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8

2018년 8월 13일(월) 16일 차 : 사하군~렐레이고스 38km (누적 459km)
오늘 목적지는 렐레이고스이다. 어제 편히 자서 새벽4시에 일어나는 것이 수월하다. 캐빈도 같이 일어나 준비하여 5시에 출발한다. 그러나 노년 신사를 쫓아가기는 역부족이었다.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혼자서 랜턴에 의지하여 걷지만 차도 옆을 가기에 수월하다. 이제 홀로 걷는 것이 익숙해졌다. 초반 일주일 정도는 같이 출발하는 한국인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하루 반의 거리를 먼저 왔기에 한인들을 만나지 못했다. 홀로 걸으며 찬양 듣고, 성경 듣고, 묵상하고, 오늘 듣는 성경네비게이션으로 1독을 마쳤다. 2독을 하는 것이 목표인데 가능할 거 같기도 하다.

계획은 10K를 걸으면 마을이 나와서 아침 식사를 하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7시에 여는 카페가 없었다. 보통은 여는데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지 없다. 8K를 더 걸어야 마을이 나온다. 공복으로 18K를 걸으니 너무 힘들다.

가는 도중에 차도 위로 수백 마리의 양들이 지나간다. 사람이 서 있는데도 그냥 지나간다. 겨우 걸어서 엘 부르고에 도착한다. 마을 입구에 있은 카페를 찾아서 갔는데 카페 입구에 한글로 된 간판이 있다. “신라면과 햇반 팔아요.” 아침만 아니었으면 먹었을 것이다. 아쉽다.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 어제 산 빵과 함께 맛있게 먹고 이제부터 또 하나의 고비가 있다. 3일 전에 마을과 마을 사이가 17K였던 곳이 있었다.

이제는 두 번째로 긴 마을과 마을 사이가 13K를 걸어야 한다. 마음을 잡고 걷기 시작한다. 2시간 반이면 갈 거 같다. 그런데 며칠 같이 걷고 머물던 독일 부자지간이 자기는 한 마을 더 갈 거라고 한다.

6K를 더 걸어가야 한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렐레이고스를 가도 12시 정도 될 거 같다. 어제도 12시에 마쳤는데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도 가기로 결정했다. 독일 부자만 안 만났어도 랠레이고스에 머무는 건데, 그 유혹에 넘어갔다. 그것이 얼마나 후회스러운 일이었는지 그 당시에는 몰랐다.

13K를 하염없이 걸었다. 오늘 길은 차도 옆을 따라가는 것인데 가로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진다. 그래서 이른 아침을 제외하고는 가로수 그늘이 좀 있어서 수월한 편이다. 중간에 정자가 하나 있어서 30분을 쉬었다. 그늘에만 있어도 너무 좋다.

드디어 렐레이고스에 도착했다. 정말 12시가 조금 넘었다. 그래서 ‘1시간 반만 더 가면 내일 대도시 레온까지 19K밖에 안 되니 좋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다음 마을인 만시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 1시간 반이 사람을 잡았다. 배낭을 메고 38K를 걷는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1시간 반 만에 올 줄 알았던 길을 2시간 반이나 걸렸다. 겨우 오후 2시에 도착했다. 무려 9시간 걸렸다. 내가 왜 욕심을 내었을까? 그냥 내일 25K를 걸어도 되었을 텐데, 후회막심하다.

만시야에 도착해서 숙소를 정한다. 괜찮아 보이는 숙소에 들어가니 굉장히 유쾌한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맞이해 준다. 숙소 입구에는 한국인들이 꾸며 놓은 게시판이 있다. 한국 돈, 열쇠고리, 사진, 카드 등등. 나도 전통 열쇠고리를 드렸다.

숙소에 한국인의 발자취

도착 후에 숙소 앞의 온도판이 36도를 가리킨다. ‘정말 내가 죽으려고 발악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1시 전에는 걷는 것을 끝내야겠다고 다짐했다.

3일째 같은 숙소에 머무는 대만 청년이 거의 기진맥진해서 들어온다. 나와 똑같이 38K를 걸은 것이다. 그 청년은 Wei long Fan이라고 한다. 발에 물집이 잡혀 아파하고 있어서 바늘을 가지고 물집 치료를 해주었다. 그리고 저녁을 같이 해 먹자고 하며 같이 장을 보고 밥에 삼겹살을 먹으려 이것저것 샀다.

