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로 시간 살기

새벽! 짙은 어둠이 아직 남아있는 아침에는 눈을 떠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렇게 이른 시간에 하루를 기도로 시작한다. 불을 밝히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 그제야 동이 터 온다. 웨슬리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했다.

“새벽마다 뛰어 다녀도 하나님께 헌신하는 기쁨에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었다”

알람 시계는 비싸서 흔히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침에 잠을 깨워주는 일꾼을 고용하기도 했던 18세기였다. 하지만, 정확하게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싶었던 웨슬리와 홀리 클럽의 친구들은 뜻밖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돈을 함께 모아서 알람 시계를 임대하는 방법이었다. 새벽 알람 소리에 한 사람이 잠을 깨면, 그가 옥스퍼드 교정을 뛰어다니며 잠든 친구들을 깨웠다. 여러 숙소로 구분된 각 대학의 기숙사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런 방법으로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에도 정확하게 정해진 시간에 일어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열 명 미만의 구성원들이 함께 하였다. 그들 대부분은 자기 관리가 필요한 대학원생들 또는 대학교수들이었고, 하나님께 헌신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새벽마다 뛰어다녀도 하나님께 헌신하는 기쁨에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고백에는 모두의 조언이 따라서 왔다. 형태는 다르지만 21세기 SNS의 댓글처럼 서로에게 응답하였다”

그런 홀리 클럽 구성원들이 함께 시작하는 아침은 특별했다. 하루 일을 암호로 기록한 일기장을 각자 가지고 와서 모두의 앞에서 읽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얼마나 큰 유혹이 있었는지, 얼마나 큰 은혜가 있었는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일기를 읽고 고백하였다. 그만큼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투명하고 정직하게 고백하려고 노력하였다. 한 사람의 고백에는 모두의 조언이 따라서 왔다. 형태는 다르지만 21세기 SNS의 댓글처럼 서로에게 응답하였다. 그렇게 고백하고 응답하는 시간은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유혹을 이기는 시간이었고,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이었다. 홀리 클럽에서 일기를 기록하는 방법과 읽는 방법은 시기마다 다르고, 주변 환경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졌다. 때로는 매일 밤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며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시간은 카이로스
웨슬리의 시간은 ‘카이로스’였다. 분명했다. 웨슬리의 지도력을 중심으로 모인 홀리 클럽도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았다. 그들의 경건 생활이 꼼꼼했던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그 증거가 “시간을 아껴라” 하는 설교에 자세하게 남아 있다. 설교만 아니었다. 시간에 관한 그의 짧은 논문에도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카이로스 시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완전한 사랑 그 자체였다.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였던 그에게 카이로스 시간은 한 시간마다 새롭게 만나는 기적이었다. 한 시간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그 결과를 일기에 암호로 기록했던 웨슬리에게 “한 시간”은 그래서 온 맘 다해 목숨 걸고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한 시간만 살고 죽어도 아무 후회 없을 만큼 진심으로 살았다”

한 시간만 살고 죽어도 아무 후회 없을 만큼 진심으로 살았다. ‘카이로스’는 그리스어로 ‘아주 특별한 시간’이라는 뜻이다. 웨슬리는 ‘카이로스’라는 전문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헬라어 원문으로 신약을 읽고, 대학에서는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존경받는 종신교수였다.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의 그리스 철학도 전공과목으로 가르쳤다. 그런 그에게 성경에 그리스어로 기록된 카이로스는 당연한 시간 개념이었다. 그렇게 학문과 이성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깊은 믿음을 변증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의 삶은 한 시간 한 시간이 완전한 카이로스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 하루 생활에 감사하는 이유도 카이로스였다. 그가 강조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자비와 은혜를 따라가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고백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자비와 은혜는 ‘완전한 카이로스 사랑’을 설명하는 열쇠이다. 절대 주권으로 강력하게 임하는 하나님의 섭리, 십자가를 지시고 죄인을 용서하는 자비, 모든 순간에 함께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았다. 치밀하게 감사하는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서 웨슬리의 하루가 되었다. 숨 막힐 정도로 치열했던 그의 시간 관리 방법의 열정이 가능했던 이유이다. 카이로스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아주 특별한 카이로스 사랑에 한 시간마다 새롭게 응답하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간절한 한 시간
아직 어두운 새벽에 잠을 깨면 가장 먼저 자신을 점검하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 자고 일어났는지? 믿음으로 눈을 뜨고 있는지? 일어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였는지? 혹시, 자신의 의지와 힘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난밤 모든 유혹을 이기고 약속한 시각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지? 핑계를 찾고 “좀 더 자자”하며 잠자리에 누워있는 것은 아닌지? 찬찬히 돌아보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정장을 갖추고 옷깃을 단정하게 여미었다. 옷을 반듯하게 차려 입는 것은 죄와 사단의 유혹에 지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겠다는 뜻이었다. 자리에 누워 미적미적하거나 중요한 일을 지난밤에 처리하느라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좀 더 자는 일은 권장하지 않았다. 웨슬리는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십자가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에 비유하였다. 크리스천으로서 날마다 지키면 좋은 자기 관리의 방법으로 권하였다.

“캄캄한 새벽에 일찍 일어나 정장을 하고 무릎 꿇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숫자“4”를 말끔한 글자체로 조심스럽게 일기장에 적었다”

웨슬리는 캄캄한 새벽에 일찍 일어나 정장을 하고 무릎 꿇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숫자 “4”를 말끔한 글자체로 조심스럽게 일기장에 적었다. 지난 10년 동안 기도한 결과로 이어진 진지한 경건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말끔해지는 그의 글자체에도 나타난다. 대학 강단을 떠나 선교사로 지망한 것도, 가난한 과부와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감옥을 찾아가 성만찬을 베푸는 것도 경건 생활을 훈련하는 과정에 이루어졌다. 새벽 4시를 뜻하는 숫자 “4”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 그런 믿음과 정성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도움을 구하는 기도, 자기를 부인하고 지는 십자가, 죄와 사단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삶을 꾸준히 계속할 수 있었다.

“50년 동안 매일 자신의 잠을 점검하면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려고 기도하였다”

웨슬리의 평소 습관은 암호로 쓴 일기장에 가장 잘 나타나 있지만, 설교와 논문에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전문 지식을 자랑하려고 성경 그리스어(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을 인용하는 일을 극도로 자제하였다. 설교에 그 습관이 더욱 특별하게 나타났다.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을 반드시 찾아서 일상생활의 언어로 소개하는 습관이다. “시간을 아끼라” 하는 설교에는 그런 면에서 웨슬리의 평소 습관이 그대로 드러낸다. 설교의 처음부터 끝까지 “잠”에 관한 하나의 예화로 시작해서 “잠”에 관한 예화로 마무리했다.

잠을 잘 자야 카이로스 사랑에 온전히 응답할 수 있다는 그의 설교가 뜬금없고 황당하지만, 웨슬리는 50년 동안 매일 자신의 잠을 점검하면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려고 기도하였다. 웨슬리에게 카이로스는 그렇게 간절하게 한 시간마다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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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감리교 신학대학원 졸업. 뉴질랜드 트리니티 대학에서 리더십에 관한 교사와 연구 학생으로 수학했으며, 현재 뉴질랜드 감리교회가운데 한 교회에서 영어 설교 목사와 한인 제자들교회 담임을 하고 있다. 존 웨슬리 암호 일기 연구해 “방법쟁이” 책내고 자기만의 암호 일기를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