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꿈은 보고 들음으로

목사가 되기 전, 강도사 시절에는 고등부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 때 특별히 고등부 리더들을 훈련시키는 중에 며칠간 시간을 잡아서 학생들과 함께 여수 애양원에 방문했다. 가기 전에 미리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영화를 학생 리더들과 함께 보았다.

그리고 애양원에 방문해서 나병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도 하며 애양원 청소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애양원 옆에 있는 손양원 목사님 기념관에 들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힘겹게 며칠을 다녀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학생들에게 그것을 보고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학생들 중에 나환자들을 위한 사역자가 나오거나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훌륭한 목사님이 나오기를 원하는 마음도 물론 내게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그 장면들을 사진으로 학생 리더들의 마음 속에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생활을 하게 될 때 애양원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자라나 국회의원이 된다면 이런 약자들을 위한 법안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고, 건축가가 된다면 이런 사회적인 약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건물을 설계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또는 이들이 약자들을 물질적으로 돕기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그 학생들이 무엇을 보았으며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에 따라서 영향이 미치게 됨을 믿는다.

로마서10:17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들음에서 나는 것이 믿음 뿐이겠는가? 그리스도인의 대부분의 삶에 다 적용이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보고 들은 대로 행하게 되어있다. 이것이 배움이다.

선교의 꿈도 역시 우리가 보고 들음으로 더욱 구체화 되고 실현되어간다. 우리는 다음세대에게 선교에 대해서 부지런히 귀로 들려주고,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처음 선교에 대해서 접한 일들
처음부터 선교에 대한 꿈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자라면서 선교에 대해서 듣고 선교사의 삶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주일학교에서, 또는 선교사님들의 선교 보고 등을 통해서 선교에 대해서 처음 접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는 선교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나중에 주일학교 보조교사로 섬겼는데,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주일학교는 오전과 오후, 두 번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오전에는 9시에 모여서 예배와 공과공부를 주로 했고, 오후에는 특별활동을 했다. 그 때 전도사님이 오후 프로그램 중에서 들려준 선교사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처음으로 선교에 대해서 접하게 되었다.

그때 비록 나는 주일학교 보조교사로 참여해서 들은 내용이지만 선교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선교에 대해서 많이 접할 수 있도록 교회에서 선교지나 선교사님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기회가 되는 대로 선교사님들의 삶을 들려주면서 성도들에게 선교가 친숙해지도록 할 필요가 있겠다. 처음에 한국에서 복음을 전했던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분들의 삶을 기록한 책들을 읽을 때에 많은 도전이 일어날 줄 믿는다.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선교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우리 교단에 소속된 선교단체SFC(Student For Christ)에 들어가서 선교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 선교단체는 나에게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쏟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한국교회 건설과 국가와 학원의 복음화, 그리고 세계교회 건설과 세계의 복음화’에 대해서 밤을 지새며 토론을 하며 고민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되어서 선교한국이라는 집회가 있었다. 한국의 모든 학생선교단체들이 연합하여 2년에 한 번씩 개최한 대회이다. 그 집회에 참석하면서 조금 더 실제적으로 선교를 접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선교에 대해서 토론하고 책을 찾아보는 등 관념적으로만 알아왔다.

그러나 선교한국을 통해서 수많은 선교단체 부스를 찾아다니면서 각 단체마다 독특한 사역들을 알아가는 기회를 가졌다. 그 집회에 다녀 온 후로 우리 교회 청년들은 본격적으로 선교를 위해서 기도회를 가지기 시작했다.

체험을 통한 선교의 꿈
이렇게 선교한국을 통해서 많은 선교단체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내 마음 속에는 또 다른 선교단체에서 실제적인 훈련을 받아보고 싶은 강한 소망이 생겼다. 그래서 신학 대학원을 1학기를 마친 후에 휴학을 했다. 본격적인 신학대학원 공부를 하기 전에 훈련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훈련을 받는 중에 단기선교를 몇 차례 다녀왔다. 때로는 한 달, 때로는 두 달…

나에게 있어서 가장 인상 깊게 느껴진 것은 동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그 때는 말레이시아 정글 지역의 각 부족마을을 대상으로 무슬림들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각 마을마다 무슬림이 들어가기 전에 복음을 먼저 전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말레이시아 복음교회’이라는 교단과 연결이 되었다. 한국에서 가신 선교사님께서 그 교단 사역자들과 함께 우리를 인도하셨다.

정글을 하루종일 걸어가서 복음을 전하기도 했고, 모터를 단 카누를 타고 몇시간 동안 강을 거슬러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열매도 많았다. 굉장히 다이나믹한 전도 사역을 하고 돌아왔다.

한국 선교사님의 열정에도 많은 감동이 있었지만, 현지 교단 사역자의 헌신은 정말 눈물겨웠다. 그들은 신학교를 졸업하면 교단에서 배치를 해 주는 대로 어떤 사람은 교회를 돌보며 목회를 하는 사역으로 어떤 사람들은 이 정글지역 복음을 위해서 파송을 받았다. 우리와 함께 한 사람들은 정글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사역자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젊은 나이에 사역자가 되었지만, 많은 고난과 여러가지 힘든 상황 가운데서 기꺼이 무슬림들과 영적 싸움을 싸우며 이 복음을 위해서 살고 있었다. 내가 선교에 대해서 처음 접한 주일학교 보조교사 시절의 ‘선교사 이야기’를 내가 직접 체험한 기분이었다.

단기선교를 마친 후에 우리 팀원들 중에 몇 명이 다시 그 땅으로 돌아가서 짧게는 2~3년, 길게는 5~6년을 거기서 헌신했다. 그 중에 한 명은 결혼 후에 한국에서 사역을 하다가 다시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의 장기 사역자로 들어가서 아직도 거기서 섬기고 있다.

단기선교를 통해서 현장에 있는 선교사님들을 돕기도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선교사의 꿈을 갖게 되고 그 꿈을 키워 가기도 한다. 교회는 가능하면 젊은이들을 선교의 현장으로 많이 내 몰아야 한다. 디지털 기계에 찌들려 메말라 있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불타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장을 접하게 하는 것이다.

선교의 현장에 가서 그 곳에서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사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자원해서 불편한 삶을 살고 있는 선교사님들과 단 몇주간 만이라도 함께 지내다 오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주일학교 어린이들로부터 시작해서 장년에 이르기까지 선교에 대해서 많이 듣고 보게 하여서 선교에 대해서 친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초신자의 입장에서 시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일로 묻어 두고 있었던 선교의 꿈이 다시 싹이 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할 때 장년들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복음전파의 불씨가 일어나기 시작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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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 현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2007년도에 뉴질랜드로 건너와서 한우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다. 선교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고 한국의 고신(예장)교단(KPM) 및 성경번역 선교회(GBT) 소속 선교사로 파푸아 뉴기니에서 성경번역 사역을 하였다. 2020년 2월부터 해밀턴 주사랑교회에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