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우리 그 노래 알아요”

지난 달 이야기에서 이어가고 싶다(이 글을 읽기 전에 지난 406호(christianlife.nz/archives/17061)를 꼭 읽어 주세요).

하루는 버스 안에서 이씨와 우리 팀 자매 두 명이 매우 가깝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이씨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두 자매는 그녀를 팔로 감싸 안고 위로하며 상담하고 있었다. 나는 귀한 시간을 보내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재빨리 버스에 타려던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 밖에서 대화를 나누도록 애를 써야만 했다. 그날 일정을 모두 마친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자매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씨가 갑자기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얼마나 인생에서 힘들었는지, 또 그녀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사실을 나누며 이런 상황에서 종종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또 우리의 도움의 손길을 받고 싶다는 표현을 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나로서는 이씨와 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자매가 있어서 너무나도 기뻤다. 두 자매 중 한 명은 미국의 한 교회 지도자였는데 그녀는 30대 후반이었고, 많은 지혜와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끼며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주님은 문을 열고 이 모든 상황을 이끄시고 계심을 체험했다.

또 다른 변화는 그 이후로 그들 모두가 우리 팀을 대하는 태도였다. 이씨는 더 이상 “미국 놈들”이라고 통역하지 않았고, 관광회사 김씨는 더 이상 우리에게 평양 맥주를 권유하지도 않았다. 매번 식사 때마다 술을 먹이려는 그의 농담이 멈췄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식사하려고 북한 식당에 들어갈 때에도, 그가 먼저 식당의 직원들에게 명령했다.

“여기 차려져 있는 모든 술 싹 치워 버리세요, 안 보이는 곳으로”.

나는 그의 단호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 웃긴 것은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는 다른 일반 관광객들은 술을 꽤 좋아하고 취하곤 했는데, 그들 역시 우리 때문에 좋아하는 술을 즐길 수 없게 되었던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는 동안, 형님은 늘 그렇듯이 내 옆에 앉았고, 갑자기 질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형님은 갑작스럽게 물어보는 것이, “동생 질문이 있는데, 넌 왜 예수를 믿냐?”라고 물었다.

나는 그의 질문이 믿기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하는 말이 농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아주 진지했고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는 그의 질문이 썩 마음에 들어 보이진 않았지만, 동시에 그의 눈빛에서 뿜어 나오는 강렬한 호기심은 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사실, 이 순간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해 왔었다. 하와이 선교센터에서 혹시나 북한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해서, 어떻게 북한에서 금지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며 머릿속에 항상 생각하며 기도해 왔었다. 북한에서 돌아오신 선교사들은 북한에서는 복음을 나눌 기회가 거의 불가능하니 기대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곤 하셨다.

그런데 내 앞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믿기지 않았다, 내 앞에 박씨가 나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묻고 있다니, 그의 질문은 나에게 충격과 동시에 흥분케 하였다. 내가 곧바로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은 진리이시고 예수님은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에요(he is the truth, and he is the only way to salvation)”라고 대답하였다.

내 대답을 들은 그는 자리에 기대어 조용히 혼자서 “진리…진리라”라며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다른 말로 할 수 없었다. 나는 몇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침묵 속에서 그를 기다렸다. 기다림 끝에 그는 내 어깨에 기대어 말하길 “그 (예수)가 진리라고 말하자, 그런데 왜 그가 구원의 길인가?”라고 물었다. 난 감격했다. 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접한 것 중 가장 쉬운 전도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복음의 메시지를 더 설명해 달라는 것 같았다.

그 동안 내가 기도하며, 말하기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 되살아 났다. 나는 그에게 단순한 복음, 인간의 타락, 죄 많은 본성에 대해,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것조차 충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말했고, 우리의 선의에도 이기심이 숨겨져 있기에 우리는 구원자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구원의 세 가지 측면 칭의, 성화, 영화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간증도 나눌 수 있었다, 하나님은 그리 멀지 계시지 않으며, 그는 우리의 의식과 종교적인 행위보다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신다고 얘기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박씨는 나를 방해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가 모두 버스에서 나오려고 일어섰을 때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알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나는 겁이 났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북한의 비밀 경찰에게 복음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나는 현명한 선택을 했는가 고민했던 것은 혹시나, 우리 팀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형님이 상관에게 보고하면 어떡할까? 내가 한 행동이 불법이 아니었을까? 박씨가 오히려 나를 시험한 게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기도를 하면 할수록 벅찬 감동과 평화와 기쁨을 느꼈다. 나는 형님이 나와 함께했던 시간이 진심이라고 믿었고, 버스 안에서 그 시간을 지휘한 사람은 우리의 하나님이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박씨의 마음속 깊이 복음 메시지가 스며들기를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 날…
낯선 곳에서 길 잃은 이방인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으로부터 우리의 사역은 평화로운 상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은 벌어지는 상황에 딸려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분위기는 내가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픽업해 주는 아빠 옆에 앉아 뉴질랜드의 따뜻한 햇빛이 비추는 가운데 달리는 차의 창문을 내리고 달리는 차 안에서 기분 좋아 즐거워하다 얼마 못 가서 잠들어 버렸던 때의 느낌 같았다.

