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으나 살아있는 서머나 교회이야기”

망가진 브레이크로 사랑과 거룩의 경계를 넘어선 두아디라 교회를 뒤로 한 우리 일행은 숙소를 향해 달린다. 버스 안에서 에베소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이야기,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눠지고 들려진다.

그러던 중에 뒤늦게 스쳐 지나간 서머나(Smyrna) 교회가 생각났다. 안내 책자에 주어진 정보로는 에게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곳이다. 에베소 북쪽의 항구 도시로서 당시 에베소에 견줄만한 명성과 번성함을 가졌던 도시이다.

서머나(현: Izmir/이즈미르)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번영하고 영광을 누렸던 도시라고 한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진격하던 중 성벽을 쌓고 새 도시를 건설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터키에서 이스탄불과 앙카라 다음을 잇는 도시로써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서머나 교회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계시록에 나온 일곱 교회 중에서 제일 짧은 4개의 구절만 남았기 때문이다. 성지순례 일정에서도 그냥 지나쳤고 성경에서도 말을 너무 많이 아꼈고… 순례자의 머리엔 why? 라는 질문이 릴레이 경주를 하듯이 이어진다.

이런 질문 덕분에 그냥 스쳐 지나간 교회는 더 큰 관심 속에 생각을 거듭하고 연구와 묵상의 깊이가 더해졌다.

서머나라는 이름은 ‘몰약’이라는 향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름의 특성을 생각할 때, 고난과 핍박이 아무리 심할지라도 부활에 대한 소망을 따라 순교의 향기로 믿음의 역사를 펼쳐 나간다는 것이다. ‘서머나’라고 이름한 것은 전혀 부족함이 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순교의 향기가 짙게 드러난 도시를 먼 도로에서 스치듯이 지나친 순례자의 마음은 아쉬움이 두 배로 남았다.

터키, 지나온 길

서머나는 에베소 다음가는 부유함과 번영을 누린 항구도시였다. 일찍부터(BC4~3)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하고 살았었다. 신약교회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정부와 결탁하여 기독교인들의 피를 많이 흘리게 했다고 한다. 핍박하는 유대인들은 실상은 사탄의 회당(요한계시록 2:9)으로 성도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고난과 박해 중에도 당시 성도들은 신앙을 고수하는 충성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와 함께 책망을 받지 않고, 위로와 칭찬을 받은 모범적인 공동체가 된 것이다.

인간의 눈에는 환난과 궁핍으로 비난을 당하나 하나님의 눈에는 부요한 자로 인정된 것이다. 사데 교회는 부요한 자라고 의미를 가졌으나 실상은 가난한 자인 것을 보면 서로 많은 대비를 이룬다. 에베소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을 때, 서머나의 공동체는 처음 사랑을 끝까지 충성으로 지켜낸다. 결국 믿음을 사수하는 보수를 선택한 결과 사라져 버린 교회가 보이기 시작한 포인트이다.

신약교회의 모습에서 많이 변해버린 현대교회에는 어느 때부터 보수는 진부하고 고리타분하다. 그래서 구시대적인 꼰대 취급을 받는 양상이 보인다. 반면 진보는 적극적이며 신선하다고 하면서 성경의 진리들을 뿌리까지도 흔들고 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순례자가 보는 서머나 교회는 매우 남달랐다.

그런 생각 속에서 오래 전, 신학교에서 배웠던 속사도 한 사람이 멀리서 다가오는 대형버스처럼 떠올랐다. 사도 요한의 직계 제자로 기록된 폴리캅 감독(115-156, 41년간)이다. 서기 156년 대대적인 박해로 인해 순교자가 된 신앙의 대선배라고 기독교 역사 속에서 조명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밀고자(델라토레스)에 의해 체포된 폴리캅은 화형에 처해지며 신앙을 고수하였다. 기독교 신앙을 부인하라는 총독의 권유를 거절한 후, 서머나의 12번째 순교자가 된 것이다. 폴리캅을 기념하는 교회가 1620년 현대식으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천국에서 만날 수 있으리~

폴리캅 기념교회

2019년, 목회를 유지하는 것조차 흔들리는 목회 현장을 떠나 바울이 밟은 선교의 발자취를 뒤쫓아가 보았다. 금번 성지순례는 필자에게 특별히 남다른 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시작한 글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전적인 기적 속에서 시작되었고 끝을 맺을 때에 코로나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성공한 교회만 주로 기억되는 지난 역사 속에서 신약교회에 숨겨진 보배가 서머나 교회인 것 같다. 역사 속에 죽은 또 다른 영웅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몰약처럼 쓴 고난 속에서 순교의 꽃을 피워낸 교회이다.

