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피어에서도 한인교회와 선원 선교 감당

로토루아에서 210킬로미터 남동쪽 혹스베이의 항구도시 네이피어는 헤이스팅스 헤브룩노스와 밀접하고 기후가 좋아 과수원이 많고 특히 포도 재배에 알맞은 날씨여서 많은 포도원에서 좋은 제품의 포도주를 만들고 있는 지역이다.

네이피어는1931년 뉴질랜드에서 가장 피해가 켰던 지진의 영향으로 시내 건물이 모두 폐허가 된 것을 아트 데코(art Deco) 건축 양식으로 도시 전체를 재건한 것이 유명해져서 많은 유럽 사람들이 관광을 오는 도시이다.

개인적으론 처음 이민 와서 정착한 곳이 네이피어와 가까이에 있는 헤이스팅스였다. 아내와 같이 큰 꿈을 안고 도착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데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을 겪었던 곳이기도 하다. 뉴질랜드에 이민 올 때 스폰서가 되어주었던 친구와 이곳에 와서 사귀었던 직장 동료와 이웃들이 있는 곳이기에 고향 같은 기억으로 늘 잊지 않고 있던 곳이었다.

한인교회 통해 신앙공동체를 든든히 세워나가
1993년 당시 네이피어 지역엔 이민 온 한인 가정이 4가정 있었다. 선원이 입항하는 항구가 있고 한인 가정이 늘어나 예배의 처소가 필요한 곳이기에 사역의 장을 넓히는 것을 놓고 기도를 하였다. 그 당시 타우포에 한국기업에서 시설 투자된 소가죽 원피 가공 공장이 있었는데 로토루아 갈릴리교회의 집사로 있던 현지 원피공장 책임자가 공장을 네이피어로 이전한다고 말하였다.

한국서 파견된 2명의 직원도 타우랑가까지 주일예배에 참석하던 교인이었으니 원피공장이 네이피어로 이전함으로 인해 교회를 개척하는 것과 예배의 처소를 준비하는 것도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원피공장 사무실에서 주일 예배를 시작하였다. 소가죽을 1차 가공하는 현장 사무실이다 보니 주7일 가동하는 공장의 기계 소음과 강한 가죽가공 화학 약품 냄새 그리고 현지 원주민 노동자의 음악 소리 등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깨끗하고 정숙한 분위기의 교회 예배당 장소와 비교가 안 되었지만 성령님의 능력이 그 많은 악조건보다 더 뜨거웠고 강하셨음을 몇 안 되는 성도들 모두가 체험하는 예배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피리마이 지역의 상가 건물을 저렴하게 임대하여 1993년 12월 5일에 로토루아 갈릴리교회 이름으로 네이피어에서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모든 활동엔 금전적 지원이 필요한데 그 대책으로 건물의 한쪽을 막아서 중고품 옷을 판매하는 가게로 개조하여 주중엔 중고 옷가게를 시작하였다.

간신히 렌트비를 충당하며 지내던 중 두 번의 도둑까지 들어서 헌 옷들을 잃어버리기도 하였다. 공짜로 지원받은 옷가지들이니 원가가 축난 것도 아니고 그 옷이 필요해서 들고 간 것으로 생각하며 교인들과 같이 우리보다 더 절박한 상황의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 한 적도 있었다.

교회임대 건물의 다른 한 부분을 조금 더 수리하여 우리 부부가 잠자며 밥해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곳에 약 1년을 기거하면서 주일엔 예배후 유학생들과 교인들이 같이 식사 교제를 하기도 하고 주중엔 입항하는 선박 스케줄에 맞추어 배에 방문하였다.

네이피어에서의 교회 개척과 선교 활동에도 몇 안 되는 집사들과 성도들의 헌신으로 경제 사정과는 관계없이 서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나누어주는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로토루아 교회 일과 타우랑가 선박 방문 때문에 교회를 비울 때는 중고 옷가게를 만삭이 다된 윤 집사가 돌보아 주었고 주일 예배는 서리집사들이 감당함에도 믿음으로 결속된 공동체의 뜨거움이 넘쳐나는 교회였다.

웰링턴에서 만나 매주 금요일마다 철야기도를 같이하며 믿음 생활했던 두 자매가 있었는데 결혼 후 세 아기의 엄마로 1995년도에 네이피어에 이사를 왔다. 남편이 내과 전문 의사가 되었으며 네이피어 병원에 1년간 계약으로 일하는 조건이었다.

아내와 나는 무척이나 반가웠으며 결혼 전부터 주님 일하는 것과 선교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만큼 공통점이 많이 있었다. 고경애(지금은 목사) 자매와 남편 스티븐 부부를 중심으로 유학생들과 영어 성경 공부를 시작하고 교인들의 믿음 생활에 활력을 더 할 수 있었다.

그 후 스티븐과 고경애 부부는 방글라데시의 나병 환자 병원으로 치료사역을 위해 떠났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네이피어에 이민 왔던 가족들도 처음 정착 할 때의 상황과 다르게 직장을 찾아 다른 도시로 이주를 하는 가정이 늘게 되었다.

처음왔던 한인들이 직장 찾아 떠나 예배장소도 철수해
네이피어 항구의 선원선교 일도 선박이 많이 들어 오는 게 아니어서 네이피어에 머물면서 전임으로 사역하기보다 좀 더 효과적인 사역 장소를 위해 기도 하던 중 1996년 11월 24일 예배를 마지막으로 네이피어 갈릴리교회 예배장소는 철수를 하였다. 그 후에도 1달에 한 번씩 있는 로토루아의 연합예배에 남아있던 성도들은 네이피어에서 참석하였다.

“주님 제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훗날에 주님이 보내시는 사역자가 이곳 네이피어에서 한국말로 다시 예배드리고 또 누군가 입항하는 선원들과 기도하며 예배 드리는 날을 계획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라고 기도하였다. 네이피어를 떠나면서도 또 다른 비전과 더불어 힘주시는 주님의 능력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