그 잠은 피곤해서가 아닌, 아빠가 운전하시고, 지금 달리고 있는 이 상황은 내가 신뢰하고 있는 아빠가 다 알아서 하시기에 나는 그 어떤 것도 할 필요 없이 안정감 속에서 평안으로부터 오는 잠이었다.

이 느낌을 바로 북한 선교여행의 시간 가운데 느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운전하심 가운데, 그냥 타고 가는 승객처럼 주님만을 신뢰하고 가만히 앉아 그분이 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그 운행을 즐기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 숙소에서 일어나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탔다. 그날은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를 몰랐고 일정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팀 10명은 모두 버스 앞자리에 앉았다.

평상시처럼 다른 일반 관광팀들은 모두 뒷자리에 앉고, 185cm의 키가 큰 관광회사 대표 김씨는 우리 팀들과 함께, 그리고 통역사는 앞자리에, 나의 형님 박씨는 내 옆에 앉았다.

갑자기 김씨가 우리 팀의 예배 인도하는 자매의 기타를 보는 것이었다. 우리가 북한에 도착한 이후 한 번도 기타를 치며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지만, 예배 인도자는 항상 어디를 가든지 가지고 다녔던 작은 “Baby Martin” 기타였다.

김씨는 그 기타를 가리키며 요청을 했다, “기타 어떻게 치는지 아십니까? 나를 위해 기타 치며 노래하나 불러줄 수 있습니까?” “그럼요, 우리가 아는 노래면 됩니다”라고 나는 바로 응답하였다.

김씨가 말하길, “몇 년 전 외국인 친구가 영어 노래 하나를 가르쳐 주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외국 노래였는데…뭐라고 했더라?” 하면서 김씨는 그 노래 제목을 기억해 내려고 무진 애를 썼고, 우리 팀의 예배 인도자는 기타를 조율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아마 그 노래는 비틀즈가 불렀거나 아니면 유명한 팝송일거라고 생각하였다.

“아, 생각났다.” 김씨의 얼굴은 마치 잃었던 자동차 열쇠를 다시 찾은 사람처럼 환해 보였다. 그리고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인데 어떻게 치는지 아십니까?”

우리 팀 모두는 순간, 귀를 의심했었고 그 놀라움의 현실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를 몰랐다. 뒷좌석의 일반 관광객들은 자기들끼리 계속해서 떠들며 말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앞자리의 우리 팀 모두는 방금 전 김씨가 말한 것을 듣자마자 그 감동을 인내하며, 서로를 눈으로만 대화하며 주님께 감사하며, 자연스럽게 반응하려 했었지만 우리들의 심장은 멈추지 않고 북을 쳐대는 것 같았던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던 순간 중에 하나이다.

“네, 우리 그 노래 알아요”라고 나는 자연스럽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김씨가 “나를 위해 그 노래 기타 치며 불러줄 수 있습니까?” 내가 고개를 돌려 예배 인도자를 쳐다보았을 때, 이미 그 자매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 역시 감동의 눈물을 애써 참으며, 예배 인도자에게 고개를 끄덕여 사인을 주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우리 모두는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렸다. 불가능할 것이라 경험자들로부터 들었고, 또 우리 역시 불가능할 줄 알았던 그곳에서, 분명히 평양의 거리 위에서 우리는 그 땅의 왕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우리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우리는 달리면서 예배를 드렸고, 이곳에서, 저곳에서,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그들의 요청에 의해서였지만, 분명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이었음을 믿고, 당당하게 자유함 속에서 예배를 드리고 또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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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양
2010년 호주 YWAM(Youth With A Mission)에서 훈련 받고, YWAM 하와이 코나에서 2017년까지 예수 제자훈련학교의 간사와 학교 책임자로 섬겼다. 2018년 후반 뉴질랜드에 돌아와 빅토리처치의 청소년부 담당자로 있고, M28의 책임 간사로 세상 끝까지 전하는 세대가 일어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