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낫세의 길’

므낫세는 히브리 역사상 최악의 왕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55년간 군림했는데 그 기간은 그야말로 캄캄하고 사악한 반세기였다. 그는 이방 신을 섬기도록 부추겨, 온 백성이 성적인 방탕에 빠지게 했다.

또한 방방곡곡에 신전을 세우고 거기에 매춘부를 임명했다. 점쟁이와 마술사를 불러와서 백성들을 미신에 빠지게 하고 그들의 마술로 사람들을 조종하기도 했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극도의 악을 행했던 것이다. 그의 야만적인 잔인성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더구나 새로운 악을 창출해 내는 능력도 한이 없는 것 같았다. 더러운 것을 추구하는 욕망도 만족할 줄 몰랐다. 어느 날 끔찍한 마법 의식을 거행하던 중 그는 자기 아들을 제단에 올려놓고 불살라버렸다.’(열왕기하 21장 /유진 피터슨 저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 IVP)

히브리 역사상 최악의 왕이었던 므낫세에 대한 유진 피터슨의 묘사이다. 글만 통해 상상해보면 주색에 빠져 있는 무능한 왕의 모습이 그려진다. 마치 조선의 폭군 연산군처럼. 하지만 므낫세는 그런 왕이 아니었다.

그렇게만 말하기에는 그 음란 방탕함(?)의 결과가 너무 좋았다. 실제로 그가 통치하던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꽤 괜찮은 사회적 안정과 물질적 풍요를 이룬, 세속적 기준으로 볼 때 일종의 태평성대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어떻게 하나님이 선택하신 거룩한 이스라엘이 ‘인신제사’와 ‘성전매춘’을 통해 사회적 안정과 물질적 풍요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쥐고 있던 나라는 ‘신 앗수르(Assyria)’였다. 앗수르는 상업 중심의 높은 경제력과 철기 문명을 바탕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대 제국이었다. 산헤립과 에살핫돈 등, 당대의 철권 통치자들을 통한 공포정치로 주변국들을 긴장시켰으며 강성했던 이집트도 앗수르에 굴복하고 말았다.

북방의 방어선이 되어주던 북이스라엘까지 멸망하자 남유다는 그야말로 앗수르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히스기야의 신앙과 하나님의 도움으로 남유다는 그나마 주체성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히스기야마저 연장 받은 수명을 다 쓰고 죽자 12세의 어린 므낫세가 왕으로 즉위한다.

어떤 연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과정에서 친 앗수르파가 정부의 권력을 독점하게 되고 힘없는 어린 왕은 자연스럽게 친 앗수르 정책에 몸을 맡긴다.

고대 정치는 신정정치에 바탕을 둔 제정일치 사회였다. 신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지금의 종교 생활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마치 중세 가톨릭과 같이, 한 국가가 믿는 신과 그 신관(神觀)은 하나의 통치 철학이 되었고 사회 시스템이 되었다. 어떤 신을 믿느냐가 마치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인가 사회주의 국가인가’ 등을 구분 짓는 의미인 것이다.

친미(親美)를 추구하게 되면 자유민주주의 노선으로 따라가게 되지만 친중(親中)을 추구하게 되면 사회주의 노선을 따라가게 된다. 강대국의 주변국은 숙명처럼 늘 그 줄다리기를 해야만 한다.

므낫세도 통치자의 입장에서 부국강병과 왕권 강화를 위해 한 노선을 선택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친 앗수르 노선이다. 그 노선을 따름으로써 앗수르의 신과 강대국의 사회시스템을 도입해야 했는데 당시 신 앗수르 제국은 니스록(Nisroch)을 중심으로 다신교를 숭배했다.

그 중심에 있던 니스록은 태양을 상징하는 신이라고도 하고 농업을 상징하는 신이라고도 하는데, 결론적으로는 ‘풍요와 번영’을 상징한다. 남성 신이었으며 배우자 역할을 하는 여성 신도 존재했다.

이들의 제사의식에는 자연스럽게 ‘성행위’가 수반되었기에 모든 신전에는 성전 매춘을 전담하는 공식적인 창기가 존재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맞다. 바알과 아세라 개념이다. 이런 제의 형식은 비단 앗수르만의 특징이 아니라 고대 모든 이방 신들 공통점이었으며 그 제사의식 또한 대략 비슷했다.

한 나라의 왕이 ‘부국강병’과 ‘국가 안정화’를 위해 강대국의 정치와 사회를 받아들이는 것이 뭐가 잘못일까? 앞서 언급했듯 그의 통치기간 동안 남유다는 외교적, 사회적 안정을 이뤘다. 그로 인해 국민 개개인이 물질적 풍요와 안정을 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도자에게 손가락질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선지자들을 제외하고) 그의 선택은 옳은 것 아닌가? 그저 하나님이 뜻과는 달랐을 뿐…

므낫세를 변호하는 것이냐고? 아니다. 나는 그를 옹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러기에 그는 말년에 너무 주도적으로 우상을 들여와 몰입했다. 오직 세속적 가치만을 추구한 나머지 유다가 힘의 논리에 의해 돌아가는 국가가 되게 만들었고 상식적 정의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므낫세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 그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놀랍도록 닮아있다는 것이다. 그 마음의 중심, 한 나라의 왕으로서 부국강병을 꿈꾸는 그의 마음의 중심과 한 개인으로서 부와 명예를 꿈꾸는 내 마음의 중심이 똑같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십여 년 째 기독교 출판계에서 그림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 등단할 때만 해도 책을 낸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좋았는지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한 두 권의 책이 나오고 어느덧 십여 권을 출간한 기성작가가 되다 보니 나의 태도도 변했다.

지금 내 마음은 ‘이정도 출간했으면 이제는 베스트 셀러 작가도 되고, 유명세도 얻고, 경제적 유익도 얻고 싶다’는 마음이다. 큰 유익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조금씩이라도 이전보다는 물질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놀랍도록 제자리이다. 지난 십여 년 간 한 분야에 몸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책의 판매율이나 인지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저 약간 애매하게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는 작가가 됐을 정도?(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고) 참 일관적이다.

가끔 후배 작가들의 그림 책이 나오고 그들이 성공하여 높은 판매율을 이룰 때 너무 부럽다. 그들의 작품을 유심히 관찰하고 분석한다.

‘아! 이런 요소를 적용하면 내 책도 더 잘 팔릴 수 있겠구나!…’ 시간과 경험이 쌓이다 보니 제법 노하우가 생겨 소위 ‘팔리는 책’의 길이 보인다.

하지만 그 길로 갈 수가 없다. 작품의 결이 다르다. 나에게는 내게만 주시는 영감과 메시지가 있다. 내 메시지대로 가지 않고 다른 성공한 케이스를 따라 가려 하면 내 메시지를 전할 수가 없다. 자기 사명대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이 이렇게 갈등되다 보니 성공과 번영을 찾아갔던 므낫세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의 마음이 내 마음이니까…

열왕기하 21장이 내 마음을 비춘다. 그 빛이 너무 밝아 내 모습이 적나라하다. 누가 나 대신 그냥 이 방 불 좀 꺼줬으면 좋겠다. 불도 끄고 암막 커텐도 쳐줬으면.

고심 끝에 결국 지난 한 달간 ‘잘 팔리는 책’을 만들고자 작심하고 구상했던 모든 계획들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가까스로 므낫세의 길목에서 멈춰선 느낌이다. 일단 여기 서서 다시 재검토해봐야겠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