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첫째 주 찬송/2월 둘째 주 찬송

2월 첫째 주 찬송/274장(통332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정말 주님 앞이라면 그분 이름을 함부로 불렀을까?
1993년에 펴낸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머리말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히브리어의 네 자음 문자는 아도나이(주) 또는 옐로힘(하나님)으로 읽어 왔다. 신약성경을 쓴 사도들은 하나님의 이름 네 글자를 쓸 때에는 예외 없이 ‘주’라고 하였다.(중략)기독교 2천년의 성경 번역 전통에서 볼 때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네 글자는 늘 ‘주’로 번역되어 왔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제3계명도 있듯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어 ‘여호와’는 ‘주’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부모님의 함자(銜字)를 이를 때에도 “○자, ○자, ○자라 씁니다.”라 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가톨릭에서 새로 펴낸 성서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복음 27;46)라 번역된 말씀을 보다가 새삼 하나님 앞에서라면 이렇게 자신을 낮추어 아뢰어야 옳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찬송가는 너무나 예절이 없습니다. 주님을 ‘주’로, 예수님을 ‘예수’로 아랫사람 부르듯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디 종이 감히 주인을 향해 ‘님’자를 떼고 “주인!”이라 부를 수 있지요? 백성이 임금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 제자가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 찬송가사가 음절의 제약 때문이긴 하겠지만 존칭 없는 습관적인 호칭으로 주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어진 건 아닌지요.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옵기는 나의 몸과 나의 맘을 깨끗하게 하옵소서” 아마도 실제 주님 앞에서였더라면 이렇게 아뢰었을 것입니다. “저 행한 것 죄뿐이니 주님 예수님께 비옵기는 저의 몸과 저의 맘을 깨끗하게 하옵소서”라고.

찬송 시 ‘나 행한 것 죄뿐이니’는 스코틀랜드 애버딘(Aberdeen) 태생인 스미스(Walter Chalmers Smith, 1824-1908)목사가 지었습니다. 그는 런던과 에든버러의 자유교회 목사로 평생 목회하면서도 많은 시와 찬송을 지어 발표하였습니다. 찬송가에 소개한 관련 성구인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죄를 통회하며 사죄와 정결케 하심을 간구하는 회개의 시입니다.

곡명 A CLEAN HEART는 작곡자가 바이쉬(Fred H. Byshe)란 이름 밖에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곡은 여러 부분에서 어화(語畵, word painting)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6째마디 “깨끗하게”(O make me clean)의 변화화음(Fb)이 주님의 신비로운 사죄(赦罪)로 보이고, “물가지고”에서의 하행 선율은 하늘위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 같고, “날 씻든지”(without, within)는 깨끗이 비벼 씻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불가지고”의 오르내리는 선율은 불꽃이 펄럭거리는 것 같고 “태우든지”는 타다가 재가 되어 스러져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뿐인가요. “내 모든 죄”(Die out in me.)에서 조약(躁躍)하여 솟구친 “죄”의 높은 음은 죄 사함의 선포와도 같고, “멸하소서”에서의 마지막 화음은 아멘종지(終止, IV-I)의 변형으로서 간절한 기원을 나타냅니다.

2월 둘째 주 찬송/377장(통451장) 전능하신 주 하나님

연약한 순례자가 광야를 지나갈 수 있는 힘
30년 전, 영국의 버킹검 궁에서 열린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을 지켜보면서 그 화려함보다도 경건하고 아름다운 영국 성공회 예배의식과 참석한 회중들의 찬송소리에 압도되었었습니다. 웅장한 파이프오르간의 인도 따라 어쩜 그렇게 프레이즈와 절마다 잘 끊고, 적당한 휴지로서 격조 높은 찬송 분위기를 자아냈었던지. 그래서 이번 윌리엄 왕세손과 캐서린 빈의 결혼식이 더욱 기다려졌지요.

웨스트민스터대성당찬양대(Westminster Abbey Choir)와 왕실교회찬양대와 함께 오르간에 맞춰 온 회중들이 부르는 개회찬송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 나는 순례자이니”(Guide me, O Thou great Jehovah, Pilgrim through this barren land)였습니다.

성당 돔(dom)에서 울리는 잔향과 20명의 소년들(Boy soprano)이 천상의 소리로 어울리는 마지막 절에서의 데스칸트. 비록 TV 모니터 앞이었지만 교회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찬송 시 ‘전능하신 주 하나님’은 8백여 편의 찬송시를 지은 웨일즈의 의사요, 시인인 윌리엄스(William Williams, 1717-1791)목사가 지었습니다.

1745년, 그의 웨일즈 어 찬송시집인 ‘할렐루야’(Hallelujah)에 발표된 이래 영어로 번역되었고, 75개 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크리스천들의 애창곡이 되었습니다.

윌리엄스 목사는 칼뱅 파 감리교단 목사로 웨일즈의 방방곡곡 거리와 목장, 농촌을 찾아다니며 찬송과 설교를 통해 전도 집회를 열곤 했는데, 그는 영국국교반대자(Fanatical dissenters)로 낙인 찍혀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의 배경도 그의 삶과 다름이 없습니다. 바로 앞 장 “나그네와 같은 내가 힘이 부족하오니”(376장)도 이 찬송시의 우리말 다른 번역입니다.

CWM RHONDDA는 웨일즈 말로 ‘론다 계곡’이라는 뜻입니다. 1907년 웨일즈의 론다 계곡에서 열린 침례교찬양축제를 위해서 휴그(John Hughes, 1873-1932)가 작곡하였는데, 이후 이 곡은 5천여 찬양축제에서 불렸습니다.

이 찬송의 원제목은 ‘광야를 지나갈 수 있는 힘’(Strength to pass through the wilderness)입니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지닌 왕세손인들, 연약할 데 그지없는 광야 한가운데 놓인 순례자가 아니런가요. 모인 무리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바라보며 만나와 생명수를 구하였습니다.

더욱이 “하늘 양식”과 “먹여 주시옵소서”에서 점층법(漸層法)과 악곡의 상승하는 모방기법이 더욱 잘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