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望)엄니!

고국 서울을 비롯해서 전국이 폭염(暴炎:매우 심한 더위를 뜻하고 낮 최고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경우) 속에 13일째라고 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열대야를 이렇게 정의한다. 열대야는 오후 6시 1분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폭염이 7월20일부터 8월2일까지 13일째 계속되었다. 후끈후끈한 한증막과 같은 터널 속에 13일간 갇혀 지냈다는 말이다.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열대야란 말은 뉴스에서나 접했던 먼 나라 얘기였다.

10년 전 초여름이 시작되는 6월(한국) 어느 날, 고국의 고향 집으로부터 전보 한 장이 날아온다. ‘모친 위독으로 입원, 많이 위중함, 비몽사몽(非夢似夢(꿈인지 생시인지 모름)간에 큰 아들을 찾음, 빠른 상면을 바람’ 고향에서 노모를 모시는 동생이 보내온 전문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갈 곳도 아니다. 고국을 빨리 다녀오려 해도 열흘은 잡아야 한다. 그간에 밀알학교는 누가 인도하는가, 한 주간의 프로그램의 기획과 진행은 누가 담당을 하냐, 갖가지의 상념으로 차일피일 하던 중이다. 고향에는 동생 내외도 여동생들도 있으니까 잘 모셔 주겠지, 병원으로 모셨으니까 차도는 있겠지.

웬걸! 스스로를 위로할 겨를도 없다. 사흘에 한 번씩 같은 전보가 세 차례나 배달된다. 이제는 지체하면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게다. 사역지를 서둘러서 정리를 하고 고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12시간 만에 도착한 인천공항은 열기로 가득하다. 이곳이 한국인가,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인가. 들숨 날숨을 통하여 뿜어지는 열기로 얼굴은 금세 홍당무가 된다. 고향 동해로 가는 국도는 새롭게 단장 되었다. 굽이굽이 돌아 나가는 산등성이는 예전보다 훨씬 낮아졌다. 일직선으로 시원히 뻗은 신작로에는 구멍이 휑한 터널들이 달려오는 고속버스를 맞이한다. 차멀미로 혼미한 가운데 넘나들던 아흔아홉 구비는 온데간데 없다.

위중하다는 고향 노모에 대한 상념에서 깨어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고향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택시로 바꿔 타고 도착한 종합병원에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린다. 뛰다시피 달려간 응급실에는 모친의 병상은 비어 있다. 외국에서 큰아들이 온다는 소식에 노모의 병세는 금세 호전을 보였다.

거짓말 같은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다. 구급차에 실려서 응급실에 들어 온 지 이틀 만에 일반 병실로 옮겼다. 사흘째 되는 날은 아침 일찍부터 집으로 돌아가자는 노모의 떼쓰기가 시작된다,

고향 집 시원한 거실에 병실을 마련한다. 무더운 한여름과 지루한 전쟁을 하면서 노모의 간병에 들어간다. 큰아들을 보는 기쁨이 치료 약이 되었다. 노모의 병세가 호전한다. 안색도 차츰 좋아진다. 부축하면 걸음마도 몇 걸음씩을 옮긴다. 휠체어에 승차해서 아파트의 앞마당 산책도 씽씽이다.

하마(夏魔여름마귀)는 모자지간의 행복한 꼴을 못 본다. 가정에서 간병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하마
(夏魔여름마귀)는 열대야를 동반하여 습격해 온다. 1주일 남짓한 열대야(熱帶夜)를 잊을 수 없다. 호전을 보이던 노모의 병세가 곤두박질을 한다. 누워 지내는 환자에게는 욕창이 치명적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이놈의 열대야가 노모의 허리춤에 화인(火印)을 남긴다.

열대야와의 치열한 육박전을 승리로 마무리한다. 무더위가 한풀 꺾여 가는 여름날의 끝자락이다. 석양이 뉘엿뉘엿 서녘으로 숨어드는 시각에 노모께서는 서둘러 하늘길을 가셨다. 아마도 열대야와의 전쟁의 후유증이 심했나 보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노모는 가셨다. 푸른 산빛을 헤치고 가셨다. 그 길은 관목이 어지러이 우거진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이다. 이생에서 못다 한 한(恨)을 남기고 가셨다. 쉬 일어나리라던 아들과의 굳은 맹서(盟誓)는 허공 중에 날려 버린 헛 맹서였나.

아들 품에 남겨준 따스했던 노모의 온기는 아직도 따사롭기만 하다. 3개월여의 꿈같은 노모와의 밀월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았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노모의 등 뒤가 차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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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만
춘천교대와 단국대 사범대 졸업. 26년 간 교사. 예장(합동)에서 뉴질랜드 선교사로 파송 받아 밀알선교단 4-6대 단장으로 13년째 섬기며, 월드 사랑의선물나눔운동에서 정부의 보조와 지원이 닿지 않는 가정 및 작은 공동체에 후원의 손길 펴면서 지난해 1월부터 5메콩.어린이돕기로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