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제작한 “Free Solo”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 안에 있는 등반가에게 산 전체가 악조건인 엘 캐피탄(El Capitan)이라는 실수하면 바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914미터의 거대한 바위산이다.
등반을 장비 없이 맨손으로 오르는 도전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 산을 2년 동안 로프를 이용해서 50회 이상 오르내리면서 바위의 상태를 익혔다. 그에게 손가락 하나 들어갈 작은 틈새도 생명처럼 소중했다. 2017년 6월 3일 알렉스 하놀드는 3시간 56분에 걸쳐 암벽 등반에 성공했다.
영상을 보면서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6).”
헬라 세계에는 두 가지 시간 개념이 있다. 하나는 크로노스이고, 또 하나는 카이로스이다. 크로노스는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시간 개념이다. 크로노스 시간이 어떤 목적에 할당되는 순간 카이로스 시간이 된다.
사도 바울이, ‘세월을 아끼라’ 했을 때 사용한 말이 카이로스다. 흩어져 있는 시간을 기회로 활용할 때, 우리의 무수한 크로노스는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된다. 일반인의 눈에는 엘 캐피탄이 손발을 둘 곳이 없는 화강암 덩어리에 불과했지만, 어떤 산악인에게는 수많은 굴곡과 공간을 가진 기회의 산이었다. 크로노스가 카이로스로 변한 것이다.
기회를 놓친 사람
노르웨이 북부에 위치한 보도(Bodo) 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무장화를 신고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한 남자가 자동차 판매 대리점에 들어섰다. 그는 직원에게 물었다. “당장 자동차를 주문할 수 있나요?” 판매 직원이 대답했다. “그럼요.” “그럼, 저기 있는 모델로 16대 주문하겠습니다.”
판매원이 남자의 위아래를 한번 훑어본 뒤 이렇게 말했다. “농담하지 마시고 나가세요.” 그 남자는 밖으로 나와 길 건너편 자동차 판매점으로 갔다. 그곳에서 동일 모델의 차를 16대 계약하고, 전액을 현금으로 지불했다.
사실은 이랬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는 16명으로 구성된 트롤 선박의 선원 중 하나였다. 그들은 그 시즌에 엄청난 규모의 북해산 청어를 어획하여 큰돈을 벌었다. 선원들 모두는 새 차를 뽑기로 했고, 공동 구매하면 할인받을 것을 알고, 그 선원을 대표로 보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15절)”. 원문의 현재형 동사를 살린 정확한 번역은, “너희가 어떻게 걷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라”이다. 삶의 걸음이 의미 없는 습관의 무한 반복이 아닌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걷고 있는 삶을 의도적으로 주목한다. 무엇을 꿈꾸는지, 어떻게 말하고, 어디에 시간을 쓰는지. 앞의 자동차 매장 직원은 다가온 기회를 사람의 외모를 보고 날려버렸다. 그에게 의미있는 카이로스가 될 수 있었는데, 부주의함이 그날을 평범한 크로노스로 머물게 했다.
평지를 걸을 때 다소 부주의하게 걸어도 된다. 수 초 동안 눈을 감고 걸어도 그리 문제 될 것 없다. 그러나 눈보라치는 산악지역에서는 다르다. 매 순간 긴장하고 주위를 살펴야 한다. 지형과 기후가 변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전 세계적 현실이 될 것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 믿는 우리에게 적대적인 일들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2천 년 전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둘러싼 영적 환경이 악했다고 진단했다면, 우리를 둘러싼 지금 세대의 여건은 더 열악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비무장지대(DMZ) 일대에는 100만 발 이상의 지뢰가 묻혀있다고 한다. 한국 전쟁 중에 적군과 아군 모두 전선 곳곳에 지뢰를 묻었는데 문제는 지뢰들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뢰 깔린 지역을 드나드는 임무를 맡은 군인은 늘 긴장 가운데 지낸다. 지뢰밭을 통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큼성큼 걷는 것은 어리석은 만용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주님을 섬기고 예배하기에 비호의적이고 적대적으로 변하고 있다. 갈수록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인간의 세상적 가치가 기준으로 자리 잡는 지금,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지혜의 길일까?
에베소교회를 향해 권면했던 사도의 말씀은 우리 시대에도 유효할 뿐 아니라 오히려 우리 시대의 교회를 향해 주신 말씀으로 다가온다. “시대가 악하다. 주어진 시간의 기회를 사들이라!”
시간을 계획하라
두 달만 지나면 새해를 맞이한다. 우리는 12월 마지막 날이 되면, 밤 11시 59분 50초부터 시간을 카운트하는 가운데 폭죽을 터뜨린다. 그리고 ‘새해’(New Year)를 환호한다.
그럼에도 1월 1일 아침은 만나는 사람, 사는 집,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모두 동일하다. 오히려 폭죽 소리에 늦게 잠들고 그래서 눈을 비비며 늦게 일어날지 모른다. 새해 아침을 맞이했다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많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의미없이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되고 만다. 시간의 기회를 사들여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주의 약속이 담긴 성경 말씀을 자주 대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취약해진다. 쉽게 죄가 들어오고, 하나님에 대해 자주 섭섭해한다. 그러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 앞에 쉽게 굴복하고 만다.
우리는 나의 데스티니(Destiny), 즉 나의 부르심을 완성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깊이 묵상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실제로 성경을 꾸준하게 읽어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런가? 답은 간단하다. 시간을 계획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을 계획하여 하루에 12분만 투자하면 1년 동안 성경 일독이 가능해진다. 하루 24시간을 12분 단위로 쪼개면 120개의 조각이 나온다. 매일 두 개의 조각 즉 24분이면, 신구약 성경을 두 번 읽을 수 있다. 이를 5년 동안 지속하면, 성경을 10번 읽게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매일이 바쁜데 어디서 시간을 확보하냐고. 불필요한 곳에 서성이는 시간들, 유튜브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시간에서 조각 몇 개만 떼어내면 된다. 시간을 계획하면 시간이 나온다.
누군가가 말했다. “Drastic times call for drastic measures”(극단적인 시기엔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주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세대가 직면할 현실은 극단적인 환경일 것이 분명하다. 우리 앞에 무엇이 전개되든지 압도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며 걷는 복된 길이 있다. 주의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는 작업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크로노스로 흘러가는 시간 중에서 몇 개라도 건져서 자신의 부르심을 완성하는 카이로스 시간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