냄비 밥을 하고 삼겹살을 굽고 샐러드를 만들어 저녁을 먹는데 대만 청년도 잘 먹는다. 오늘도 냄비 밥은 성공했다. 이제 내일이면 대도시 레온에 간다. 이번에는 꼭 하루를 쉬련다. 마음이 또 바뀔 수 있을 거 같아서 숙소 예약을 미리 했다.
오늘도 부엔 까미노~~~

2018년 8월 14일(화) 17일 차 : 렐레이고스 ~ 레온 19km (누적 478km)
오늘 새벽에 눈을 뜨는데 어제 무리를 했는지 허리가 너무 아프다. 그리고 어제 먹은 삼겹살이 잘못되었는지 새벽에 화장실을 몇 번 갔다. 잠도 설치다 늦게 일어났다.

6시 30분에 일어나 천천히 준비를 한다. 아침은 알베르게에서 주는 간단한 커피와 빵을 먹고 도네이션을 한다. 처음으로 여유를 갖고 준비하며 허리통증으로 인해 허리에 멘소래담을 듬뿍 바르고 준비를 한다.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고맙다고 전통 열쇠고리를 드리고 사진도 찍는다. 너무 고맙다며 밖에까지 나와 인사를 한다.

어제 도착했을 때 밖의 기온이 분명 36도였는데 출발할 때 온도는 무려 10도이다. 헐~~ 무슨 일교차가 26도나 되는지 너무 신기했다. 나중에 민박집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해발 800m의 고지대라서 그렇다고 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산티아고 순례 길에서 만나는 마지막 대도시 레온이다. 19K만 가면 된다. 그리고 2일을 머무르기 위해 한인 민박에 예약을 해놓았다. 오늘 저녁은 한식으로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이미 천국이다.

출발해서 늘 가족들과 통화를 하는데, 도시에 가까워지니 인터넷 환경도 좋아져서 영상통화를 했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아픈 것도 사라지는 듯하다.

허리통증으로 아주 천천히 걷는다. 보통 배낭은 어깨가 아니라 허리밸트로 70%를 멘다고 하여 벨트를 단단히 고정하여 메는데, 오늘은 허리통증으로 벨트를 매지 않고 오로지 어깨로 메며 걸어야 한다. 소염진통제를 먹으니 통증은 약간 사라진 듯하다. 그래서 뉴질랜드의 피지오 쌤에게 카톡을 보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언도 들었다(죠슈아 쌤, 고마워요.).

5K 가다가 쉼터에서 쉬고 또 5K 가다가 쉼터에서 쉰다. 천천히 가도 금방 도착할 거리라서 여유가 있다. 걷는데 임마누엘교회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목회를 잘 해왔는지, 나 때문에 상처나 시험 든 성도는 없는지, 돌아가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여러 생각이 들어 성도들에게 영상 인사말을 남겼다.

길에 서 있는 십자가

레온과 가까워지면서 도시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차도 많고 상점도 많다. 드디어 레온에 도착한다. 도시이기에 시내로 들어가려면 한참이다. KFC도 보이고, 오랜만에 도시의 모습에 마음이 남다르다. 민박집까지 한참을 걸었다. 19K를 보통이면 3시간 3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6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민박집이 정말 깨끗하고 주인아주머니도 너무나 자상하시다. 호텔보다 훨씬 좋다. 스페인 남편을 만나 35년을 사셨다고 하신다. 어제 남은 삼겹살로 볶음밥을 쌌는데 전자레인지에 데워주시면서 김치를 주신다. 얼마 만에 먹는 김치인지 감동이었다.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쉰다. 레온 시내 구경은 내일 오전에 해도 충분하다고 하시니. 오랜만에 갖는 쉼이다. 저녁은 상상 이상이다. 된장찌개에 제육볶음, 깻잎무침, 멸치볶음 2가지, 김, 오이무침, 김치. 완전 대박이다. 밥 2그릇을 뚝딱하고 완전히 호강하는 날이다. 침대에 누우니 하늘이 다 보이는 방이다. 오늘은 좋은 꿈을 꾸겠지. 오늘도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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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두
장신대 신대원 및 동대학원 졸업, 2007년에 뉴질랜드 이민 후 오클랜드 순복음교회, 에덴장로교회 부목사로 섬겼고, 2012년부터 임마누엘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2018년에 안식월을 맞이하여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길에서 누리게 된 은혜를 독자와 나누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