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을 제대로 못 한 사데 교회 이야기

사랑이 넘치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방문하고 다음 방문지인 사데 교회로 약 50분을 달려갔다. 버스 안에서 우리 일행의 가이드가 거듭해 안내를 해 준 것이 있다. 맨 처음부터 나눠주었던 무선 수신기와 관련한 것이다.

첨단 시대 속에서 무선 수신기에 자신의 이어폰을 꽂기만 하면, 가이드 근방 30m 안에서 모든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장치이다. 전날부터 충전을 충분히 해 두라고 당부까지 받았다. 왜냐하면 사데 교회부터는 지역도 넓어지고, 사람도 많아짐에 따라 사용량이 많아지기 때문이란다.

드디어 사데 교회에 도착했다. 동도 트고 관리인도 나와서 표를 팔고 있었다. 조금 걸어 들어가는 길은 상쾌함을 더해주었다. 당시 사데 도시는 지진으로 무너지고 유적만 남아 있었다. 아르테미스 신전 터에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작은 교회는 비교적 온전한 곳이 많았다. 과거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고 페르시아 때는 소아시아 지방 수도이기도 했던 곳이다. 화려했던 곳의 흔적이 여기저기 넓은 땅에 고대 유적으로 남아 있었다.

사데교회 전경

사데(사르데이스: Greek)의 뜻은 남은 자(remnant), 새로 난(new born), 새로 된(renewed), 또는 도망쳐 나온 사람들(those escaping)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죽은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의 일정을 돌아보니, 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를 뒤에서부터 방문하고 있었다.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던 교회의 현장에 가보니, 지난 3년간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서 내린 후, 약 5분을 걸어서 사데 교회 터에 세워진 신전에 도착했다. 본인은 사람이 없는 사진을 담고 싶어서 가장 앞서가서 부지런히 앵글을 보면서 필요한 사진을 찍었다. 모든 일행이 다 도착할 쯤에 가이드(목사)는 설명을 해주려고 한곳으로 모이라고 하였다.

늦게 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30m 안에 있으면 들을 수 있는 수신기가 있어 가이드는 설명을 시작했다. 대략 서론을 마무리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중에 갑자기 일행 중 한 명이 손을 들면서 말을 한다.

“목사님, 소리가 안 들려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집중해서 잘 듣고 있던 상황이어서 더욱 그러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며 모두가 말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는가 싶을 때, 일행 중에 가장 연장자이며 은퇴하신 목사님이 명대사를 날리셨다. 이 말 한마디로 우리는 여정 중 잊지 못할 베스트 웃음을 추억으로 가지게 되었다.

그의 대사는 … “OO 님, 이어폰 어디에 있어요?” 모든 사람의 눈이 질문한 사람의 이어폰에 쏠렸다. 그리고 대박 웃음을 30여 명이 지었다. 왜냐하면 그 이어폰이 귀에 꽂혀있지 않고 목 언저리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아침부터 서둘러 다니고 부족한 잠을 이동 중에 가지다 보니 일어난 해프닝으로 생각한다.

송수신기

하지만 1년이 넘어간 오늘, 이 웃고 넘어간 이야기가 단순한 추억의 웃음으로만 남지는 않는다. 좋은 송신기와 수신기 그리고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이어폰, 더하여 잘 이해할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고 해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화려하고 풍요롭고 훌륭한 환경 속에 있고, 뛰어난 이해력을 가졌을지라도 생명의 말씀이 없으면 죽은 것이다. 듣지 않는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인가~ 물질의 풍요함과 세속화로 인해 사데 교회가 놓쳤던 것이 한 가지 보이는 듯하다. 가진 것이 있어서 높고 크게 건물도 짓고 나름의 선한 일에도 힘을 썼을 법한 교회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수직적 관계 아래, 가정 안에서 믿음의 전수에는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헐벗고 힘들 때는 몸부림치듯이 신앙 안에서 견고히 서서 자녀들에게 믿음을 전수한다. 하지만 먹고 살만해지면 주어진 것을 쓰고 누리면서 자녀들에게 그런 부를 넘겨주는 것에 집중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믿음의 유산이 아닌 영적 죽음을 앞당기는 물질을 넘겨주는 것이 그것이 아닌가 싶다.

사데교회 유적

사데 교회는 그 이름값을 제대로 못 했기에 죽었다는 책망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유럽의 덴마크 해협에 위치한 Zealand를 떠올리는 New Zealand라는 나라에 살고 있다. 마오리(원주민) 말로는 아오테로아(Aoteroa: 길고 하얀 구름의 나라)라고도 불린다. 글쎄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 순위로 보자면, TOP 3 안에 들어간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안에서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스스로 갇혀서 우울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과거 신약교회의 이름들을 다시 의미 있게 생각해보며, 오늘날 우리의 수많은 교회들 이름도 생각해 본다.

