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에서 발견한 방법을 소개한 ‘방법쟁이’

새로 나온 책 <방법쟁이> . 이정환, 도서출판 푸른이, 2019.
암호일기가 있다. 대략 300년은 묵은 일기이다.“방법쟁이(Methodist)”라고 불리던 존 웨슬리가 암호로 쓴 일기이다. 존 웨슬리의 암호 일기는 숫자, 18세기 영어, 부호, 속기, 약어를 섞어서 만든 암호 일기이다. 그런데 암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법(method)이다. 그가 암호로 쓴 일기를 방법쟁이(Methodist)라고 불렀던 이유는 그 방법이 일기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방법’은 자기 정체성, 특히, 진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암호일기의 산실이 된 옥스퍼드 대학 앞에서 이정환 목사< 방법쟁이> 저자

동서양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났던 시대
존 웨슬리가 암호로 쓴 일기는 온 세계가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던 18세기의 기록이다. 조선에서는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이인좌의 반란으로 혼란스러웠지만 문예혁명 시대를 꽃피우던 시기였다. 같은 시대 지구 반대편에서는 옥스퍼드 대학의 종신 교수로서 홀리클럽을 지도하던 존 웨슬리가 암호로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때 자본주의 시대는 시작하고 있었고, 산업혁명으로 과학이 세상을 뒤바꾸고 있었다. 현대식 의회 민주주의를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역사 학자는 이데올로기 시대도 이때 시작하였다고 한다.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지 않고 인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크고 엄청난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던 시대이다.

‘방법쟁이’는 그 시대를 기록한 존 웨슬리의 암호 일기를 소개한다. 갈등과 혼란의 시대를 살면서 그가 꿈꾸었던 희망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 시대의 아픔을 치유했는지, 그가 사용한 방법은 무엇이었는지, 구한말 조선 청년들에게 미친 영향과 21세기 AI와 코딩 교육에서도 발견하는 뿌리 깊은 ‘방법’이다.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방법
존 웨슬리는 ‘완전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죄인이 용서받고 의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누구나‘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암호로 일기를 쓴 까닭은 간단하다. 하나님께서 최고의 선물로 주신‘카이로스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용하려고 했다.

쉽고 간단하고 빠르게 쓰다 보니 남들은 알아 볼 수 없는 암호가 되었다.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었던 그 때 그 삶을 따라가 보면, 저절로 암호가 풀리는 까닭이다.

기술과 산업혁명 속에서의 희망일기
‘방법’은 남녀노소 빈부신분의 벽을 깨뜨린 방법이다. 노예시장과 식민지는 그 시대 아픔의 상징이었다. 평균 기대 연령 36.6세는 기술과 산업혁명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청년들도 견디지 못하고 어린아이까지 공장에서 숨을 거두던 18세기였다. 온 세상이 아픔을 겪던 18세기에 ‘희망을 꿈꾸던 존 웨슬리의 암호일기’이다.

올바른 삶의 방향과 구원의 빛 제시
암호로 썼기 때문에 그 방법이 잊혀져 왔다. 경건한 사람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불태워 없앴다고 한다. 불구덩이 속에서 건져낸 5권의 암호일기에 옥스퍼드 대학 종신 교수로서 논리학과 헬라어와 철학을 가르치고 토론을 지도하던 존 웨슬리의 방법이 담겨있다. 목사로서 짙은 어둠 속에서 고통 받던 영국에 올바른 삶의 방향과 구원의 빛을 제시했던 존 웨슬리의 경건생활 방법이 담겨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시작된 ‘웨슬리의 암호’

누구나 최선을 다하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아픈 시간이었다. 아침이 밝았지만, 여전히 추웠다. 따뜻한 햇살이 비쳐 들지만, 교회 그림자는 냉정했다. 윌리엄 호가스의 <아침>은 그런 도시를 그려 놓았다.


윌리엄 호가스의 <아침>

지식의 발전과 과학이 세상을 바꾸고 있었지만, 그저 예전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주인 집에 함께 사는 ‘베티’의 삶이 그랬다. 부지런한‘몰리’도 바닥청소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가난한 삶이 바뀌지는 않았다. ‘굴뚝 청소 아이’가 소리치지만 더 큰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고, 거리를 지키는 보안관도 지루한 일상생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희망은 언제나 있었지만, 항상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다. 윌리엄 호가스의 <아침>은 그런 세상을 노래하고 있었다.

18세기 영국 옥스퍼드 대학
그 시대 크라이스트처치는 어땠을까? 18세기 영국 옥스퍼드 대학은 최고의 지성을 배출하는 학교였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전 세계 대학 순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옥스퍼드를 구성하는 대학의 이름이었다. 가장 화려하고 가장 유명하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도 그 이름을 빌려왔다.

<해리 포터>영화제작진은 재미있으면서도 웅장한 장면을 더하려고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을 일부러 찾아가서 촬영하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 시작이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이었다. 비밀의 문을 열면 앨리스를 만날 수 있다고 소개한다.

