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야기 “신앙의 양심”

출처 : 책‘왕이 된 양치기’본문 중 각색/규장출판사(2019)

장정만 500여명. 다윗은 도망생활 중 적지 않은 식솔들과 함께 했기에 안전하게 숨어 있을 수 없었다. 무리 지어 있는 다윗의 공동체는 늘 누군가의 눈에 띄었고 신고 당했다.

다윗이 자신의 안전만을 염두하고 살았다면 홀로 생활하는 편이 더 나았을 터, 하지만 그는 위험을 떠 안는 대신 양떼를 책임지는 삶을 선택했다. 아니나 다를까 엔게디 광야에 숨어있을 무렵 또 누군가 그의 거처를 발견, 신고한다. 국가정보기관은 사울 왕에게 신고를 보고했고 즉시 삼천 여명의 정예 수색대가 구성된다.

멀리서도 보일 만큼 강렬한 흙 먼지를 일으키며 도착한 사울과 정예 수색대. 그들은 다윗의 거처를 급습,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진행하지만 다행히도 다윗은 이미 양 우리 굴로 깊이 숨어 들은 뒤였다. 

굴 밖 군인들의 그림자가 빠르게 스쳐 가는 것이 보이고 철병기와 갑옷의 쩔그렁 소리만이 주변을 울리고 있을 무렵 굴 안으로 훅 들어오는 검은 그림자. 햇빛을 등진 그림자의 실루엣이 심상치 않았다. 깊숙한 안 쪽에서 그림자를 바라보던 다윗은 실루엣의 주인을 단박에 알아 챌 수 있었다. 실루엣의 주인은 자신을 추격하고 있는 사울이었다. 뒷 목이 서늘해지는 순간.

지긋이 굴 안을 응시하던 사울이 몸을 휙 돌려 다윗 쪽을 등지고는 주섬주섬 갑옷을 풀었다. 그리고는 주저앉아 용변을 보기 시작했다. 수색 중 용변이 급해진 사울이 하필이면 다윗이 숨어 있는 굴 속으로 제발로 찾아 들어 온 것이다. 숨 죽이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윗과 일행들. 순간 부하 하나가 다윗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대장. 우리의 원수 사울입니다. 우리가 안에 있는 것을 모르나 봅니다. 지금이야말로 사울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보시다시피 완전 무방비 상태 아닙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손에 그를 넘기신 것입니다.”

사울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사무쳤던지 다윗을 간절히 부추겼다. 눈빛이 흔들린 다윗은 사울의 등 뒤로 조용히 다가가 풀어헤쳐 있는 옷자락 끝을 살짝 베어내었다. 순간! 마음 안에 어떤 강렬한 찔림이 일어났다.

‘이게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일까?…’

즉각 양심의 가책을 느낀 다윗은 굴 안쪽으로 다시 돌아와 일행들에게 사울을 절대로 손대지 말라고 당부한다.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사무엘상 24:5,6)

장어 요리로 유명한 식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대를 이어 운영하며 국내산 장어만 취급하는 전통있는 식당이었다. 대표는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물려 받은 손자였는데 장어요리 전문가임과 동시에 장어 양식 전문가 이기도 했다. 지인 덕에 초대를 받은 것이었기에 단순히 장어 요리만 맛 본 게 아니라 주방과 양식장까지 구경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집의 자랑인 장어 양식장을 안내하며 대표님은 이런 말을 했다.

“싱싱한 놈들은 제가 양식장 근처에만 다가가도 민감하게 움직여요. 보세요! 지금 잡기도 전에 손짓만 해도 꿈틀거리는 거 보이시죠? 싱싱하다는 뜻이에요. 반대로 죽어가는 놈들은 보세요. 별 반응이 없어요. 감각이 무뎌져 가고 있거든요.”

정말 그랬다. 싱싱한 녀석들은 주인이 양식 수족관 물에 손을 담그기만 해도 파장을 느끼며 긴장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싱싱하지 않은 몇 몇 녀석들은 주인이 손을 담글 뿐만 아니라 움켜쥘 때까지도 별 반응이 없었다.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순간 어떤 깨달음이 왔다.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양심이‘민감하다’는 것과‘둔감하다’는 것. 이 역시 단순히‘좋다, 나쁘다’정도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살아있는 것과 죽어가는 것’정도의 차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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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용욱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기독교 출판작가, 예술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커피’와‘예수님’으로 기독교적 사색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 있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신학 학위를 받은 적도 없는데 12년 째 신앙서적 내고 있는 이상한 평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