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도착 후의 여정

2018년 8월 27일(금) 28일 차 : 산티아고 ~ 레그레이라: 번외 22km (누적 819km)
산티아고에 계획한 일정보다 8일을 빨리 왔다. 그래서 원래는 버스 타고 가려고 했던 피스테라라는 스페인의 땅끝 마을과 무시아를 걸어서 가려고 한다. 2일을 산티아고에서 머무는데 어제 주일에는 도착해서 기운이 빠졌는지 속도 안 좋고 몸이 처져서 하루 종일 약 먹고 숙소에서 쉬었다.

산티아고 성당을 뒤로 하고

그래도 예배는 아니지만 주일이니까 대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다. 순례자들을 축복하는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을 보고 산티아고가 순례자들을 많이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레그레이라이다. 22K만 가면 된다. 아침에 느긋하게 준비하며 숙소 조식이 너무 잘 나와서 어제 하루 종일 굶었기에 든든히 먹고 출발한다.

이제부터는 거의 순례자들을 만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산티아고가 까미노의 목적지이기에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버스로 피스테라를 가거나 산티아고까지만 간다. 10~20% 정도만 걷지 않을까 생각한다. 산티아고 오기까지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걸었는데 오늘은 홀로 걸으며 지난 까미노를 생각하고 정리하는 좋은 시간인 거 같다.

피스테라까지는 거의 90Km이고, 거기서 무시아까지 30Km로 120Km를 더 걷는 것이다. 피스테라는 영어 Finish+Terra로 말 그대로 땅 끝이다. 더 나아가면 대서양이다.

그곳에 0Km의 표지석이 있다. 야고보 사도가 순교하고 그 시신을 그의 제자들이 배에 태워 보냈는데 피스테라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야고보가 복음을 전했기에 죽어서라도 다시 가고 싶었던 것일까?

피스테라와 무시아까지 거리석

무시아는 더 위쪽에 있는 작은 어촌으로 마리아가 야고보 사도를 위해 나타났다고 하는 전설도 있다. 그리고 작은 바닷가 마을인 무시아에서 지난 까미노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곳으로 적당하다 생각되어 피스테라~무시아로 정한 것이다. 반대로 걷는 사람들도 있다.

8시에 느긋하게 대성당 앞에서 출발한다. 22K만 가면 되기에 천천히 간다. 산티아고 시내를 벗어나니 한가해지면서 사람들이 드물게 걷는다. 날씨도 바람도 불고 구름도 있어서 걷기에 딱 좋다.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나서 작은 카페에서 잠시 물 한 통을 산다. 아침을 든든히 먹었더니 배는 고프지 않다. 고개를 몇 개 넘어 차도로, 숲길로, 언덕으로 걷다가 다리가 하나 나온다. 시골에 흐르는 시냇가에 오래된 다리와 그 옆의 작은 성 같은 곳이 참 예쁘다.

드디어 4시간 반 만에 래그레이라에 도착한다. 쉬지 않고 온 이유 중의 하나는 오늘 갈 숙소가 20명이 정원인데 그곳 침대가 싱글 침대라고 한다. 그래서 같이 걷던 청년과 함께 계속 쉬지 않고 걸었다. 앞에 가끔 보이는 순례자들은 추월할 대상으로 여기며 앞질러 왔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도착하니 번호가 16번이다. 그런데 17번부터 20번은 2층 침대란다. 우리가 해냈다고 청년이랑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도착해서 샤워하고, 빨래를 해서 널고, 점심을 간단히 먹고, 침대에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저녁은 숙소에 식당이 없기에 시내까지 나가서 먹어야 한다. 시내까지 1.2Km 정도인데 그 정도는 껌이다. 저녁에 나가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은 31Km를 걸어야 한다. 푹 자야겠다. 오늘도 부엔 까미노~~~

2018년 8월 28일(토) 29일 차 : 레그레이라 ~ 올베이로아: 번 외 33km(누적 852km)
오늘의 목적지는 올베이로아이다. 33Km를 걸어야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하는데 벌써 다들 일어나서 준비하고 있다. 어제 구입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출발한다.

