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북한 위해 기도할 때

김영길 목사

<한국 오픈도어선교회 북한선교연구소가 발간한‘북한개발소식 1월호'(출처: 북한구원신문(http://www.savenk.com)에 게재된 원고를 허락받고 저자가 일부를 첨가하여 재수록한다. 문의: 김영길gilyk205@gmail.com>

분단 후 북한교회의 박해와 실상에 대한 한국교회의 이해와 책임

북한교회의 핍박과 실상
2003년은 중국에 체류하던 탈북유민들에게 잔인하고 비참한 박해가 시작된 한 해이며 북한의 기독교 역사가 다시 새롭게 쓰이기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북한과 북한교회의 역사에 대한 이해
“하나님! 저 죄와 어둠의 땅에 내린 대재앙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식량 사태로 내 몰린 북한의 백성들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며 변방 중국 땅에서 머물며 불안하게 생존하였는데 저 불쌍한 생명을 왜 다시 그 핍박과 우상의 땅으로 잡아가는 것입니까?”

북한의 대 재난은 1994년 김일성 사망과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시기인 1980년 말부터 시작되어 300만이 굶어서 죽는 비참한 식량 사태로 이어졌으며 그로 인해 철옹성 같은 동토의 벽이 무너지고 중국으로 유입되었던 탈북유민1들이 다시 북으로 강제 압송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선생님 잊지않겠습니다”라며 식량 구해가는 북한 10대 아이들

사실 1990년 초기부터 2003년경까지 중국에서 체류하던 탈북유민의 숫자는 매해 마다 30만 명을 넘나들었으며 그들의 상당수가 조선족교회와 심지어 한족교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시기에는 별다른 제재 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연변의 조선족 자치주 6개 시 현의 삼자교회에도 자유롭게 출입하며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주 정부가 있는 연길시에는 북한 탈북유민들만 모이는 교회가 있을 정도였다.

이러하던 2003년에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외교 공관을 통한 탈북사태가 발생하면서 국제인권 문제로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자 중국의 공안과 북한의 보위부가 합동하여 탈북유민들을 강제 압송하게 된 것이다.

두만강의 중국 철책

이 시기를 한국의 기독교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강제압송 되어간 사람들 중에 30만이 넘는 크리스천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1999년부터 영국 시민권자로 국제난민기구(Mercy Corp International)의 파트너로 두만강 유역의 조선족교회2 를 상대로 북한의 도강자들에게 식량(Survival Kit)과 함께 성경을 전달하며 전도와 세례를 통해서 북한 내 지하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우고 양육하는 사역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포기하셨다면 저도 이제 북한선교사역을 접고 영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심지어 철사 줄에 손과 귀가 꿰어서 강제 압송되던 사태에서, 그렇게 끌려간 대부분은 강력한 반동분자로 분류된 크리스천들이었다. 이를 목도하면서 비통하게 기도하던 필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이다.

“내가 저들을 포기한 것이 아니고 저 북한 땅을 다시 회복하려는 것이다! 저 땅 북한은 내 백성들이 핍박받는 거룩한 땅이다!”

함북 꽃제비 수용 건물

북한교회의 3대 박해
1945년부터 북한의 교회는 남한 교회와는 전혀 다른 역사가 시작되었다. 북한은 참혹한 박해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밥에 고깃국도 못 먹는 나라로 전락하였으며, 남한은 세계교회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큰 복음의 은혜와 부흥과 경제 발전의 축복을 받았다.

김일성 시대(1945-1994년): 북한교회의 멸절
북한은 김일성이 집권하면서 남과 북의 분단이 고착되었으며 1950년의 6. 25 민족 동란을 전후해서 36년간의 일본강점기도 없애지 못했던 한때 평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했던 북한의 그 왕성했던 교회들을 완전히 전멸시켰다.

