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선 사다새

부활주일을 맞기 위해 호산나주일부터 시작하는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예수님 당시 목요일 저녁 예루살렘 시온산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하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이뤄진 최후 만찬의 현장이 떠오른다.

성지순례를 가면 마가의 다락방을 방문한 기억은 하면서도 정작 마가의 다락방 고린도 양식 기둥에 장식된 사다새는 잘 보지를 못하고 오는 것 같다.

사다새는 펠리컨을 말한다. 전승에는 사다새가 새끼에게 먹일 것을 구하지 못하면 새끼를 살리기 위해 가슴을 부리로 뜯어 피를 흘려서 자신의 가슴살을 새끼가 쪼아 먹게 한다고 한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가복음 14장 22절-24절에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다. 이를 두고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떡과 잔을 제자들에게 나눠 주신 희생의 상징이 있다고 본 것이다.

마치 사다새의 새끼들이 어미의 가슴살을 쪼아 먹는 상징처럼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에도“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라고 이사야1장 2절에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거절하고 배신과 배교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사도 요한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높이 달리셔서 옆구리의 상처로부터 물과 피를 흘렸다고 요한복음 19장 34절에 말하고 있다.

사다새의 사랑과 희생의 상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결하여 예수 수난의 의미와 가치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사다새의 습성은 자기희생이라는 의미와 상징으로 차용되었다.

이러한 전승은 개신교에는 좀 낯선 의미로 다가오지만, 서양의 기독교 문화에서는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한다고 여기고 받아들였지만, 사다새는 물고기를 잡아서 자신의 긴 부리 주머니에 두었다가 새끼에게 준다. 새끼는 자신의 긴 부리로 어미 새의 입속에 넣어 받아먹거나 어미 새가 토해내어 새끼에게 먹인다고 한다. 사다새는 한국에는 서식하지 않는다.

성경에는 “나는 광야의 사다새와 같다”고 다윗은 시편102편 6절에서 고백하고 있다. 광야는 사막이라고 해도 된다. 다윗은 사막에 홀로 선 사다새와 같다고 고백한다.

고난 주간을 보내며 부활주일을 맞이하면서 고독하지만, 사랑과 희생을 품은 사다새의 이미지와 같이 광야에 홀로 선 그리스도인처럼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예수 생명, 예수 부활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