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대로 실천하는 원리.2

<사진설명> 웨슬리 시대에는 시속 16km로 달리는 이런 자동차도 발명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발로 걷거나 말을 타고 이동해야 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Car#/media/File:1885Benz.jpg

웨슬리 암호 일기의 비밀은 뜻밖에 쉽게 풀린다. 평생 4만 번의 설교를 소화하고, 걸어서 또는 말을 타고 지구 아홉 바퀴 또는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현장 방문에 사용했던 웨슬리의 진심이 그가 기록한 일기 편지 설교 논문에 반복해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하나로 모으면, 하나의 진실을 만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To do as much good as I can

[<런던 잡지> 1760년 12월호 651-3쪽] 대중에게 인기있던 각종 이야기를 수집해서 소개한 <런던 잡지>에 웨슬리가 직접 기고한 글이다.

<런던잡지> 5월호 표지(public domain)
https://en.wikipedia.org/wiki/The_London_Magazine#/media/File:The_LONDON_MAGAZINE_-May_1760-_cover.jpg

사람들이 궁금해 하던 이야기를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자세하게 설명해서 풀어 놓았다. 자기 관리에 관심을 갖는 만큼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다. 자기 관리도 타인을 배려하고 염려하려는 노력의 일부였다.
매 주일 훈련하던 덕목이 자기 희생과 십자가 지는 삶인 것을 보아도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삶보다는 남을 위해서 사는 삶이 웨슬리에게는 더 중요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힘을 다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싶어 했다. 그 사랑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믿었다. 아는 대로 실천하는 원리는 생각과 계획을 생활에 실천하는 원리였다.

남을 배려하는 방법
1747년이었다. 웨슬리 인생의 역작은 뜻밖에 의료 분야에서 나왔다. 제목은 <원시 의학>이라고 정했다. 글을 모르는 원시인도 쉽게 이해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민간 요법을 모아서 소개한 책이었다. 내용도 결과도 좋았다. 100년 이상 꾸준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목사로 헌신하고, 그리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과 토론과 고전어를 가르치는 교수로 활동하던 결과로서는 의외였다.

또한, 전기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21세기 현대인에게 전기는 없어서는 안될 자원이지만, 당시에 전기는 대중에게 알려지지도 않았고 가장 발달된 과학 기술은 휘발유도 아니고 증기 기관이었던 시대였다. 벤자민 플랭클린도 연을 날려서 번개가 전기라는 것을 간신히 증명해 내던 때였다. 웨슬리 주변에서는 “왜?(목사가 쓸데 없이) 전기를 연구하지?” 하면서 수근수근 하였다.

그러던 때에, <런던 잡지>에 기고하였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도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한 치료법에 관심을 가졌던 까닭, 바쁜 시간을 쪼개어 전기를 연구하는 까닭, 과학 경제 사회 정치를 무시하지 않는 까닭, 신학 의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저술하는 까닭, 영어 라틴어 불어 히브리어 헬라어 문법책을 만들고 고전어로 기록된 책을 쉬운 영어로 번역하는 까닭을 설명하였다.

남 좋은 일을 하려는 치열한 노력이었다. 흔히, 웨슬리에게는 신학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학의 핵심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쉽게 풀어 놓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이다. 웨슬리의 설교를 조금만 분석해도 알 수 있다. 얼기설기 꼬여서 알 수 없는 신학을 쉽게 풀어 놓았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풀어서 누구나 일상생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설명하였다. 어려워야 무엇이라도 있어 보이는 세상이었다.

옥스퍼드 상아탑에서 누구보다도 존경받는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진흙탕물 현장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평생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헌신했다. 그의 삶을 좁은 신학의 테두리에 가두어 놓을 수는 없다.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는 삶   

아는 대로 실천하는 원리는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방법이었다. 사회의 약자를 참여시키고 가난한 사람을 소외시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한 가지 예로, 웨슬리가 리더를 훈련시키는 방법은 독특했다. 수 백 킬로미터를 발로 걷고 말을 타고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자동차도 없었고 이동 수단이 발달하지 않고 도로도 놓이지 않았던 시대였다.

한번은 웨슬리가 리더 후보자를 자신의 순회 설교에 동행시켰다. 자기 이름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문맹이었던 후보였다. 시골 마을 끝까지 함께 여행한 뒤에 그를 리더로 세운 일화는 유명하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면서도 고집을 부렸다. 리더를 세우는 일로 동생 찰스 웨슬리와 심각하게 다투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식도 없는 천한 죄인을 어떻게 리더로 세울 수 있느냐는 반대가 가장 컸다.

나이 82세 1월 1일에 “올해가 생애 최고의 해가 되기를” 꿈꾸며 결심한 웨슬리는 곧바로 몸으로 실천하였다.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결심한 꿈을 현실에 실현하는 방법이었다. 책상에만 앉아서 탁상 공론하였다면 절대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이루어 냈다. 1월 4일 일기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번에는 “옷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올해는 음식만 아니라 옷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사정으로 나흘 동안,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옷을 구하려고 도심을 걸어서 200 파운드를 모금하였다. 하지만 힘든 일이었다. 거의 모든 거리는 눈이 녹아서 질척거렸다. 발목까지 빠지는 진창도 자주 만났다. 거의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통 발이 젖은 채 다녀야 했다. 토요일 저녁까지(일주일)은/는 아주 잘 버텼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매 시간 점점 더 심하게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주일 새벽에) 화이트헤드 의사 선생님이 왕진을 오셨다.”(1785년 1월 4일-9일 일기에서)

그리고 그 다음날 월요일 아침부터 다시 온 도시 거리를 걸어서 모금을 시작하였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구걸(beg)”했다.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면 자신을 낮추어야 했다. 웨슬리는 무시당하고 쫓겨나고 야유를 견뎌야 했다. 목사이면서 옥스퍼드 대학 종신 전임교수로 존경받던 웨슬리였다.

아는 대로 실천하는 삶은 암호로 쓴 그의 일기에 담겨 전해져 왔다. 평생 기도하며 꿈꾸던 삶이었다. 죽을 만큼 치열하게 실천해서 증명한 남 좋은 일을 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