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첫째 주 찬송/1월 둘째 주 찬송

1월 첫째 주 찬송/390장(통444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미레도레미’ 거느리시는 주님
합창 지휘의 도구 세 가지가 있습니다. 눈, 오른손(지휘봉), 왼손이 그것인데, 그중 제일은 눈입니다. 적어도 지휘자는 곡을 시작할 때, 끝날 때, 숨을 쉴 때 단원들을 보면서 눈으로 지시해야 합니다.

특히 강약이나 파트의 움직임을 위해 왼손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단원들을 보아야 합니다.

나는 종종 교회에서 세미나를 인도하며 스크린 때문에 말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지휘자요 선생인 나로선 학생들과 계속 눈을 맞추며 연주나 강의하는데 익숙한데 교인들의 눈은 내 머리 한참 위 스크린에 맞춰져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눈을 서로 맞추어 바라보는 것은 대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이지요.

예배 학자 화이트(J.F.White)는 “청중과 설교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야 한다. 말하는 사람과 청중들 사이에 그어진 수평선을 따라 전달되는 언어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신다.”라며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은 곧 사랑의 표시이며 사랑의 행위라고 했습니다.

벽이나 기둥으로 인해 시야가 가리는 최소한의 공간을 위한 모니터라면 몰라도 예배를 돕고 강조하는 이상으로 대형 스크린이 모든 시선을 제압하는 것은 지양되어야지 않겠습니까.

찬송 시 ‘예수가 거느리시니’는 미국 침례교 길모어(Joseph Henry Gilmore, 1834-1918) 목사가 1862년 3월 26일, 필라델피아 제일침례교회 수요 집회에서 ‘그가 나를 인도하신다’란 제목으로 시편 23편 강해를 한 후 교인들의 집에 몰려가 환담을 하던 중 감동을 받아지었습니다.

곡명 HE LEADETH ME는 1864년 미국의 저명한 찬송 작곡자인 브래드버리(William B. Bradbury, 1816-1868)가 우연히 ‘파수꾼과 반사경’(Watchman and Reflector)이란 잡지에 실린 이 시를 발견하고 작곡하였습니다.

원곡에서 후렴 마지막에 “나 주님 손에 이끌리어 충성스레 따르는 자 되리라”(He faithful foll’wer I would be, For by His hand He leadeth me.)는 가사는 이때 작곡하면서 브래디버리가 지어 붙인 것입니다.

“거느리시네”란 정겨운 우리말은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선교사가 ‘찬양가’(1894)를 내며 번역한 것입니다. ‘거느리다’란 말은 “수하(手下)를 데리고 있다”말도 되지만 옛말로 “건지다”란 뜻도 됩니다.

“거느리시네”(미레도레미)의 순차적인 멜로디가 주님과의 동행을 암시하며 찬송 내내 여섯 번이나 반복됩니다(영어 찬송은 아홉 번).

1월 둘째 주 찬송/414장(통475장) 이 세상은 요란하나

요사이 세상은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안에 붙어있어야 할 상표가 겉으로 나와 있듯이 감춰 입던 속옷도 겉옷이 된지 오랩니다. 감춤보다 드러냄이 자랑거리가 된 것이지요. 어디 입는 옷뿐입니까.

예절은 어떻습니까. 입을 가려 숨겨 웃던 다소곳함은 드러눕는 박장대소로, 검소와 침묵의 미덕은 사치와 으스댐으로, 부끄러움은 제 자랑으로 바뀌었습니다.

교회음악은 어떤가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표피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세속음악을 좇는 교회음악이 이젠 예배에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러다 모르는 새 예배의 본질마저 흐려질까 싶어 염려됩니다.

19C, 비트(Franz Xavier Witt, 1834-1888)가 비전례적(非典禮的)음악을 교회로부터 배제하려고 교회음악정화운동을 일으켰듯 오늘날 ‘세실리아운동’(Cecilian movement)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 찬송 시는 영국의 회중교회 목사인 마트슨(William Tidd Matson, 1833-1906)이 지었습니다.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때 이르신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요 16;33)의 말씀에 기초한 이 찬송 시는 작가가 농부출신이어서인지 평화롭고 한가롭습니다.

우연히 8.8.8.8.의 같은 운율로 지은 그의 또 다른 찬송 ‘구주여 나를 가르쳐’(개편 314장)를 한 곡조에 이어 불러보니 그 내용이나 정서가 딱 들어맞는습니다.

곡명 DIMAN은 역시 영국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미국에서 활동한 스위쳐(Joseph Emerson Sweeter, 1825-1873)가 작곡했습니다.

그는 오르가니스트로 전도캠프의 일원이 되어 미국 전역을 돌면서 루트(G.F.Root)나 치버(G.Cheever)와 함께 찬송 집을 내기도 하고 연주와 작곡활동 등으로 교회음악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거의 매 음마다 4도, 5도, 6도, 심지어 8도로 조약(躁躍)하며 움직이는 멜로디가 마치 심오하고 넓은 주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을 경이롭게 살펴보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 분위기도 서양음악답지 않게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순박미가 있어 평화로운 가사와 잘 어울려 정겹습니다.

원곡인 영어찬송은 매절 “O blessed life!”(오 행복한 삶)로 시작하며, 세상과 다른 그야말로 역설적인 행복을 노래합니다.

“이 세상은 요란하나/ 내 마음은 늘 편하다”라든지, “육신의 눈 못 볼 때에/ 신령한 눈 곧 밝히사 저 천성 문 보게 하니”라든지, “이 육신의 복락보다/ 신령한 복 더 좋으니”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