실제로 있었던 일화가 생각이 난다. 미국의 어떤 교회에 공동체의 청빙(Pastoral Invitation)을 받아 새롭게 부임한 목사가 얼마 있다가 교회의 간판에서 일정 부분을 잘라내어 난리가 났었단다. 그 이유는 부임하고 나서 교회 공동체를 보니 이름과 걸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잘랐다는 것이다. 이렇게 했으니 그 목사는 당연히 쫓겨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교회는 회개하고 거듭났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찾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신약교회 회복을 위해 힘쓰고 있다.

우리 교회들도 초심에 주셨던 사명을 회복하고 이름값을 해야 할 것이라 믿는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사야 56: 7, 마가복음 11:17)이요, 주님께서 그리스도(구원자)되심을 증거하며 영혼구원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신약교회에는 빌라델비아, 서머나, 데살로니가 등등과 같은 이름값을 톡톡히 한 교회들이 있다. 오늘 우리 교회들 중에 영혼을 구원하려는 열정과 관심이 없는 공동체가 있다면, 신약교회들의 정신을 생각하며 소명과 사명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사데 교회에 대한 설명과 유적지들을 두루 둘러본 후, 우리 일행들은 현지 안내원의 허락 하(공식적으로 찬양 불가 터키는 세속화된 모슬림이기에 가능했음)에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복음 송을 합창으로 불렀다. 참고로 들판의 날씨는 영하의 날씨로 매우 추웠었다.

그 옛날 도시 안에 시냇물을 ‘황금천’이라고 부를 만큼 사금 함유량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물질의 풍요로 인해 세속화되고 형식주의와 나태함이 가득한 곳에서, 믿음으로 살아내어 승리하는 자가 되자는 마음으로 찬양하였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은 그런 현실 속에서 작은 교회이지만 “이기는 자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요한계시록 3:4-5)이라며 격려했기 때문이다.

다시 깊이 있게 생각해 보면, 그런 환경 속에도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는 자가 있을 수 있다는 소망 속에 큰 위로와 도전이 되었다. 그렇게 순례를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가려고 나오는 길에, 들어갔던 입구에서 청포도 말린 건포도를 농부 할아버지가 팔고 있었다. 건강상 단것을 꺼려해 구입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일행들이 저렴한 가격이라며 넉넉히 구입해서 나눠주는 덕에 거저 맛을 보았다. 역시 공짜는 맛을 훨씬 더하는 것만 같다.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사데 교회에서 보내고 오전 9시 30분경에 다음 행선지인 요한 기념교회(요한의 무덤)로 향했다. 1시간하고 50분을 더 달려서 도착하였다. 순례자들이 탐방하고 있는 교회들은 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교회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는 사도 바울이 이방인 전도로 발자취를 남겼던 곳인데 요한을 기념하는 교회로 남겨진 것이다. 그 이유가 궁금하던 차에 제공된 자료를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사도 요한 기념교회는 AD313년 기독교가 공인되고, 에베소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자 요한의 무덤이 있던 이곳에 목재로 된 교회를 콘스탄티누스가 세웠다고 한다. 그 후에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548-565)의 명을 따라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교회의 모습으로 증축했다고 한다.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이곳엔 ‘이곳은 나의 영원한 쉴 자리, 여기서 살게 될 것이다’라는 비문이 있다. 북쪽 지역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땅을 파서 만든 세례소도 있다. 동로마 제국 당시 소아시아 반도에서 최대의 교회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은 허물어지고 망가진 유적지 중의 하나이다.

요한 기념교회

30여 분 정도를 둘러본 후에 우리 일행은 여행사의 스케줄을 따라 가죽 공장을 방문하게 된다. 쉬어가는 코스로 이쁘고 멋진 가죽제품을 원 없이 본 것으로 정리하련다. 그러고 나서 한식에 꽃과 같은 비빔밥을 먹었다. 역시 한국인답게 빨간 고추장을 듬뿍 섞어서 맛나게 입과 목과 식도를 거쳐서 위장에 전달이 되니 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행복감을 가졌었다.

이름값을 제대로 못했던 사데 교회를 빨리 잊어버리고자 맛난 비빔밥 속에 망각의 영도 섞어서 먹은 후,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에베소 교회로 갔다. 이름의 뜻을 찾아보니 “바람직한, 흠모할 만한”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궁금증이 발동하면, ‘Warning: Do Not Open the Gate’라는 사인을 보고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려고 열어보는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특히나 우리가 찾아보고 있는 신약교회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교회가 아닌가! 사도 바울의 믿음의 아들과 같은 디모데 목사가 목회를 하였던 따끈함을 넘어 뜨거운 교회, 에베소 교회를 찾아보련다. 다음 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