순교자가 되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질문 속에서 생각이 싹트고 전진하던 생각은 길을 찾는다. 그 길에 번쩍이며 생각나는 곳이 있다. 캅바도기아의 데린쿠유 지하도시이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가 말씀을 사수하고 전수한 공동체들이다.

바다에 살고 있는 물고기는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할듯하다. 자기를 낳아준 엄마에게 바다가 무엇인지를 물어도 보았을 것이다. “바다가 있다고 하던데~” 부모 물고기는 불분명한 대답을 했을 것이다. 물고기가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을 때는 대부분 죽음을 앞둔 시간일 것이라는 글을 읽었었다.

동일한 원리로, 우리 믿는 자들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다가 이다음에 생명의 면류관을 가질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하지만 약속하신 대로 존재하고 주어질 천국에서의 면류관 말이다.

승리의 면류관을 가진 교회, 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서머나 교회는 이 비밀을 알았던 공동체로 보인다.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성지로서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은 서머나 교회는 진리를 사수하기 위하여 죽도록 충성한 교회이다. 빌라델비아와 함께 진리를 위해 싸웠지만 서머나 교회는 이슬처럼 사라져 버렸다. 지킨다고 지켰지만 치열하게 반항하다가 전멸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이슬처럼 사라져간 교회들이 지난날 속에 얼마나 많을까? 우리 순례자들이 버스로 그냥 스치듯 지나친 서머나 교회처럼~

실망할 흔적조차 없었던 서머나는 궁금함 속에 더 많은 생각과 질문을 준 교회이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와 4차 산업혁명의 AI 시대 속에서, 2000년 전에 주어진 진리를 우리는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변해야 살 수 있는 시대 속에서 지켜야만 하는 진리를 사수하면서 말이다.

하늘나라에 가면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가장 많을 것만 같다. 마른 장작처럼 완전히 타서 남아 있지 못할 정도로 신앙을 고수했던 사람들, 7년 대환란이 올지라도 능히 참고 인내할 것만 같은 믿음의 사람들, 이렇게 죽은 자들이 마지막 부활 때 가장 먼저 다시 일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묵상 중에 필자에게 남는 이미지는 사진과 같다.

당시 일곱 교회 모습 속에서 오늘의 다양한 교회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동일한 환경 혹은 다른 여건에서 각양의 모습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서머나처럼 순교하면서 믿음을 사수할 교회는 몇이나 될까?

실제적으로 한국의 교회들이 예배에 대한 정부 차원의 규제와 압박 가운데 어떻게 믿음과 예배를 사수할 것인가? 필자는 분명코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라질지언정 이 세상 풍조에 휘둘리지 않는 순결한 백성으로 믿음과 교회를 지킬 오늘의 서머나 교회로서~

에베소에서 두아디라 교회를 향하는 2시간 동안 우리 일행은 버스 안에서 특송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러던 중에 오클랜드 일행을 대표하여 나는 “물이 바다 덮음 같이”를 찬양하였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구하던 중, 거리 찬양 현장에서 오프닝 송으로 부르는 선포 찬양이다. 1세기의 서머나 교회는 믿음이 환란과 핍박을 덮음으로 여호와의 영광을 보인 것 같다. “믿음 환란 덮음 같이~”

많은 말보다 믿음을 위해 싸우고 순교로 대신한 새로운 영웅들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 순교의 정신을 이어간 버가모 교회도 방문하였다. 하지만 버가모 공동체는 회개할 것이 유난히 많은 듯 보인다. 왜? 그리고 무엇을? 다음 달에 풀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