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초기화(Spiritual Reset)

고창범<선한이웃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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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2장2절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무 문제가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불가할 듯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혹시 문제없다고 하는 본인이 문제를 일으키고 야기하고 있는 사람은 아닌지 진지하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남의 흉을 보고 욕을 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욕쟁이 할머니들이 오래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 서신서를 받아보는 공동체들(고향을 떠나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투니아 등)은 흩어져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들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무슨 말을 전하려고 했을까요? 당연히 위로와 격려를 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보냈을 것입니다. 실제 삶의 현장에서 고난과 역경으로 삶과 신앙이 바닥부터 흔들려 오는 이들에게 어떤 위로와 격려가 힘이 될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의 빈번한 문제로 인하여 자주 다시 시작(Rebooting)을 했었습니다. 그런 중에 땅에 떨어뜨려 스크린까지 파손이 되었습니다. 기회(?) 다 싶어 바꿔보려던 중 지인의 정보로 저렴한 가격에 스크린을 수리했고 급기야 재부팅보다 근원적 해결법인 공장 출고 상태로 초기화(Reset)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문제 많던 스마트폰이 거듭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이 원리가 우리의 삶과 신앙에도 접목이 될 수 있겠다는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과 신앙의 영역에서, 위기와 함께 흔들림과 의심과 무력감 같은 영적 침체나 위기가 있을 때, 여러분에게 영적 초기화를 제안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리고 어떤 모습일까요?

순결한 말씀으로(베드로전서 2:2)
순결한 말씀을 사모함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순결의 기준은 공정하고 일정한 측정이 가능한 것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말 시작마다‘내 생각에는’으로 시작하는 분을 본 경험이 있습니다. 본인 생각에 옳고 그름이 정해지는 분입니다. 가정이나 나라도 본인의 생각이 기준입니다. 심지어 성경 말씀도 어떤 부분은 잘못된 것 같다고 합니다.

성경은 순결하고 순전한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증거합니다. 순결한 말씀으로 자아성찰, 즉 엑스레이를 찍을 때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올바른 자아 발견이 있고, 자아 개발이 되며, 이 위에 성숙한 크리스천이 세워질 줄로 믿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이 있습니다. “미친 짓이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무슨 의미입니까? 잘못된 동기 혹은 자아를 고집하는 한 결코 직면한 영적 침체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과감히 순결한 말씀으로 초기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순결한 말씀이 제시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새 생명으로(베드로전서1: 3)
즉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신 거듭난 생명(New Birth)으로 복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혹시 거듭난다는 의미가 너무 막연하게 느껴지십니까? 묻겠습니다. 하나의 생명체인 난자와 정자가 만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한 생명이 생깁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한 인간과 말씀(즉 하나님의 메시지 혹은 복음)이 만나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한 영적 생명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거듭남 혹은 새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괴테의 말이 생각납니다. “먼지도 태양을 만나면 빛을 발한다.” 우리는 발광체가 아닌 반사체입니다. 생명의 근원 되시는 주님을 만날 때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이 새 생명의 능력을 가지면 4가지 기가 가능해집니다. 기도할 수 있어 기도하니 기대함이 자라나고, 기대하니 기쁨이 넘치고, 그렇게 충성하니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떤 상태로 초기화 되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마음으로(빌립보서2: 5)
우리들의 마음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영성에 대하여 게리 콜린스는 “성령 안에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유진 피터슨은“자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성육신 하나님 되시는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으로 정의해도 좋을 듯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낮아지는 겸손을 몸소 보이신 분이십니다. 그 모범을 따라,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것이 초기화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박종호 씨의 찬양 중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 대한 찬양이 있습니다. 제목이 ‘바닥에 새긴 사랑’입니다. 그 가사 중에 ‘사람들은 나의 죄를 보고 주는 나의 아픔을 보네, 그들은 내게 손가락질 하고 주는 나를 감싸주네, 죄 없는 이가 먼저 치라 바닥에 새긴 사랑, 십자가에 다시 새겨 나의 생명을 구하네’이 가사가 운전 중에, 예수님의 마음을 다시 한번 헤아리게 하였습니다. 내 마음으로는 도무지 불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으로 보면 직면한 침체나 위기 또는 고난과 문제가 다르게 해석이 되는 것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형제와 자매의 아픔이 보이고 감싸 안을 수 있는 가슴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나의 스마트폰은 속도도 그렇고 사용감도 좋아져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없는 돈을 들여서 새로운 폰을 구입하지 않아도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지금도 만족스럽게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영적인 문제들도 초기에는 재부팅(70% 이상 해결됨)으로 하다가 보다 근원적인 해결이 필요할 때는 ‘초기화 버튼(Reset Button)’을 누르는 용기와 결단이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도전하며 초청합니다.

순결한 말씀을 사모할 때, 이미 받은 구원(칭의)은 확신 가운데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리고 성화를 통해 받는 구원이 보다 명확히 완성되어져 갈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