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구입 모금 활동과 동역자들

입항하는 선박에 방문하면서 중국 선원 그리고 러시아 선원을 많이 만나 주님의 오묘한 섭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성경책을 들고 중국에 들어갈 수 없었던 상황이니까 주님은 이렇게 선원들을 이곳에 보내시어 성경을 전해줄 수 있게 하시고 하나님을 접할 수 있게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또 다른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오는 선원들도 성경책 갖기를 원했으며 특히 어린이 성경을 원했다. 성경을 준비하기 위해선 경비가 필요한데 항상 재정적으론 어려움이 있던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선교지에 찾아가서 역경가운데 말씀을 전하는 자도 있는데 이곳에 찾아오는 자들에게 말씀 전하고 성경책을 주기위해 어떤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기도하였다.

1990년 후반부터 타우랑가의 폴리텍에서 한국에 영어연수 홍보를 시작한 후 영어 공부를 위해 세 자매가 비슷한 시기에 타우랑가로 오게 되었다. 오경주, 구은경, 윤은경 그리고 나중에 합세하게 된 권재순 네 자매의 예수님 영접과 믿음 생활 헌신으로 선원 선교센터는 좀더 활기를 얻게 되었다.

하이스쿨 유학생도 있고 청년 유학생들의 수가 늘어 나면서 학생들과 선식 비즈니스를 하던 집사 내외 분을 포함해 찬양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타우랑가 근처의 뉴질랜드 교회를 순회하며 주일 저녁예배를 인도하고 찬양, 무용, 장기자랑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연하며 성경 구매를 위한 모금을 하게 되었다. 모금의 용도는 러시아 어린이 성경구입이었으며 소개하는 곳마다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어 보람을 느꼈다.

처음으로 1991년 7월28일 테 아와무투의 세인트 앤드류장로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인도하였다. 예배가 끝나니 한 성도가 간증을 하면서 갈릴리 성가대의 뒤에 서 계신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고 찬양 소리가 천사들의 소리같이 들렸다며 춤을 덩실덩실 추며 좋아했던 일도 있었다.

테 아와무투교회를 찾아서

헌금 시간을 별도로 정하지 않고 접시를 나누어 들고 있으면서 바깥으로 나가는 입구에서 성경구매 선교헌금의 명목으로 헌금을 받았다. 그 이후에도 타우랑가 시내, 로토루아, 테 아와무투, 엣지콤, 카웨라우, 케임브리지 등 지역의 교회를 돌며 예배 인도와 찬양 그리고 한복을 입고 부채춤 등의 공연을 하였다.

어떤 교회는 150여 명이나 모였는데 헌금은 $35이 모아졌고 거기에 교회재정 $15을 합해 $50을 전해 받은 곳도 있었다. 그러나 헌금의 액수에 개의치 않았다. ‘성경 한 권에 NZ$38 이면, 한 권 하고도 $12이 남는 계산이니 감사할 뿐이었으며 나 자신은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찬양대원들은 찬양과 율동을 준비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의 상급을 모두 받았던 것 같다.

아스펜 홈에서 부채춤 선보여

1991년 10월에는 양로원으로는 처음으로 타우랑가의 아스펜 홈을 방문하여 말씀과 찬양을 전하고 집사람이 한국서 배워 온 부채춤으로 한국미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전하였다.

그 후에도 웰컴 베이의 그린우드 파크 빌리지 등 여러 양로원을 방문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였다. 처음엔 성경책 구매모금으로 시작된 양로원 방문이었지만 세상 삶을 하나씩 정리해가는 육체가 연로하신 분들께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게 더 큰 목적과 기쁨이 되었다.

성경 구매를 위한 필요한 경비는 예상치 못한 다른 곳에서 필요할 때마다 충당되곤 하였다.
영어 공부하러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공부하러온 활기찬 젊은 전도사 가족 덕분에 더 수준높은 찬양과 그룹 부채춤, 율동도 프로그램에 추가하게 되면서 갈릴리 찬양대가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되었다.

타우랑가로 유학을 와서 예수님을 만나고 지금도 믿음 생활 잘하며 종종 목사님 하면서 카톡과 전화로 연락을 줄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들 뿐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사역을 같이 감당해준 집사들, 미션센터를 거쳐간 두 분의 전도사, 청년들과 고등학생들을 하나님 나라 사역의 동역자로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며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소련 선박에서 예배와 성경책 전달
구소련연방이 분해되었다. 1991년 구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물러나고 새로이 보리스 옐친이 정권을 잡으며 국기가 러시아 국기로 바뀌었다. 어느 날 갑자기 소련 선박의 감시원 제도의 하나인 부선장 제도가 없어졌다.

러시아 선박에 승선하던 치과 의사가 미션센터를 방문하였을 때 출항하기 전에 선상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고 권면했다. 그 말이 실현되어 저녁 7시에 미션센터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하였으며 7명의 선원이 예배에 참여한다고 연락이 왔다. 예배 인도자는 세인트 앤드류의 담임목사였으며 찬송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을 불렀다. 기도는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이 예배의 일부를 감당하게 함으로 직접 은혜를 받게하였다.

예배가 끝난 후, 선원들은 선박으로 돌아갔다가 미션센터로 생수와 초콜릿, 식빵, 치약 등을 가지고 왔다. 식빵은 따뜻한 것이었다. 금방 만든 것이다. 눈물로 기도드렸다. 생수는 우리 입에 안 맞는 쇠의 녹 맛이 났지만 마셨다. 중생을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마시자. 러시아 선원들에게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이것을 계기로 입항하는 러시아 선원들과도 지속해서 예배를 드렸다. 러시아 어린이 성경을 포함해서 2,000여 권이 러시아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 후엔 7개국의 선원이 참여하는 다국적 선원 예배로 만들어 갈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