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Wave 콘서트

다음 해엔 G-Wave 태국에 앞서 이웃 나라 L 국에서 G-Wave 콘서트를 진행했다. L 국은 공산주의 국가라 복음을 전할 수 없다. 그래서 십자가를 철저히 숨기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 노출이 된 우리 팀 이름도 바꾸고 기독교적인 가사가 들어간 곡도 사용하지 못했다.

케이팝 아티스트로 공연을 하여 인지도와 인맥을 쌓아 다음에 G-Wave 대회를 열고, 또 현지인과 선교사님과 좋은 관계를 맺어드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L 국 수도의 국립대학교 기숙사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원래 수많은 절차와 승인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이 문을 열어주셔서 예상보다 단기간에 쉽게 허가가 났다. 노출된 곳에서는 눈 감고 기도도 못하기에 시작 전에 다 함께 모여 눈뜨고 대화하듯 기도하고 공연을 시작했다.

케이팝 커버댄스와 노래부터 시작해서 태권무와 밴드연주, 영화 OST와 가사를 수정한 CCM 곡 등으로 화려한 무대를 꾸며갔다. 특별히 현지 비보이 두 팀을 섭외해 콜라보 무대도 만들어 그들에게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콘서트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 몇 명이 들어오더니 콘서트를 알선한 한국인 선교사님을 데려가는 것이다. 뭔가 잘못됐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들 걱정했지만 공연을 멈출 수 없었기에 속으로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선교사님한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겠죠? 경찰이 선교사님을 연행해 가지 않고 일이 잘 해결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한참 후에 선교사님이 돌아오셨다. 누군가가 이번 콘서트를 방해하기 위해 경찰에 신고했고, 관계자인 선교사님이 연행되어 갈 뻔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콘서트 현장 VIP석에 대학교 총장님 사모님이 앉아계셨는데, 선교사님과 친분이 있어서 경찰을 설득해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음악과 영어를 가르치며 학생들과의 친분과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단계인 선교사님의 신분이 우리 콘서트를 통해 노출된다면 큰 위험에 빠지실 수 있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나님!’ 속으로 감사 기도를 올려드리며 콘서트를 무사히 성황리에 마쳤다. 콘서트가 끝나고 며칠 뒤 경찰이 선교사님 센터에 들이닥쳐 마구잡이로 수색하고 들쑤셔놓고 나갔지만, 다행히 기독교와 선교에 관한 건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 콘서트를 통해 학교 간부들과 학생들이 선교사님에 대해 더 마음 문을 열어 대학교 안에서 공식적으로 음악과 영어를 가르칠 수 있게 허락했다고 한다.

선교사님과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는 나는 아트 코리아 멤버들을 먼저 태국으로 떠나보내고 며칠 더 머물렀다. 총장님 사모님과 및 간부들과 식사와 미팅을 하며 추후의 공연 계획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L 국가는 TV 채널도 몇 개 없는 데다 태국 방송을 주로 송신하기 때문에 자국 문화와 가수가 특별히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크리스천 문화가 L 국의 주류 문화로 자리잡히면 이보다 좋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뛰고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래서 팀 전체가 자주 오기는 어렵지만 나 혼자라도 와서 틈틈이 공연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태국으로 떠나야 하는 날이 왔다. 현지 친구들이 만들어준 달콤한 음료를 센터 2층에서 마시며 짐을 싸고 있는데,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음료수에 개미 떼가 어마어마하게 몰려들었다. 깜짝 놀라서 음료를 들고 1층 부엌으로 뛰어 내려가 컵을 싱크대에 담그기 바로 직전, 부엌 바닥에 고여있는 물에 미끄러져 단단한 타일 바닥에 제대로 꽈당 넘어졌다.

G-Concert 부상

무릎과 팔꿈치, 어깨에 타박상으로 시퍼렇게 멍들고 아파서 일어나지 못했다. 조금 쉬다가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져 부축을 받아 절뚝거리며 겨우 비행기에 올랐다. 태국 공항에 내려서는 준비된 휠체어가 없어 짐을 싣는 카트에 실려 겨우 숙소까지 갔다.

다음날 태국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고 진통제, 진통밴드와 압박붕대를 처방받았다. 다음날 바로 공연이 있는데,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상태로 어떻게 공연을 하나 걱정되어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춤추고 움직이며 연주해야 되는데, 이 상태로 어떻게 하나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 속히 치유해 주셔서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태국에서의 2주 일정 중 첫 사역 날이 됐다. 통증이 여전히 심해서 약을 먹고 부축을 받아 사역지로 이동했다. 내 순서가 됐을 때 무대로 기어 올라가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빠르고 경쾌한 곡보다는 2집 수록곡인 ‘주 없이 살 수 없네 Can’t live a day’를 선곡해 연주하기로 했다. 전주가 나오는데 주님이 주시는 감동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나 홀로 있어도
내 아픈 상처 감싸줄 사람 하나 없어도 살 수 있어
난 꿈이 없어도
저 아름다운 수많은 별들 만질 수 없어도 살 수 있어
세상 소중한 모든 것 나 가질 수 있어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 주님의 소망이 없이는
난 하루도 살 수 없네
주님의 사랑의 팔로 날 안아주지 않는다면
단 한 순간도 못 사네
난 주 없이 살 수 없네’

“하나님, 제가 이렇게 조금 다쳐도 이렇게 아프고 불편한데요, 주 없이는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이 정도로만 다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떠나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내 인생이 주 없이는 살 수 없는 인생이어서 감사합니다.”

연주 내내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진정한 감사 찬양을 올려드렸다. 나뿐만 아니라 아픈 몸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모든 사람이 감동하여 눈물 흘리며 찬양을 듣는 감사한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