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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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어딜 가나 노숙인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사회에 우린 살고 있다.

2015년도 해비타트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16억이 넘는 사람들이 집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열악한 환경이 주는 부작용은 고스란히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화려해 보이는 서울이나 잠잠해 보이는 오클랜드라도 노숙인들은 존재한다. 또한 그들이 함께 모여 사는 ‘쪽방촌’은 나라마다 다른 표현을 쓰지만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쪽방촌

뉴질랜드에도 쪽방촌이라는 개념의 ‘캐러밴 파크’들이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컨테이너 박스나 캐러밴을 개조한 작은 공간에서 산다. 주거비를 낼 수 있는 정도의 돈을 벌거나 정부 보조금을 받지만, 거리 노숙인이 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늘 살아간다.

한국에서도 쪽방촌 두 군데를 방문했었다. 인천과 서울역 근처에 있는 쪽방촌. 그곳에서 사역하시는 분들과 만나 그곳에 대해 많이 들었다. 뿌리가 한국인이어서 그런 걸까, 한국의 쪽방촌에 대해 듣고 거길 둘러보면서 마음 한편에 슬픔과 답답함이 계속 자리 잡았다.

노숙인들을 마주하고, ‘가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린 많은 때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뉴질랜드에서도 취약계층 및 노숙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을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태도를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돕는 입장’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좋은 문화를 공유하며, 좋은 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서울역 쪽방촌을 방문했을 때 선물 받았던 ‘홈리스 생애 기록집: 소리 없는 이들의 삶의 기록’이라는 책의 문구가 생각이 났다.
“나는 ‘가난’과 만날 때 무엇으로 채울까를 고민하기 전에 존재에 대한 존중이 먼저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

‘채움’이라는 것으로 인해 ‘존중’이 무시되는 경우를 봤다. 사실 노숙인들은 함께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내기까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국가의 시스템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삶을 함께 살아가 줄 수 있는 사람들까지. 먹고 입을 게 주어진다고, 재정을 준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계속해서 고민이 된다. 어떻게 그들과 ‘함께’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리커넥트가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삶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살아갈 수 있는 자그마한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라누이 도서관에서 취약계층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뿐 아니라, 노숙인이 가르치는 기타 수업에도 함께하고 있다.

뉴질랜드 노숙인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걸 안다. ‘게으르고, 무기력하고, 돈을 주면 엉뚱한 곳에 돈을 쓰는 사람.’ 그런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정말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기타 선생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찾고 있다. 우린 기타를 배울 수 있음에 즐겁고, 그 선생은 기타를 가르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다.

기타클래스

작지만 서로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시내에서 노숙인을 지나갈 때 그저 동전 한 닢을 던져주기보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며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는 것, 또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먹을거리를 사 그들과 앉아 식사를 나누는 것. 생각을 전환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가 아니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좀 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인터뷰 도중 어떠한 제도적 지원이나 변화를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의외에 대답을 들었다. 자원 단체에서 사람을 존중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우선이었다. 국가나 교회 등의 단체에서 물질적인 지원을 했으면 하는 요구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빗나간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질문이 부끄러웠다. 구술자는 밥보다 존중이 중요했던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인 모멸감을 무엇보다 싫어했다…… 나는 ‘가난’과 만날 때 무엇으로 채울까를 고민하기 전에 존재에 대한 존중이 먼저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홈리스 생애 기록집: 소리 없는 이들의 삶의 기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