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땅끝에 서다

2018년 8월 29일(수) 30일차 : 올베이로아 ~ Cee: 번외 19km (누적 871km)
오늘은 Cee까지만 간다. 보통 일정은 하루에 피스테라까지 가지만 난 천천히 두 번 나누어서 가려 한다. 산티아고에 가서 3일 동안 지내느니 피스테라, 무시아 기간을 2일을 더 보내고 가려는 것이다. 아침부터 여유가 있어서 7시에 일어나 아침도 먹고 천천히 출발한다.

까미노 막판의 모습

어제 밤에 흐려서 비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침에 구름만 있고 걷기에 좋은 날씨이다. 평소보다 천천히 걷는다. 주변의 경관도 보면서 여유를 갖는다. 새벽에 갔으면 놓쳤을 것을 생각하니 여유 있게 일정 잡은 것이 새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코스는 산등성이를 타고 가는 것이라 험하지도 않고 평이하다. 그러나 1시간 반 정도 가면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오고 그 이후 13km는 마을이 없다. 그래서 작은 마을 카페에서 커피 한잔에 빵 하나를 먹고 이제 쉬지 않으니 발도 재정비하고 준비를 한다.

피스테라와 무시아 갈림길에서

다시 걷는다. 30분 정도 가니까 피스테라와 무시아로 가는 두 갈래 길 이정표 표지석이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스테라로 간다. 나도 역시 피스테라로 간다. 이제 본격적으로 걷는다. 그래도 2시간 반 정도 가면 된다.

어제까지는 여럿이서 걸었지만 오늘부터 끝까지 혼자 걷는다. 까미노를 마무리하면서 좋은 거 같다. 그동안의 일들도 생각하고,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이제 정말 끝나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 걸음이 소중해진다. 경치가 너무 좋다. 산도 좋고, 바람도 좋고, 구름도 좋다. 사람도 많지 않아서 좋다.

찬양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그때 마침 찬양 가사가 귀에 파고든다. “나 주만 위해 살겠네, 나 주만 위해 살겠네..” 가사가 계속 반복된다. 나는 주만 위해서 살겠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살고 있는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려고 한다. 평생 드는 질문이고 답일 것이다.

땅끝 바다 대서양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면서 걸으니 2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계속 걷다가 고개를 넘어 내려가니 대서양 바다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다. 점점 산 위에서 보이는 바다가 눈에 크게 들어온다. 감동이다. 내가 바다까지 걸어온 것이다. 저 바다를 건너면 미대륙인 것이다. 솔직히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보다 더한 감동이 있다.

내일 땅끝 피스테라에 가면 어떨까 설레기도 한다. 가족과 영상통화로 바다를 보여주는데 뉴질랜드에 사는 가족들에게는 바다가 그다지 와 닿지 않는 듯하다.

이제 Cee에 도착한다. 바닷가 마을이라 뉴질랜드 생각도 나고 정감이 간다. 이곳에 머문 것이 잘한 거 같다. 샤워하고 빨래를 하고 간단히 점심을 먹고, 마을 구경과 장을 보기 위해 나갔다. 바닷가 마을치고는 너무 한적하고 좋다. 바닷가에 나가 산책을 하니 뉴질랜드가 그립고 가족이 보고 싶다.

스페인소년의 가정과 함께

나갔다 오니 내 침대 위로 한 아이가 들어와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까미노를 하는 14살 스페인 남학생이다. 이름은 네이샨이다. 그런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한다. 놀래서 물으니 약간 한국말을 배웠단다. 바로 한류의 영향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의 팬이다. 한국말을 약간 쓸 줄도 안다.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정말 한류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녁을 간단히 해 먹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은 더 적게 걷는다. 바닷가를 따라 피스테라까지 갈 것이다. ‘이제 정말 끝이다’라는 생각에 많은 생각이 든다. 오늘도 부엔 까미노

2018년 8월 30일(목) 31일 차 : Cee ~ 피스테라: 번외 19km (누적 890km)
오늘의 목적지는 땅끝 피스테라이다. 사도시대 때 예수님의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라고 하신 지상명령을 통해 바울은 그 당시 땅 끝이라 여겨졌던 서바나(스페인)으로 가고자 했다.