1096년부터 시작한 학문의 역사를 담고 있던 그곳에서부터‘웨슬리의 암호’가 시작되었다. 그곳 도서관에는 지금도 수천년 묵은 파피루스와 두루마리 문서부터 21세기 최첨단 컴퓨터 문서까지 철저한 보안 속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 대학도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18세기, 그 때는 ‘웨슬리의 암호’가 시작된 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류 역사 속에서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혁명이 시작되던 때였다. 현대식 민주주의, 자본주의, 산업혁명, 이데올로기의 시대,그 모두가 함께 시작되었다. 그 때였다. 왕정이 무너지면서 신분사회가 변화하고, 온 세상의 황금과 부가 한 곳에 모이면서 자본이 자본을 낳기 시작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세상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사람들은 혼란하고 당황하였다.

잠든 교회와 암호로 표현된 경건 생활 방법
교회는 잠들어 있었다. 일반 대중은 교회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세상은 다 알고 있는 그 명백한 사실을 교회만 모르고 있었다.

호가스의 그림 <잠자는 교인들>을 보면, 그 때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설교자도 교인도, 교회가 할 일을 잊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교인들은 잠들어 있고, 설교자는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을 읽고 있다. 말씀이 그렇게 선포되면 안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그려 놓았다. 방황하는 교회가 조롱의 대상이었던 시대였다.


윌리엄 호가스의 <잠자는 교인들>

크라이스트처치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은 크라이스트처치였지만, 암호일기를 개발한 존 웨슬리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대학이었다.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옥스퍼드 링컨 대학의 종신 교수로 임명 받아 크라이스트처치를 떠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던 이유가 있었다. 마음껏 경건 생활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부터였다. 존 웨슬리는 암호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웨슬리의 암호는 무엇을 감추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니었다. 가장 편리하고 쉽고 빠르게 사용하다 보니 저절로 남들은 알 수 없는‘암호’가 되었다. 일기를 쓰는 이유도 분명했다.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어서 ‘방법’을 찾다가 눈에 띈 방법이었다. 하루 생활을 기록하고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는 방법으로 ‘일기쓰기’가 좋았다. 종신 교수로 임명 받으면서 개인 연구실을 받게 된 것도 ‘암호로 일기 쓰는 방법’을 발전시키는 좋은 환경이 되었다. 자기 나름대로 자기만의 방법으로 마음껏 경건생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존 웨슬리보다 6년 뒤에 입학한 동생 찰스 웨슬리에게도 크라이스트처치는 어려운 대학이었다. 혼자서 견디지 못하고 도움을 청해야 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한 대학이지만, 자기 자신을 지키기에도 어려웠고 일상생활에도 혼란이 생겼다. 개인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세상의 분위기가 너무나 강력하였다. 세상의 빠른 변화와 혼란에 대학도 고스란히 휩쓸렸다. 세상의 풍조가 그랬다. 진짜 삶을 꿈꾸면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존 웨슬리의 감옥 방문
글을 시작하면서 ‘감옥’을 반드시 소개해야 한다. 18세기 감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처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1753년 런던‘마샬시 감옥’을 방문한 존 웨슬리는 그곳에서 목격한 일들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 그런 감옥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는 말로 대신하였다.

적응되지 않는 아픔이었고, 사회가 함께 당하는 재난이었다. 가난한 사람이 감옥에 갇히는 현실은 불평등한 사회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냈다.

1730년 ‘캐슬 감옥’에서 시작한 웨슬리의 감옥 방문은 “기독교는 본래 사회적 종교이다. 사회와 분리되면 죽고 말 것이다.”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 설교로 선포되었다. 개인 암호 일기에서 시작한 개인 경건은 사회성화로 열매를 맺었다. “개인 경건으로 돌아서면 기독교를 망하게 할 것이다.” 하는 웨슬리의 단호한 외침은 탐욕으로 방황하던 18세기를‘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을 꿈꾸는 희망으로 돌려세웠다.

웨슬리의 암호 일기는 비밀 일기가 아니었다. 동생 찰스의 요청으로 완전히 공개되었고, 홀리클럽의 공식 경건 훈련 방법으로 채택되었다. 개인의 신앙 생활을 지키는 방법이 홀리클럽의 기도를 불러일으키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회성화로 삶을 변화시켰다. 감옥에서 진행한 성만찬 예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기를 소망하던 청년들의 예배였다. 그들의 믿음과 희망, 그리고 그 ‘방법’이 암호에 묻혀서 지난 295년 동안 잊혀져 왔다. 잊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지난 수 백 년 인류 역사 속에서 그 영향력을 잃지 않고 21세기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은 기적이다.

사진 출처: 윌리엄 호가스의 <아침> 컬러 https://en.wikipedia.org/wiki/Four_Times_of_the_Day#/media/File:Hogarth’s_Morning.jpg 윌리엄 호가스의 <잠자는 교인들>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396793 수정된 다음 그림 흑백(여기에는 설교자가 사용하는 마태복음 11장 말씀이 선명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