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이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과의 관계로 시작됩니다. 어떤 아내가 남편에게 정말 신실한 아내임을 증명하려면, 그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얼마나 잘하는지만 봐서는 판단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아내가 다른 남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봐야 합니다. 이 아내가 남편에게 신실한 사람이라는 말은, 이 아내는 자기 남편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남자들과의 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의인이 예수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의인이 세상의 악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동시에 판단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시편1편 1절의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제일 먼저 악인들과 관계하지 않고 악인들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시편이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이 시편1편에 나와있는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선한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하지 않는 일에 먼저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시편1편 1절의 말씀은 건너뛰고, 2절의 말씀에 집중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멈추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만 더 열심을 내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말씀묵상하고, 선교하고, 구제하고, 사역하고, 목사가 되고, 신학교를 가지만 우리는 이 모든 좋은 일들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면서, 죄인들의 길로 위험하게 다니면서,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으면서, 말씀 묵상하고, 사역하고, 교사하고, 목회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왕들의 시대에 여호사밧이라는 훌륭한 왕이 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말씀 운동도 일으키고 개혁 운동도 일으켰지만 하나님이 무엇을 미워하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친하게 지냈고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자신의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 아달랴를 통해서 자기 나라에 바알 우상숭배가 들어오도록 문을 활짝 열어주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 그를 책망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역대하19:2)
선지자 예후가 여호사밧을 책망한 것은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들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사밧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일들을 끝까지 깨닫지 못하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도 교제했는데, 이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다고 성경이 진단하고 있습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역대하20:35)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보면 여호사밧은 정말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그는 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온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친 사람입니다. 그는 위기가 왔을 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만 섬기기 위해서 모든 우상들을 제거했던 개혁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사람들과 교제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들을 함께 사랑하였으나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들을 함께 미워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여호사밧이 참 아쉬운 이유입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다윗이 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까? 다윗은 그냥 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적이 참 많았습니다. 다윗을 싫어하는 원수가 많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다윗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들도 함께 사랑했지만,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들을 함께 미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이 하나님을 욕했을 때 다윗은 골리앗을 죽일 생각을 했지, 골리앗의 인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골리앗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조롱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욕하고 말씀을 멸시하며 동성애를 지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예보다 골리앗의 인권을 더 중요하게 따지는 그런 비성경적인 사람들이 기독교 안에 너무나 많아졌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시편은 복 있는 사람이 악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 사람인지 우리에게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들과 교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합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진정한 예수님의 사람들로 살아가기 원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고 있는지, 그걸 점검하고, 그것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악한 세상과 얼마나 친하지 않은지, 그것으로 먼저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신실한 사람들이 되려면 우리가 그리스도가 아닌 것들과 얼마나 안 친한지 돌아봐야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들을 함께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들을 함께 미워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