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사용되길

양철권 목사<오클랜드서부교회>

한참 코로나가 조국 대한민국에서 발생하였을 때 일선에서 코로나와 싸웠던 의료진들, 특히 간호사들에게 많은 격려와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근래에 들어서 소방관들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면서 그분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오늘 본문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어려운 곳에 사용하는 삶의 자세를 가지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솔로몬이 왕이 되고 나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백성들을 재판할 때 선악을 분별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는 재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지혜였습니다.

그것은 당시 재판을 해야 하는 왕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솔로몬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왕의 직무를 제대로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구하고 싶었던 것이 왕으로서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잘 다스리게 해달라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시고 그에게 그것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재판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솔로몬 왕에게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전체적인 부분에서 부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분에 나오는 두 여인이 창기들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예루살렘에 버젓이 있다는 것과 그들 사이에서 한 아이가 죽은 일로 인해서 서로 산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싸움은 분명히 한 사람은 거짓말을 심지어 왕의 앞에서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을 이어서 왕이 된 솔로몬이 이제 힘차게, 그리고 영광스럽게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는 그런 기대감을 한 번에 날리는 모습이 오늘 재판에 다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세상 나라의 왕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에 계신 영원하신 왕을 사모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솔로몬이 구한 것을 주셨다는 기쁨은 솔로몬 왕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돌아와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잔치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 수 없는 일이 솔로몬과 그의 신하들 앞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처음으로 재판을 할 일이 생겼습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처음 사용된 재판
솔로몬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 하필 두 창기가 가지고 온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능력을 이런 창기들의 문제나 해결하는데 사용해야 하는가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 이 문제를 가지고 처음부터 솔로몬 왕에게 나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창기가 가지고 온 사건이 결코 쉬운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두 창기는 주장이 서로 엇갈렸습니다.

두 사람은 한집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집에 있으면서 해산을 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사흘 간격으로 각자 해산을 했습니다. 그리고 해산한 이후에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 어느 날 한 아이가 죽어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 다 산 아이는 자신의 아들이고 죽은 아이는 상대방의 아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의 말을 증명해 줄 어떤 증거나 증인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결말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 백성들을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 것을 이 재판을 통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솔로몬 왕의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다고 말합니다.

솔로몬 왕이 드디어 왕으로서의 권위를 얻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솔로몬이 내린 판결 하나로 그가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왕이라는 것을 보여주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사건이었습니까?

솔로몬에게 더 멋있게 자신의 지혜를 드러낼 수 있는 여러 사건이 있었을 것인데 하나님은 왜 솔로몬에게 두 창기의 사건, 자신이 자기의 아들을 죽인 것을 감추기 위해서 거짓을 주장하는 이런 사건을 맡기신 것입니까?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야 하는 백성들의 삶은 실상은 이런 죄악 가운데 있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바로 잡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솔로몬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도 이런 원리로 사용돼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은 반듯하고 깔끔한 곳에 사용하도록 주어졌을 가능성보다는 어그러지고 지저분한 곳에서 그것을 회복시키는데 사용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자리를 피하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은 사용할 곳을 잃어버리고 낭비될 뿐입니다.

재판 속에 나오는 자기 희생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한 어머니가 보여준 자기 희생입니다. 솔로몬은 두 여자가 모두 산 아이는 자기의 아들이고 죽은 아이는 상대방의 아이라고 했을 때 어떻게 판결하였습니까? 열왕기상 3장 25절에서 솔로몬은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판결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이 판결은 재판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자기의 아들을 되찾기 위해서 솔로몬 왕에게까지 나온 산 아이의 엄마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 여인은 지금까지 산 아이가 자기의 아들이라고 하는 주장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왕을 향해서 아이를 죽이지 말고 산 아이를 상대 여자에게 주라고 솔로몬에게 구합니다.

이것이 산 아이의 엄마가 보여주는 자기 희생입니다. 끝까지 산 아이가 자기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였다면 왕의 명령은 시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솔로몬이 산 아이의 엄마의 모성애를 알았던 것이지만, 그 모성애 자체를 발휘한 것은 분명히 산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그렇게 이 여인은 산 아이가 자기의 아들인 줄 알면서도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포기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솔로몬 왕은 처음 판결을 거두고 그 여인에게 산 아이를 주라고 다시 명령을 하였습니다. 자기의 아들을 소유하는 것보다 자기의 아들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 여인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자기의 산 아들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이 재판에서 이 여인의 희생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요소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 여인의 마음을 아셔서 솔로몬에게 그런 판결을 내리도록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여인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소유해야 한다는, 또 내가 꼭 해야 한다는 자세를 버리면 훨씬 더 많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많은 다툼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일에 간섭하셔서 역사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하나님은 멋지고 화려한 곳에 사용하기 위해서 주신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생명의 빛을 비추어야 하는 곳에 사용하도록 주셨다는 것을 붙들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에 싫게 보이는 환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하라고 하심을 실천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