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이겨내는 음악

지루했던 겨울이 점차 끝나가는 요즈음은 계절의 변환기입니다. 8월도 중순이 넘어가고 있으니 곧 봄소식이 올 것입니다. 겨울의 권태를 삭이고 다가오는 봄을 맞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좋은 음악 듣기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매주 화요일 저녁에는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 데본포트의 정이정(淨耳亭)에 모여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정담을 나눈 뒤 음악을 듣습니다.

이날은 특히 서울에서 우리 부부를 만나러 온 귀한 친구 부부도 참석하였고, 크리스천라이프 지에 난 내 글을 보고 멀리 힐스보로우에서부터 오신 새로운 부부도 있었고, 교회 일로 한동안 참석 못하던 선교사님도 와서 더욱 풍성한 화요음악회였습니다.
이날부터 몇 차례에 걸쳐 슈만의 음악을 듣기로 했습니다. 다음은 이날 진행된 내용입니다.

로베르트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삶 자체도 낭만주의를 표방했던 슈만은 음악으로도 낭만주의에 충실했습니다. 특히 피아노와 가곡 분야에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지만 4개의 교향곡, 그리고 a 단조의 피아노 협주곡과 첼로 협주곡도 모두가 걸작들입니다.

청소년기의 슈만은 문학에 심취했습니다. 그렇기에 김나지움을 졸업한 뒤 여행을 떠났다가 낭만파 시인 하이네와 만나 깊은 교유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작정하고 당대 최고의 피아노 교수였던 프리드리히 비크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 연습에 열중하다 그만 손가락을 다쳐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은사인 비크 교수의 딸이자 당시 천재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클라라와 사랑에 빠집니다. 클라라는 그때 불과 17살이었습니다.

앞날이 불투명한 슈만에게 딸을 주려 하지 않는 은사를 상대로 슈만은 소송을 제기하고 4년 만에 이겨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기쁨에 넘친 그는 이 해에‘시인의 사랑’‘여인의 사랑과 생애’등 주옥같은 가곡들을 작곡했고 다음 해 1841년에는 교향곡 1번‘봄’을 썼습니다.

교향곡 1번 봄(Spring) op. 38
행복한 사랑이 영감을 부어 넣었는지 슈만은 이 교향곡을 1841년 1월 23일부터 26일까지 불과 4일 만에 작곡했습니다. 클라라와의 사랑의 결실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슈만의 약동하는 기운이 이 곡에 흘러넘칩니다.

슈만은 처음에 각 악장에 ‘봄의 시작’, ‘황혼’, ‘즐거운 놀이’, ‘무르익은 봄’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지만 나중엔 제목을 없애고 고전적인 교향곡의 형식으로 돌아갔습니다.

초연은 슈만의 절친한 친구 멘델스존의 지휘로 이루어졌고 공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모두 4악장으로 되어있는 이 교향곡을 감상하면서 과연 슈만이 그려내려고 한‘봄’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우리 나름의 상상의 날개를 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Riccardo Muti가 지휘하는 Philharmonia Orchestra의 연주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31살의 슈만이 행복한 결혼의 결실로 작곡한 교향곡 ‘봄’을 들으면서 여러분은 혹시 이제는 그 옛날 지나가 버린 내 청춘의 봄을 그리워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오도시(悟道詩)

문득 어느 비구니가 썼다는 오도시(悟道詩)가 생각나 같이 감상했습니다.

終日尋春不見春(종일심춘불견춘)
종일토록 찾았어도 봄은 찾지 못했네

芒鞋踏把嶺頭雲(망혜답파영두운)
짚신 신고 산머리 구름까지 가 보았지

歸來偶把梅花臭(귀래우파매화취)
돌아오다 우연히 맡은 매화 향기

春在枝上已十分(춘재지상이십분)
봄은 벌써 가지 끝에 와 있었네

봄이란 어쩌면 봄날 피어났다 사라지는 아지랑이처럼 허망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 나이 든 사람들이 찾아야 할 봄은 이미 우리에게 다가와 어느새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봄이 아닐까 합니다.

공연히 지나간 세월 아쉬워하며 한탄치 말고 春在胸中已十分(춘재흉중이십분-봄은 벌써 가슴 속에 와 있었네)이라고 넉넉히 읊으면 어떨까요.

이럴 때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이사야 40장 6-8절입니다.

  1.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2.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3.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피아노 협주곡 A 단조 op. 54
이 곡 역시 클라라와 결혼한 뒤 기쁨이 계속되는 1841년에 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환상곡 풍의 단악장으로 작곡되었으나 나중에 두 악장이 추가되어 가장 아름다운 낭만주의의 피아노 협주곡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곡의 특징은 다른 협주곡들과 달리 독주자들의 기량을 자랑하기 위한 요소를 배제하고 피아노와 관현악이 대등한 위치에서 마치 대화를 주고받듯이 전개되는 데 있습니다.

1847년 1월에 있었던 공개 초연에서 피아노는 클라라가 맡고 지휘는 작곡자인 슈만 자신이 맡았습니다.

1악장 열정적인 서주를 피아노가 힘차게 연주하며 시작되는 이 악장은 서정적이면서도 시종 기쁨이 흘러 칩니다.

2악장 아름다운 목가 풍의 분위기 속에서 중간에는 첼로가 낭만적인 선율을 연주합니다.

3악장 전체적으로 밝고 힘찬 악장입니다. 화려하고 환희에 넘치는 마무리에는 클라라를 향한 슈만의 사랑이 묻어나옵니다.

비록 모노이지만 비운의 피아니스트 Dinu Lipatti의 전설적인 명 연주를 Ansermet가 지휘하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