김일성은 기독교의 사상이 북한 사회주의와 함께 갈 수 없다고 하면서 그의 북한 통치의 정치 노선을 명확히 천명하였으며 반사회주의라는 명목으로 교회 철거, 기독교 지도자의 순교와 강제 노동을 거치면서 북한의 기독교는 점차 사라져갔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 가정의 자녀들을 3세대 연좌제로 묶어서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르고 태어난 생명을 사상범의 특별감시 구역에 가두어 교육의 일반적 혜택은 물론 기본 인권까지 짓밟으며 믿음을 뿌리까지 제거하도록 했었다.

더불어서 남한교회마저도 1980년도 경부터 그렇게 뜨겁게 북한선교와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던 열기가 식어 갔으며 드디어는 과연 북한에도 교회와 성도가 존립하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할 때 북한 땅에 재난(홍수와 기근)의 대재앙이 내리며 김일성이 사망하게 된다, 김일성이 사망하던 1990년 초에 그나마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겠다는 인민에 대한 정책이 수령 우상화의 주체사상 통치로 바뀌었다는 것은 성경을 두고 주목해 볼 내용이다.

김정일 시대(1994-2011년): 새로운 북한교회 출생
필자는 1999년 두만강 유역의 조선족교회에서 북한 도강자들을 만나면서 “아! 한국교회가 그렇게 뜨겁게 기도했던 북한 선교의 문을 열어주셨구나”라는 응답의 확신으로 사역하였는데 차츰 “믿음과 교회를 지키다 순교를 당한 북한 성도의 피를 바친 기도를 하나님이 받아주셔서 저 철옹성 같은 독재우상의 벽을 허물어 주셨다”는 깨달음도 가지게 되었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시기인 1990년 초부터 2000년 초까지는 그야말로 스스로 자신이 알아서 살라는 자립 갱생은 300만 명이 굶어서 죽던 참혹한 때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의 시기에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나들며 중국으로 식량을 구하며 살려고 넘어왔던 사람들이 복음을 접하고(당시 중국의 동북 3성에 투입된 한국 선교사가 3천 명에 육박한다고 전한다) 그 식량과 함께 복음이 다시 북한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또 다른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식량을 구해가는 북한 소년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와 오픈 도어즈(Open Doors)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는 30만의 기독인이 있고 그중 6-11만 명에 가까운 기독인이 중대 반동분자로 분류되어 추방되었거나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다는 죽음의 골짜기 그 처참한 수용소에 갇혀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필자는 더 많은 크리스천이 북한에 있으며 인권유린의 사각지대 가운데서 인간이하의 차별과 핍박 가운데 있다는 것을 증언한다.

김정은 시대(2011-현재): 새로운 핍박과 한국교회의 침묵
북한에서도 하늘 종교인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하면 그 형벌을 낮추거나 석방을 해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지금의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믿음을 부인하지 않은 성도들”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그래도 김정일 시대는 군을 앞세운 선군정치를 하면서 큰 틀에서 시장개방과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상호 방문을 허가함으로써 북한성도들이 오가며 전하는 복음의 문이 열려있었고 북한 내의 가정교회도 감시를 피해가며 예배를 드리거나 숨어서 성경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접어들고 보위부 정치를 하면서 군과 당, 정부와 인민까지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면서 전면적인 숙청4 이 일어났고 김정일 시대에 생겨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적발되어 더 심한 핍박을 받았으며 다시 순교의 피가 북한 땅을 적시고 옥중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북한 성도들과 옥에 갇힌 크리스천들은 김정일 시대에 태어나서 그 아들 시대에 더 참혹한 핍박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소수의 교회를 제외하곤 북한과의 관계를 정치나 이념으로 해석하면서 다수의 한국교회가 방관하거나 침묵하여 왔다는 것이다.

이는 복음 통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순교의 믿음으로 한국교회를 지켜온 초대교회 선배들과 부흥 발전했다고 자랑하는 세계의 교회 앞에서 심한 수치요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북한교회의 고난은 우리와 무관하다고 과연 말할 수 있겠는가!

