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요나단처럼

초보의 실수
12월에 꿀을 채밀한 다음해인 1월에는 분봉을 해보았다. 분봉은 벌통에 벌 숫자가 많아져서 벌들이 살 공간이 부족할 때 새로운 빈 벌통에 일부의 벌을 옮겨 담고 새로운 여왕을 만들어 벌통을 늘리는 것을 말한다.

이때까지 나는 인공으로 여왕벌 만드는 법을 몰라서 벌통을 구매한 분께 부탁해서 새로 태어난 여왕벌을 얻어와서 새로 분봉한 벌통에 신왕을 넣어주고 신왕이 산란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새로 태어난 신왕은 숫벌과 짝짓기를 하고 난 후에야 산란을 시작한다.

2월에 꿀박스를 열어보니 또 꿀이 차 있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나머지 꿀도 채밀을 했다. 그런데 이건 나의 큰 실수였다. 일주일 후에 벌통을 열어보니 여왕벌을 비롯해서 벌들이 보이지 않았다. 벌통에는 주먹만큼의 벌만 남아있었다.

이유는 벌통에 먹이가 없어서 벌들이 먹이를 찾아서 집을 나간 것이었다. 채밀을 하더라도 벌이 먹을 수 있는 먹이는 남겨두고 채밀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처럼 꿀박스에 꿀은 계속 채워지는 줄 알았다.

다행히 분봉한 벌통이 남아 있어서 애지중지 돌보았다. 그리고 그 해 겨울을 잘 넘겼다. 이듬해 새로운 봄이 찾아왔다. 양봉 시즌 2번째가 되었고 나에게는 새로운 만남이 있었다.

다윗과 요나단
초보 양봉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하면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양봉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니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이 양봉이 내 가정이 먹고 사는 일을 넘어서 선교적 비지니스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 필리핀에서 6년 간 공부하며 사역을 했다. 뉴질랜드에 정착하면서 뉴질랜드를 베이스 캠프 삼아 선교지에서 ‘어떻게 하면 선교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그 시기에 비즈너리(Business+Missionary)라는 새로운 형태의 선교사역을 알게 되었다. 고민 끝에 양봉이라는 선교 전략을 선택하게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6, 7월은 양봉시즌에 있어서 비수기이고 벌통에 먹이만 가득하면 자주 내검을 하지 않고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선교지에 가서 양봉도구를 후원하고 양봉기술을 알려주거나 마켓팅 전략을 함께 짜며 선교사를 돕고 지역 주민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도하던 중 나와 같은 꿈을 품고 계신 집사님을 한 분 알게 되었다. 그 분도 같은 비전을 품고 한국에서 양봉을 배워 뉴질랜드에서 양봉을 하다가 몸이 아파서 잠시 쉬는 중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우리는 만났고 마치 다윗과 요나단처럼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함께 일을 하기로 했다. 집사님은 나보다 양봉경력이 많고 다리 수술을 한 터라 다리가 좀 불편해서 힘든 일은 내가 좀 더 하고 옆에서 잔소리로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집사님과 양봉을 함께 시작한 해에 우리는 벌통을 놔둘 수 있는 지역을 찾아 마누카 꿀을 채취하기 위해 피하 지역에 양봉장을 구했고 그곳에 벌통을 놓았다.
그리고 동쪽에서는 가을과 겨울철에 벌을 관리할 수 있는 베이스 캠프를 구해서 꿀을 수확한 후에 벌통을 옮겨 관리하기로 했다.

벌통 놓을 자리 선별

한 시즌에 두 번 마누카 꿀을 채밀하기 위해 파노스 지역에 캐러반을 갖다 놓고 그곳에서 숙식하며 양봉장을 만들었다. 그 해에 나는 분봉을 해서 벌통을 여섯 통으로 늘렸고, 내가 수확한 꿀은 120kg 정도 되었다.
라벨을 만들어서 500g 통에 담았고,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주변에 계신 목사님과 선교지에 계신 선교사님들과 나누어 먹었다.

나는 나눌 수 있는 기쁨이 있었고, 꿀을 받은 분들은 받는 즐거움이 있었다. 특히, 식도염이나 위장병으로 고생하고 계신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이 꿀을 먹고 난 후에 많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 보람을 느꼈다.

그러던 중 집사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어깨가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고 암 투병중이었던 터라 더욱더 신경이 쓰였다. 다음 시즌을 위해서 벌통을 동쪽 베이스로 옮겼고 그것이 집사님과 함께 일을 하게 된 마지막이 될 줄은 미쳐 몰랐다.
4월에 집사님은 호스피스로 옮겨져서 요양을 했고, 그해 7월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돌이켜 보면 집사님은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가며 무거운 벌통을 옮겼고, 힘든 일을 견뎠다. 그리고 나에게는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나는 믿는다. 부족한 나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려고 집사님을 나에게 보내주셨다는 것을…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함께 먹고, 자고, 웃고, 울고 했던 시간이 지금도 그립다.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집사님은 그렇게 하나의 밀알이 되었고, 그 열매를 통해서 또 다른 많은 열매들이 맺어질 것이다.

<Tip>

꿀벌의 비행
꿀벌 한 마리가 한 번의 비행으로 얻어지는 꿀물은 30-50mg이다. 1kg의 숙성된 꿀을 얻기 위해서는 4만 번의 비행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양이다. 아주 작고 연약한 꿀벌의 수고로 인해서 우리가 먹게 되는 꿀은 정말로 귀하고 값진 것이다.

꿀벌의 대화
동물행동 학자인 칼 본 프리시를 통해 꿀벌이 춤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 밝혀졌다.
원무: 밀원 거리가 90m 이내에 있을 때, 벌통 안에서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춰 외부 활동 벌들에게 밀원 방향, 종류, 거리에 대한 정보를 알려줌.
꼬리춤: 새로운 밀원을 발견하고 밀원의 거리가 90m 이상일 때, 분당 약 40회 좌우로 흔들며 반원을 그리고, 멀수록 흔드는 횟수가 점차 감소하게 된다.

꿀벌의 습성
꿀벌은 무한한 종족 보존력을 갖고 있으며, 1군 1왕으로 벌통 하나에 여왕 한 마리가 생존하는 것을 규칙으로 한다. 군집 생존을 위한 계급 분업생활로 여왕, 일벌, 수벌이 존재한다. 꿀벌은 약 2km 이내에서 행동하며 귀소성을 갖고 있어서 기억비행을 통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꿀벌의 색 구분
꿀벌은 사람이 인지하는 색을 모두 인지하지는 못한다. 붉은 색에 대해서는 색맹을 가진다. 주황색, 황색, 녹색은 녹색으로 인지하고, 청색과 보라색은 청색으로 보인다. 따라서, 벌통을 각양각색으로 칠해서 놔두는 것은 꿀벌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벌통 앞에 모양으로 표식을 해 두는 것이 오히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