바울이 못 간 그 땅끝을 오늘 내가 간다. 난 목사이기에 산티아고의 감동보다 피스테라의 감동이 더 클 거 같다. 오늘은 시간이 많아 아침도 먹고 천천히 준비하여 7시 30분에 출발한다.

바닷가를 끼고 걷는 것이기에 더욱 발걸음이 가볍다. Cee 에서부터 바닷가와 산등성이를 타고 계속 걸어간다. 2시간 정도 걸으니 피스테라의 등대가 멀리 보인다.

날씨도 구름이 많아 걷기에도 좋다. 이제 내일이면 모든 까미노는 끝이 난다. 32일 동안 걸었는데, 내 인생에 이런 시간이 또 있을까 싶다. 고개를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피스테라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걷다가 까미노 길을 이탈해서 해변 모래사장으로 나간다. 아침이라 사람이 없어서 너무 좋다. 내가 전세 낸 비치인 것처럼 걷는다.

뉴질랜드도 비치가 많지만 스페인이라 그런지 또 다른 거 같다. 모래사장을 걸으며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영상통화를 한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전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가족들 얼굴을 보니 좋다.

해변에서 나와 피스테라 마을로 들어간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땅끝 0표지석과 등대가 있는 곳까지 3.5km를 더 올라가야 한다. 대부분은 숙소를 잡고 가벼운 차림으로 올라가는데 난 너무 일러 숙소를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배낭을 메고 간다. 그렇지만 배낭을 메고 땅끝까지 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 생각하고 걷는다.

올라가는 경치도 너무 좋다. 오전이라 사람도, 관광버스도 없다. 올라오다 보니 야고보 사도의 순례 모습 동상이 있다. 그가 주님의 명령으로 이곳에서 복음을 전한 것이다. 2천 년이 지나 내가 그 길에 있다.

땅끝 0표지석

드디어 땅끝에 섰다. 0표지석이 보이면서 31일 동안 약 900km를 걸었던 길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감동과 감사와 지난 시간을 생각하며 흐르는 눈물이다. 난 왜 이 길을 걸었는가? 길 위에서 주님을 만났고, 천사를 만났고, 주의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그저 감사하다. 까미노에 3무가 있었다. 비가 없었고, 물집이 없었고, 무릎 통증이 없었다. 정말 감사하다.

등대를 지나 끝에 있는 한 바위를 골라 앉는다.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고, 스틱도 세웠다. 이것들이 이곳까지 나를 위해 일해 준 것이다. 고생했다. 예전에는 이곳에 이런 물건들을 태우던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환경문제로 터만 남아 있다.

한참을 앉아서 생각하고 기도한다.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고, 나를 위해 중보해주신 분들을 떠올리며 기도한다. 또한 앞으로 내가 어떻게 목회하며 인도하심을 받을지 나의 갈길 다가도록 인도해달라고 기도한다. 감사하다. 그냥 다 감사하다.

한참을 보내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시간이라 일어난다. 다시 3.5km를 내려가야 한다. 시내로 내려와서 숙소를 잡았다. 숙소는 구글에서 검색해서 평점이 좋은 곳을 골랐더니 역시 버스 타고 온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깨끗하고 주방이 있어서 저녁을 해 먹을까 한다. 씻고 빨래를 하고 쉰다. 이제 정말 내일이면 끝이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 정신 차리고 오늘도 하루 마무리를 잘하자는 다짐을 하며 저녁은 숙소에서 만난 한국분과 함께 해 먹었다.

그리고 식사 후에 일몰을 보기 위해 다시 등대로 왕복 1시간 20분을 걷는다는 것이 싫어서 선셋 크루즈가 있다고 해서 예약을 하고 부둣가로 나왔다. 한국 돈 1만5천원에 2시간 배 타고 간식도 나오는데 비싸지 않고 30일 넘게 걸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크루즈라고 하지만 50여 명 타는 작은 배이다.

그러나 땅끝에서의 일몰을 보는 것이 내가 살면서 또 있겠는가? 바다 끝에서 지는 태양을 처음 본다. 내가 오전에 올라가서 서 있던 등대 밑도 지나간다. 땅끝보다 더 나가는 것이다.

아침에는 구름이 많고 흐리더니 난생처음으로 일출을 본다. 해가 바다 저편으로 쏙 들어간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히 주시는 선물 같았다. 내일 하루 남았다. 끝까지 가자. 오늘도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