북한교회의 고난과 부흥 발전한 한국교회 책임
선교의 주체는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북한선교에 대해서 한국교회가 주체적 입장에서 볼 것이 아니라, 76년 동안 북한에서 일어난 핍박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해서 주목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76년의 실상을 간과하고선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체재에 대한 이해와 성경적 국가관의 준비
북한은 한 나라가 아니다. 북한은 백두혈통 주체사상의 김일성을 우상화한 전제국가다.
그리고 백성들은 1945년 민족의 분단 이후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인권의 자유와 종교의 의지조차 빼앗기고 마치 강도를 만난 사람처럼 포로가 되어 노예처럼 살고 있다.

우리가 북한을 볼 때 하나로 인식하는 것은 정치나 이념의 관점에서 비롯하는 것이며 성경적 시각은 스스로 태양신이 되어 절대적 숭배를 받으며 죽어서도 태양 궁전에 안치되어 절대 숭배의 대상으로 신적 존재가 된 우상과 그 혈통을 이어서 광명신(김정일 생일이 광명절이다)이 된 김정일과 3대의 더 사특한 핍박자 김정은과 그 속박과 우상의 권세에서 구원받아야 할 백성들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북한교회의 고난에 대한 이해
“북한교회와 성도가 76년 동안 고난 겪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복음 통일을 바라보는 역할의 시작이 될 줄로 믿는다.

남과 북은 한 민족이며 한 나라였다. 그리고 교회사적으로 볼 때도 한 노회요 한 총회였다, 또한 성경적으로 보면 “한 몸이요 그 몸의 지체이다”(고린도전서12:15-26). 만약에 한 지체가 위중한 상태에 있는데 다른 지체에 그 고통이 전달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다면 그 몸은 마비되었거나 이미 죽어있는 상태와 같다고 하겠으며 이는 모든 이해를 떠나서 우리 한국교회의 영적인 상태에 대한 진단이라고 본다.

그리고 우리가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성경적 국가관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이루어지며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볼 때 남과 북이지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하나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민족적 혈통에서나 또한 복음을 통해서 교회적으로도 그렇게 출생했기 때문이다.

양식을 나누어 주며 복음을 전하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고 본다. 북한은 다시 막히고 단절되었으며 그 핍박은 마지막을 항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북한교회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은 기도
북한의 30만 성도와 옥중의 생명을 내맡긴 10만 성도가 나라와 민족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북한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준비는 이미 마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북한과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던 1980년도까지 발전하고 부흥하였음을 상기하고 다시금 무릎을 꿇고 자성하며 회개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구한다. 필자가 두만강 식량 배급처소에서 만났던 북한 소녀(당시 고등학교 1학년)의 기도를 한국교회에 보내며 기도할 수 있기를 전한다.

북한소녀/성도의 기도(필자의 저서 중에서)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북한 소녀

하나. 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들키면 나와 우리 가족은 모두 죽습니다.
하나. 굶주림에서 해방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도 빠지고 학생들도 과반이 식량 구하러 가고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 한국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한국교회가 물질 때문에 타락했다고 하는데 회개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네가 무엇을 알기에 한국교회에 대하여 그같이 말하느냐?”는 물음에 그 소녀는 “우리는 잘 모르지만 모두(북한성도)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필자는 40대에서 60대가 되기까지 20년 이상의 황금 같은 시기를 북한 선교를 위해 바쳤지만 나 역시도 “북한이 당하는 고난의 의미와 한국교회의 책임”을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저들 고난받는 백성들이 우리의 형제요 믿음 안에서 한 지체임을 알고서 그들을 가슴에 품고 모두가 기도할 때 한국교회가 두려움 가운데서 다시 거룩하게 회복될 것이며 저 북한 교회의 76년 고난 겪는 의미와 정금 같은 순교의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허락하시고 미래의 복음 통일의 나라로 나아가게 할 것이며 마지막 때까지 선교 한국으로 쓰실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 우릴 구해주시라요!”
필자의 저서 “이제 그만 우릴 구해주시라요!”에서 소개한 북한 성도의 이야기 몇 가지를 나누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연변의 한 전도사가 소개해 준 30대 후반의 명희 자매는 딸 하나를 둔 엄마였다. 소개받을 당시 그녀는 2년 전 세례를 받고 북으로 돌아가 많은 사람을 도우며 전도하고 있었다. 명희 자매는 만남 이후에도 북한 내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으나 그만 북한 보위부에 의해 예수 믿고 전도하던 것이 발각되어 검거되고 말았다.

