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둘째 주 찬송/ 35장(통일50장) 큰 영화로신 주
찬송 시 ‘큰 영화로신 주’는 프란시스(Benjamin Francis, 1734-1799)목사님이 지었습니다. 웨일즈 태생으로 침례교 대학을 나와 소드버리(Sodbury)에서 목회를 시작하여 호스리(Horsley)교회에서 42년간을 시무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시를 썼는데, 6편의 영어찬송가와 194편의 웨일즈 어 찬송시를 지었는데, 우리 찬송가에는 이 한 편만 실려 있습니다.
찬송 시는 1787년 립폰(John Rippon, 1751-1836)이 출간한 영국의 유명한 침례교 ‘찬송가’(A Selection of Hymns)에 수록되면서부터 널리 불려 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I’m sweet exalted strains”로 시작되는 6절 가사이었는데, 1절과 2절은 뺀 나머지 가사만 찬송가에 실렸습니다.
곡명 LENOX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브리지워터(Bridgewater) 태생인 에드슨(Lewis Edson, 1748-1820)이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원래 대장장이였다고 해요. 그래도 성악에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 평생 동안‘위대한 가수’라는 별칭을 가지고, 여러 도시를 다니며 노래하며 봉사를 했습니다.
그가 지은 찬송으로는 BRIDGEWATER와 GREEN FIELD란 곡도 유명한데 우리 찬송가에는 이 한 곡만 실려 있군요. 멜로디는 쓰여 있는 바와 같이 1782년에 뉴잉글랜드 ‘가창학교’(Singing School)교사인 조세린(S.Jocelyn)이 출간한 ‘성가집’(Choirister’s Companion)에 처음 발표되었는데요, 이때의 곡은 후렴에서 각 파트가 서로 모방하고 다시 화성으로 합쳐지는 푸가형식(fuguing tune)의 대위법적인 곡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1908년에 편찬된 ‘찬숑가’에 처음 수록되었습니다.
나는 이 찬송을 부를 적마다 첫 대목의 “오셔서”라는 단어가 머리에 맴돕니다. 우선 성경 맨 마지막 책 마지막 절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20)라는 말씀이 생각나고요, 찬트의 ‘오소서 성령이여’(Veni Sancte Spiritus, 혹은 Veni Creator Spiritus)나 ‘곧 오소서 임마누엘’(Veni Emmanuel)의 라틴어의 VENI가 생각나서이지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처음 침례교 찬송가에 실을 때 원 가사도 “오소서, 영광의 왕이여”(Come, King of Glory, come)로 되어있었다는군요.
그 후 스펄젼 목사님이 “크신 시온의 왕이여, 지금 오소서”(Great King of Zion, come now)로 수정하여 그의 찬송가에 실었고, 후에 미국 통일찬송가 위원회에서 지금의 “큰 영화로신 주”(Great King of Glory, Come)로 바꾸었습니다.
영어로 단음절인 ‘오소서’의‘Come’이나 ‘큰’의‘Great’ 모두 좋은 가사라고 생각됩니다. 일반적인 곡이라면 넷째 박의 4분음표로 시작되겠지만, 이 곡에선 여린박의 음표를 앞으로 한 박을 당겨 2분음표로 만듦으로서 이 가사를 강조합니다.
마치 베토벤이 ‘기뻐하며 경배하세’(64장, 통13장)에서 “변함없는 기쁨의 주”의 ‘변’을 당김으로 강조하는 것과도 같죠. 긴 음표인 “큰”에서 주님의 광대함을 맛볼 수 있지 않습니까? 원래의 가사인 ‘Come’도 그럴듯하고요.
이 찬송은 예배의 참 모범을 보여줍니다. 예배의 원리가 이 찬송에 다 나타나고 있어요. 즉 ‘계시(啓示)와 응답(應答)’, ‘영(靈)으로 드림’, ‘공동체로 드림’, ‘영광스런 의무’가 그것인데요, 이 모든 내용이 찬송 가사에 다 나타나 있지요.
1절에서 “이 곳에 오셔서”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이 모인 자들로”에선 공동체를, 2절의 “이 백성 기도와 예물드림”에선 ‘부르심에 대한 응답적 행위를, 그리고 3절과 4절에선 변함없는 주님과의 약속 등을 다짐하니까요.
9월 셋째 주 찬송/ 통일 54장 하나님이 친히
찬송 시 ‘하나님이 친히’는 독일 경건주의 후기의 대표적인 찬송가 작가이며 신비주의자인 테르스티겐(Gerhard Tersteegen, 1697-1769)이 지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루터교 가정에 태어났지만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는 바람에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젊어서부터 섬유직종의 일을 하다가 드디어는 독립하여 그 사업을 했습니다.
그는 청년 시절 구원의 확신을 얻고, 그 때부터 평생 하루 10시간은 생업을 위해 일하고, 2시간은 기도, 2시간은 글을 쓰거나 이웃들과 신앙문제를 토론하는 등 주님을 위해 살겠노라고 혈서로 서명을 하면서 하나님께 서원을 했다고 합니다.
독신으로 지내면서도 그가 사는 집은 ‘순례자의 초막’(Pilgrim’s Cabin)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언제나 간증과 신앙적인 대화를 위하여 모이는 사람들로 북적 거렸고, 결국에는 그의 생업도 그만두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테르스티겐은 성직자가 아니면서도 당시 개혁교회의 영적지도자로서, 또 찬송가 작가로서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가 지은 찬송 시는 모두 568편이나 되는데, 우리 찬송가에는 이 한 편만 수록되어 있지요.
찬송 시는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Gott ist gegenwärtig)라는 제목인데, 1729년 그가 편찬한 책인‘Geistliches Blumengartlein’에 발표하였습니다. 그의 삶을 알고 나니, “하나님이 친히 여기 계시오니”라는 찬송가사가 마음에 들어오지요?
독일어로 된 이 찬송은 1739년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목사가 “하나님이 친히 여기 계시네. 이제 우리 그를 경배하세”(God Himself is present, let us now adore Him)라는 영어 가사로 번역하였고, 한편 모라비안 감독인 포스터(William Foster, 1760-1835)나 머서(William Mercer) 같은 분들도 번역하여 여러 번역 시로 불렸습니다.
우리 찬송가의 “비파소리 높이 울려 퍼지는 데”의 2절은 테르스티겐이 작시한 게 아니고, 커핀(Henry Sloane Coffine)이 1940년에 작시해서 붙여 넣은 것입니다.
곡명 WUNDERBARER KÄNIG는 독일어로 ‘놀라우신 왕’이란 뜻인데, 이것은 독일 찬송 “Wunderbarer könig, Herrscher von uns allen”의 첫 단어를 딴 것입니다.
찬송가에는 1680년에 펴낸 ‘네안데르의 찬송곡집’(J.Neander’s Bundes-Lieder)에 처음 발표되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학자들은 편집자인 네안데르(Joachim Neander, 1650-1680)의 작곡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네안데르는 독일 개혁교회의 대표적 찬송작가이고, 경건주의 신앙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이지요.
“하나님이 친히 여기 계시오니”의 첫 구절은 모세가 들었던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출애굽기 3;5)라는 말씀이 새삼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서있죠.
교회 성전 안에서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길을 가거나 밥을 먹거나 우리가 거하는 현장은 어디나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땅입니다. 신을 벗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