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만나는 시
<노란 가을 품은 집> -이해산-
어느 가을 날의 아침에
차가운 가을 안개가
언덕 위의 푸른 집 품네
뜰 아래 단풍 든 나무는
아침 햇살에 기지개 펴고
바람이 전하는 소리 듣네
햇살에 헝클어진 바람은
서툰데 언덕의 어둠이
빛의 그물 벗으려 허둥이네
함부로 버려진 돌들을
주워다가 섬긴 돌담에
기댄 아침이슬이 빛나네
산바람에 물든 나무는
햇볕에 움츠린 가지 펴고
물기에 젖은 노란 잎 터네
어느 가을 날의 아침에
싱그러운 가을 햇살은
언덕 위의 푸른 집 품네
카메라 잡고 여행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멋진 Waimarama
뉴질랜드의 한적한 시골 곳곳에 있는 예쁜 단풍이 물든 마을을 상상해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런 마을, 그런 집을 찾아서 가을 여행을 떠나보고 싶은 마음에 매년 이맘때면 무작정 길을 떠난다.
우선 건냉소 지역을 찾는다. 해당 지역 서쪽에 산맥이 있어 서쪽에서 불어오는 습한 공기가 산맥에 걸려 비를 쏟으면 산맥을 넘은 후 건조한 기후를 선사해 준다. 보통 이런 지역에 과일 밭이 많다. 북섬에도 몇 지역이 있는데 혹스베이가 여기에 속한다.
뉴질랜드의 전형적인 가을 색은 노랑이다. 여기에 빨간색이 드문드문 더해지고 바닥의 초록 잔디와 어우러지면 그리 화려하지는 않으나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오묘하고 예쁜 가을 풍경을 만들어준다.
이번엔 연전에 보았던 단풍 길이 눈에 밟혀 먼저 타우포로 갔다. 분명 그때 그 자리였는데 이번에 보니 영 아니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영향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이제 어디로 가지?’ 혹스베이에서 몇 년 살다 온 사진 친구 혜키에게 문자해서 조언을 구했더니 몇 군데를 알려주었다. 그러잖아도 테마타 피크를 다시 가고 싶던 참이었던 지라 혹스베이로 방향을 틀었다.
타우포에서 Waipunga까지는 드넓은 평원 길이라 시원하게 달렸는데 Waipunga–Te Haroto 사이의 고갯길은 고약하고 길었다. 이 길은 지금까지 4번째 넘어가는 길인데 이번은 진짜 지루하게 느껴졌다. 꼭 처음 가는 느낌이랄까? 드디어 재를 넘으니 포도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네이피어에 거의 다 왔구나’ 하는 느낌이다.
우선 Mission Estate Winery부터 들러 구경하고 헤이스팅즈로 갔다. 여느 때와 같이 일단 홀리데이 파크(홀팍)부터 잡은 후 테마타 피크로 향했다. 내일 아침을 위한 사전점검이다.
아침 7시 일출이라 6시 20분에 알람을 맞추어 두었는데 이번에도 알람이 울기 10분 전에 이미 눈이 떠졌다.
새벽 맑은 공기를 마시며 테마타 피크로 향했다. 아무도 없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간에 일출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일 텐데 코로나 때문이겠지만 고요 적막하다. 코발트색 하늘을 이고 발그스레하게 밝아오는 여명이 장관을 이룬다.
조금 늦게 올라온 키위 두 사람이 수다 떠느라 딴 데 보고 있길래 “Hei hei It’s now. Look at that.”하며 알려주었다. 그들도 고맙다면서 카메라를 들이댄다. 캄캄했던 들판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하니 가히 황홀경이다.
일출 햇살에 옅은 물안개가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Tukituki 강 주변 마을이 온통 가을을 품은 마을로 보인다. 맘에 드는 곳을 찾아 줌렌즈로 당겨보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줌렌즈를 꼭 갖고 다닌다.
한바탕 셔터를 누른 후 테마타 피크 꼭대기 주차장에 세워둔 윙크(나의 애마 캠퍼 밴) 안에서 아내가 준비해 준 뭇국에 밥 한술 말아먹었는데 꿀맛이 따로 없다. 피크에서 내려와 사진 친구가 일러준 대로 Waimarama 길을 따라 Tukituki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갔다. 테마타 피크의 뒤쪽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조금 늦긴 했지만, 가을철인지라 민둥산 등성이에 드문드문 단풍을 품은 마을과 집들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보통 테마타 피크를 가면 정상에서 일출만 즐기고 가느라 이쪽은 잘 가지 않는다.
사진 친구 덕에 이번에 숨은 비경을 제대로 구경하는 셈이다. 가다 보면 잘생긴 Maraetotara 폭포도 만나게 된다. 계속 가면 Waimarama 가 나오는데 이 길의 막다른 곳이다. 넓은 야영지를 가진 홀팍이 하나 있는데 시골이라 각종 시설이 그리 세련되어 있지는 않다.
여름철엔 엄청나게 붐빌 것 같다. 비치에 나가보니 그 어느 비치 못지않게 멋진 백사장이다. 거기에 예쁘게 생긴 Te Motu-o-Kura 섬도 앞에 하나 있어 구색을 잘 갖춘다. 해가 떨어지니 바다 쪽에 칠흑 같은 어두움이 내려앉는다. 은하수 별 사진 찍기에 딱 좋다.
Te Motu 섬을 모델로 해서 질펀하게 초저녁 은하수를 찍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름 긴 여행길이라 금방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일출 시각에 맞춰 해변으로 나갔는데 역시 아무도 없다. 저 멀리 아득히 남태평양 너머 칠레 끝자락을 바라보는 수평선에서 여명이 밝아온다.
밤을 보낸 하늘이 코발트색에서 점차 푸른색으로 변하더니 접시 짝만 한 태양이 얼굴을 쓱 내민다. 아 아니 이게 뭐야? 오메가다. 완벽한 오메가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아침을 밝히며 솟아오르는 오메가가 아닌가? 심장이 멎을 것만 같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여기 오길 잘했다. 처음에 지도로만 봤을 땐 ‘뭐 이런 깡 시골길을 가라 했나?’ 하고 내심 투덜거렸는데… 실제로 와보니 카메라 잡고 여행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멋진 곳이다. 사진 친구를 통해 이런 멋진 곳을 여행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