고문으로다리 절단된 그리스도인

일주일간 변방부대에서 조사를 받다가 이송하는 군용트럭에서 탈출하려고 뛰어내렸지만 그만 척추를 심하게 다치고 말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배급처가 된 조선족교회

그동안 얼마나 심하게 고문을 당했는지 온몸에 성한 곳이 없고 내상까지 입어 살 가망이 없어 보이자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도와줄 길이 막막한 가운데 힘써 기도하였지만, 명희 자매는 사상범으로서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하고 며칠 동안 의식을 잃고 있다가 주님 곁으로 떠나고 말았다.

명희 자매가 살던 함경북도 무산은 2002년 어느 성도가 성경을 보급하다가 반역죄로 총살당하고 일가족 10여 명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등 많은 성도가 순교하여서 필자는 순교자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자매는 약사인데 돈을 벌겠다고 강을 건넌 막내딸을 찾아 본인도 도강하였다. 교회에 탈북자들이 많이 다니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왔는데 아직 딸의 행방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 여성과 같이 예배를 드리는데 그 마음과 태도가 매우 간절해, 사람으로선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가능하시니 믿음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자고 위로했다. 찬송을 부르니 어릴 때 외할머니가 자기를 무릎에 앉혀 놓고 부르던 노래와 비슷하다고 한다. 자기를 안고 자주 뭐라 중얼거리시며 자장가처럼 불러주셨던 기억이 난다고 하였다.

이분의 할머니는 숨은 신자였다. 이분은 처소 교회에서 3주 정도 성경 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고 북으로 돌아갔다.

북한 성도 세례식

그 이후 연락이 끊기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던 중 2018년 여름, 9년 만에 그녀가 교회를 찾아왔다. 이분의 말에 따르면 김정일 시대 말기까지는 지역에 따라서 비밀리에 가정 예배나 기도회도 할 수 있었고 친인척에게 전도할 기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은이 통치하면서 워낙 보위부의 감찰정치가 위중해져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밤새 이웃 사람들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졌고, 서로 감시하고 의심하는 풍조도 더욱 만연해졌다고 한다.

자신도 믿는 것이 들키게 되면 본인 뿐 아니라 전도 받은 사람도 목숨이 위태로워지니 복음을 전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면서, 본인의 두 딸에게도 믿음에 대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며 한숨지었다. 이것이 지금 김정은 시대 북한의 현실이다.

“저 땅은 내 백성들이 핍박당하는 거룩한 땅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땅이요 회복해야 할 땅이요 미래의 한국임을 믿는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고난받은 북한교회를 지금 우리에게 내어주신다면 과연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지? 그런 영성을 가진 한국교회가 되어있는지를 스스로 자문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기독교의 태동은 고난받으신 예수님의 십자로가로부터이다. 초대교회로부터 기독교는 고난과 핍박을 통하여 다음 시대를 준비하며 새로운 복음 시대의 문을 열어왔다.

식량 속에 감춰져 보내지는 성경

“우리 한국교회가 76년의 그 오랜 시간의 혹독한 핍박 가운데 있는, 피로 찢어지고 상처로 나누어진 북한의 지체를 주님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의 가슴으로 품고, 받은 축복을 두려워하는 심정으로 복음 통일의 재단에 바쳐지기를 기원한다!”

김영길 목사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영국 런던개혁침례신학교 신학석사
과정 수료. 전 우리민족서로돕기 유럽집행위원장. 국제난민기구(Mercy Corp International)와 두만강 유입 북한 난민에게 비상 식량 지원하는 ‘두만강 프로젝트’ 운영. 현재 북한 크리스천살리운동 대표. <이제 그만 우릴 구해주시라요!>, 에젤, 2020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