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잠만 퍼 자고 있으니, 참!

“엄마, 오늘 밤 11시 59분부터 레벨 3로 3일간 록다운 된데요. 장 보실 것 있으면 빨리 다녀오셔요.”

주일 예배를 마치고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치우는데
느닷없이 밖에 나가 있던 아들에게 문자가 옵니다.

아침으로 남아 있던 빵과 계란과 야채를 탈탈 털어
다 먹고 내일 장 봐야겠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늘 밤 11시 59분부터 록다운이라네요.

급히 마트로 달려갑니다.
헐! 벌써 긴 줄이라니…

다른 마트로 달려갑니다.
여긴 그래도 아직 긴 줄은 없습니다.

확실히 레벨 4를 거쳐온 저력이 있는지라
모두가 차분하고 여유롭게 장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 3일간의 록다운은 껌이라 생각하겠지요.

레벨 4를 처음 맞을 때는 끝없는 줄 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카트에는 산더미처럼 물건들을 가득가득
넘치도록 채웠었는데 오늘은 카트 가득 채우면
스스로가 민망할 정도로 아주 꼭 필요한 물품들만
사는 것 같습니다.

나 역시 3일간 꼭 필요한 것만 고른 후
카운터에 줄을 섰습니다.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은 불안과 초조함보다는
양보할 거 양보하고, 뺄 거 빼고, 넣을 거 더 넣으며
평상시와 다름없을 정도로 느긋합니다.

늘어난 건 그사이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다는 것뿐!

그때, 마트 안에 갑자기 울리는 경보음!
뭔가 음산한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마트 안 가득 울립니다.

“엄마, 핸드폰으로 문자 온 거예요. 경보 문자!”

딸아이의 말에 급히 핸드폰을 꺼내 보니
빨간 동그라미 안에 하얀 삼각형 속에 느낌표 하나!

종말 영화에서나 볼듯한 장면이 바로 내 앞에서
벌어졌습니다.

2월 14일 오후 8시 25분! 온 세상이 정지된 듯 모두가
핸드폰을 보며 날아온 경보 문자에 고개를 숙입니다.

그전까진 모두가 느긋하게 여유로웠는데
갑자기 경보 문자를 받고 나자
카운터 직원의 두 손이 빨라지고,
물건 담는 손과 발이 급해지고,
카트 끌고 가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에에엥~에에엥~에에엥~~~”
“국민 여러분, 여기는 행정안전부 민방위경보
통제소입니다.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현재 시각, 우리나라 전역에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우리나라 민방공 훈련할 때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온 국민을 긴장하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오늘은 오전 오후로 사이렌 소리가 아닌 세 번의 경보음이 울렸습니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경보와
쓰나미가 지나갔다는 경보 해제음과
느긋한 저녁에 록다운을 알리는 경보음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핸드폰으로 울리는 경보음은
탁하고 음산하고 침침한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종말을 알리는 나팔소리 같아
기분이 묘하게 긴장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는 지진으로 인한 약한 진동 때문에
깊은 밤에 잠을 깨고 한숨도 못 잤다는데
나는 뭐 진동은커녕 깊은 잠에 흠뻑 취해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으니

오, 주여!
주님 오신다고 나팔소리 천지진동할 때도
이리 잠만 퍼 자고 있으면 어찌하오리이까!

공습경보 에에엥~에에엥~울려대도,
자나 깨나 다시 보는 핸드폰으로
침침하고 음산하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도,
이렇게 잠만 퍼 자고만 있을 나를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

마지막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멍청이!
하나님의 마지막 경보도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귀머거리!
그래도 부르짖지 않는 이 벙어리!
그렇게 살아가면 안 되잖아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정말 정신을 번쩍 차려야겠습니다.
허탄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허망한 것을 좇아 헤매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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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애
크리스천라이프 대표,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사모, 협동 목사. 라이프에세이를 통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잔잔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 와 '은밀히 거래된 나의 인생 그 길을 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