ‘시의적절한 말’을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때와 상황에 아주 걸맞은 말을 하는 것이 바로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라는 것입니다. ‘아로새기다‘란 말의 뜻은 ‘정교하고 아름답게 무늬를 새기다’는 의미입니다.

은쟁반 위에 썩은 사과가 있다면 그것은 시의적절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금사과를 지저분하고 누추한 그릇 위에 두는 것 또한 시의적절한 것이 아닙니다.

상황과 때에 매우 적합한 말을 해서 그 말이 가장 빛나는 상황을 만든 것이 바로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은 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영우가 최수연에게 했던 그 말, “너는 봄날의 햇살 같아”라고 했던 말이 바로 그런 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잠언 가운데는 ‘말’에 대한 구절들이 종종 보입니다. 그중에는 이런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은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의 예시 또한 나오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잠언 25:12)” 슬기로운 자의 말은 ‘책망’ 조차도 은쟁반의 금사과와 같을 것입니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잠언 27:14)” 아무리 좋은 말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한 말은 이웃을 괴롭히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잠언 26:20)” 우리의 시의적절하지 못한 말들이 얼마나 우리 공동체에 큰 해악을 끼치는지 이야기합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잠언 27:21)” 언어가 사람을 단련시킬 수 있다고는 하지만 칭찬하는 말이 사람을 단련한다는 말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말입니다.

마치 우영우의 최수연을 향한 말과 같습니다. 우영우의 칭찬의 한마디가 최수연의 인생에 얼마나 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까 생각해 봅니다.

‘말’이라는 것이 정말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요즘 특히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말’은 정말 어렵습니다. ‘말하기’는 이미 어렸을 적 익힌 기술인데도, 일평생 연마해도 되지 않는 것이 ‘말’인 것 같습니다. 특히 시의적절한 말, 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말은 더욱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는 말로 먹고사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 말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 또한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우영우와 같이, 잠언의 솔로몬과 같이, 그리고 그보다 예수님과 같이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솔직히 그런 말은 의도하고 계획해서 나오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 정말 진실된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상대를 대할 때, 그 가운데 자연스럽게 상대방에게 감동이 되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며 30대 초반에 경험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당시 새롭게 함께 일하게 된 사장님과 단둘이 대화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당시 진심으로 그 사장님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즐겁고 기쁘고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장님께 “함께 일해서 너무 기쁘다”며, “기대가 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가 그 사장님의 마음을 울렸다고 이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그 말이 바로 그 사장님에게는 ‘시의적절’한 말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소망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일으켜주고, 회복시키고, 생명을 주고, 희망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의 말 한마디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그런 인생을 꿈꿉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지혜로는 쉽지 않습니다. 오직 지혜의 영이신, ‘말씀’으로 ‘생명’을 창조하신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회복의 말, 소망의 말, 생명의 말,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글을 마치고 싶습니다. 그저 따라 하는 것이고, 시의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은 봄날의 햇살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