레이그레아 작은성당

같이 걸어 산티아고에 왔던 포르투칼 군인 디에고의 군인 친구들 3명이 산티아고에서부터 합류했는데 어제 같은 숙소에 묵게 되면서 오늘 같이 출발한다. 여군 2명과 남군 2명의 포르투칼 군인과 초등 여교사와 40대 목사 한국인이 같이 출발한다. 그런데 30분 만에 그들은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군인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하며 우리의 페이스대로 간다.

마지막을 함께 한 포루투칼 군인들

오늘은 초반부터 경사로 시작된다. 이러한 언덕과 경사가 12Km 정도 이어진다. 12Km 동안 헤드 렌턴만 의지한 채 걸어간다. 새벽이라 기온이 낮지만 땀으로 온몸을 적히며 산을 탄다.

이제 몸에 적응이 되었을 산행도 어렵다. 날마다 훈련하지 않으면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거 같다. 영적인 훈련도 아무리 많은 시간을 했다 하더라도 매일 하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다. 날마다 날마다…
2시간을 간 후 마을이 나오니 카페에서 쉬며 시원한 오렌지주스로 목을 축인다. 스페인은 오렌지주스를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짜서 준다. 정말 달고 맛있다. 이거 한잔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런데 이곳에 오는 도중에 동전 지갑을 떨어뜨린 거 같다.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면서 떨어뜨린 듯하다. 동전이 많지 않았지만 잃어버렸다는 것에 마음이 쓰인다. 그러나 모든 카드와 지폐가 있는 지갑을 안 잃어버린 것이 더 감사하다.

다시 걷는다. 오늘은 10K마다 쉴 수 있는 마을이 나온다. 2번만 쉬고 가면 도착이다. 어제도 느꼈지만 성당을 볼 수가 없다. 이상하다. 산티아고까지는 어떤 마을도 성당을 못 본 적이 없었는데 왜 산티아고를 지나서는 잘 볼 수가 없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궁금하다.

2시간을 쉬지 않고 다음 마을로 간다. 해가 떴지만 구름이 많아 오늘 처음으로 반팔티를 입고 팔 토시를 안 했다. 시원해서 좋다. 오늘의 길은 완전 시골길이다. 산길, 들길을 거닐며 가는데 이제 마무리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니 약간 아쉽기는 하다.

2시간을 걷고 또 카페에서 쉰다. 시원한 콜라 한 잔이 온몸을 시원케 한다. 이제 2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다시 출발하자마자 만나는 고갯길을 한없이 올라가니 전망은 끝내준다. 잠깐 서서 바람을 맞으며 전경을 본다. 높이도 올라왔다. 이제 내려가면 된다. 산티아고에 가는 길처럼 마을마다의 특색도 없고, 사람들도 많지 않고 이정표도, 카페도 많지 않다. 이제 끝나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드디어 7시간 만에 올베이로아에 도착한다. 작은 마을이다. 마을이 깨끗하고 예쁘다. 오늘의 숙소는 마을 입구에 있는 숙소이다. 식당도 같이 운영해서 오늘 저녁은 여기 메뉴를 먹어야 할 거 같다. 샤워하고 빨래를 하고 주방에 가서 드디어 처음으로 산티아고에서 산 짜파게티를 먹는다. 매번 먹으려다가 실패한 라면이다. 짜파게티에 스페인 햇반을 먹는데 얼마나 기다렸던 라면인가 순식간에 밥까지 비벼서 먹었다.

좀 쉬다가 마을을 돌아보고 저녁을 먹는다. 내일이면 같이 걸었던 순례자들과 헤어져야 하니 저녁 식사는 마지막으로 같이 한다. 오늘은 날이 약간 흐려서 몸도 약간 지친다. 이제 정말 이번 주말에 모든 까미노가 끝난다.

원래는 3일 동안 피스테라, 1일 무시아에 가고 다음 날 산티아고에 가서 3일 정도 있다가 떠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산티아고에 2일 동안 있었지만 너무 북적대고 관광객들로 붐벼서 나에게는 맞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피스테라까지 4일, 무시아까지 2일로 늘리고 산티아고에서는 하루만 자고 떠날 생각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조용한 무시아에서 2일 동안 35일의 여정을 돌아보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도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