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교사

안녕하세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글로나마 인사 드리며 나의 짧은 소개로 첫 호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첫눈이 펑펑 오는 1993년 11월에 태어나 초등학교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발랄하게 놀이터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다 두 살 터울 오빠의 교육을 위해 부모님의 고민 끝에 얼떨결에 어머니와 오빠와 함께 2005년 12월 초에 뉴질랜드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오자마자 학기 전에 Takapuna Duke Institute of Studies에서 영어 공부를 하다 Birkdale Intermediate School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서는 거의 매일 밤마다 영어 잘 하는 꿈을 꾸며, 영어로 잠꼬대를 하며 눈물을 흘리며 한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어머니를 붙잡고, 또 전화로 아버지를 붙잡으며 제발 한국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애원했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당연히 영어 소통이 수월하지 않았기에 E.S.O.L (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s) class에서 영어 보충 수업을 들었습니다. 거기서 만났던 제 담당 선생님이었던 Mr. Bowmar의 따뜻하고 열정 있고 재미있는 수업을 통해 영어에 대한 재미와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 ‘선생님’이란 이미지는 무섭고 내 할 일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혼난다는 경직되어 있던 이미지였다면 뉴질랜드를 오고 나서의 ‘선생님’ 이미지의 단어는 사랑, 따뜻함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재미있고 편안함 속에 매일 하교 길에 파이를 사 들고 집에 와서 놀면서 Year 8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Year 9 때는 Albany Junior High School을 6개월 정도 다니고 나머지 6개월은 시골로 내려가 Waiuku College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Year 10부터는 Westlake Girls High School를 다니며 마지막 학년까지 졸업을 잘 마쳤습니다. 마지막 학년인 Year 13때 친구들이 어떤 대학교와 어떤 과를 갈지 고민하고 준비하고 있었을 때에 나는 사실 아무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나도 저런 친구들처럼 하고 싶은 과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하다 다들 원서를 넣을 때까지 나는 어떤 학교를 가야 할지도, 어떤 과를 지원해야 할지도 몰라 원서조차 넣지 않았습니다.

3월에 대학교가 시작하는데 2월에서야 오클랜드 대학교 Linguistics 를 지원했습니다. 나의 막연한 생각은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영어 학원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치 않게 입학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아프셔서 치료를 위해 한국에서 1년동안 병간호를 하며 지냈습니다. 이 시간 동안 나의 미래를 곰곰이 생각하며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생각하다 문득,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 놀이하는 것을 좋아했고 사촌동생들과 노는 걸 좋아했기에 ‘교육학’을 지원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오클랜드 대학교 Education Foundation 코스를 1년 밟고 본과 Bachelor of Early Childhood Education을 입학하며 때로는 눈물 흘리며 인생의 처음 써보는 2000자-5000자의 Essay를 쓰며 눈물로 과제를 할 때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첫 실습에서는 5주 내내 코피를 쏟고 감기도 걸리고 이게 정말 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힘들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게는 100% 확신이 없었지만 계속 그 걸음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느꼈고 공부를 할 수 있게 힘과 지혜를 주셔서 그때그때마다 기적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졸업할 즈음에 청년부 제자반도 막을 내릴 때였습니다.

끝 마칠 때의 말씀은 사도행전 1장 8절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내가 이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부탁드리며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알겠습니다. 주님의 증인으로 남을 섬기며 제가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며 꿋꿋이 버티며 살겠습니다. 그런데 제게 체력을 꼭 주세요. 유치원에서 일하려면 체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제게 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지난 2018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일하면서 그렇게 실습 때마다 코피를 쏟던 내가 코피를 안 쏟게 되고, 심지어는 유치원에서 제일 힘있고 열정 있는 교사로 동료들 사이에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냐고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사실 취업 전까지 나에겐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 길이 맞나? 100%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할 곳도 열심히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내겐 그저 가까운 곳에 다녀야겠다 싶어 무작정 CV를 들고 집 앞 유치원을 찾아갔습니다. 매니저가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놀란 눈치였고 그 자리에서 본의 아니게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붙어버렸습니다.

하지만 Glenfield branch에서 구하는 자리의 인터뷰여서 집 앞이 아닌 Apple Tree Preschool에서 나의 첫 유치원 교사로서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나이도 경력도 제일 어린 baby teacher였고 적응하는 한 두 달 정도는 유치원 화장실에 들어가 남몰래 눈물도 훔쳤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하면서 내가 정말 100% 이 일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깨달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비록 그 전까지는 확신이 안 섰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시고 모든 시간들을 통해 훈련시키셨고 또 훈련시켜 가시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가장 먼저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게 되었고, 이 아이들의 중요한 0-5세의 시간을 내게 믿고 맡겨 주신 학부모께 감사했습니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매 순간이 긴장해야 하는 일임에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유치원에서 제일 먼저 배워가는 것은 팀워크 였습니다. 나는 단순히 아이들만 케어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었지만 아이들 뿐만 아니라 동료들, 또 학부모들과 함께 일하고 맞춰가는 일들이 계속됩니다.

특히나 유치원은 한 교사가 한 클라스를 담당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닌 5-6명 정도의 교사가 각자만의 교육철학(teaching philosophy)을 가진 교사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서로 간의 존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나의 교육 철학은 아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time and space(시간과 공간)을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매 순간 이야기해주곤 합니다. 또 아이들은 각자만의 배우는 스타일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간혹 아이들을 상대하다 보면 어른들의 입장과 시선에서 “이건 안돼” 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하지만 “안돼” 라는 말보다는 그 아이들에게 배워가는 시간을 허락해준다면 자기만의 시간으로 배워가게 됩니다.

아이들의 언어, 아이들의 시각을 배워갔던 또 배워가는 중입니다. 이혼가정, ADHD, Autism, behaviour problems들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더 관심과 사랑을 주게 되었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감동이 있었습니다. 교사로서 지녀야하는 인내심 또한 키우게 되었던 아주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뉴질랜드 유치원에서는 Te Whariki Curriculum이 있어 그것에 따라 아이들을 지도합니다. 제일 강조하는 core value 는: “Competent and confident learners and communicators, healthy in mind, body and spirit, secure in their sense of belonging and in the knowledge that they make a valued contribution to society”-“유능하고 자신감 있는 학습자 및 의사 소통자, 마음, 신체, 정신이 건강하며 소속감과 사회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지식에 있어 안전하다.”-

흔히들 아시안 학부모들은 영어, 수학, 알파벳이라도 완벽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뉴질랜드 유치원 교육이 지향하는 가치는 “children learn through play” 곧,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배운다“입니다. 즉, “많이 놀아야 더 많은 것들을 배운다”입니다. 이 시기에는 앉아서 공부하고 습득하는 것이 아닌 많이 경험하고 놀면서 사회생활, 언어, 수학을 자연스레 놀이를 통해서 배웁니다.

일하면서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는데 첫번째는 Provisional Certificate이고 그 다음에는 Full Certificate입니다. 나는 첫 직장에서 Full Certificate까지 다 취득하고 한달 정도 쉰 후 BestStart Silverdale branch에서 한 3개월정도 Baby Room에서 Reliever로 일한 다음 지금 현재 BestStart Albany Preschool room에서 head teacher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는 또 어떤 일들을 통해 훈련해 가시며 어떤 동료들, 아이들, 학부모들을 만나 그들을 사랑하고 성장에 서포트를 하게 될지 기도하게 되고 기대하게 됩니다. 앞으로의 글들을 통해 parenting tips를 포함하여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자녀를 키워 가야 하는지 교사 입장으로 담아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