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

“제가 80일 이내, 그러니까 1920시간, 다시 말해 11만5천 200분 이내에 세계 일주를 한다는 걸 놓고 2만 파운드를 걸겠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까?”
“받아들입니다.”
스튜어트, 폴런틴, 설리번, 플래너건 랠프가 대답했다.

“오늘이 10월 2일 수요일이니까, 12월 21일 토요일 저녁 8시 46분까지 리폼 클럽 휴게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필리어스 포그는 하인 파스파르투와 함께 곧바로 기차를 타고 출발했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Jules Verne)이 1873년에 쓴 어드벤쳐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Around the World in 80 Days)의 본격적인 여행기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영국 런던에 사는 자산가 필리어스 포그(Phileas Fogg)다. 그는 시간과 숫자 관념이 철저한 그야말로 수학적인 사람이었다. 면도할 물의 온도가 평소와 1도만 달라도 하인을 해고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클럽 사람들과 사흘 전 영국의 대형 은행을 턴 강도 사건을 화제에 올리게 되었다. 강도가 벌써 해외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언급되었다.

그때 포그는 이젠 80일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클럽 사람들과 2만 파운드의 거액(오늘날 1~2십억원의 가치)을 걸고 내기를 하기에 이른다.

포그는 새로 들어온 하인 파스파르투(Passepartout)와 함께 세계일주 여행을 떠난다. 그가 계획한 세계 일주 코스는 런던을 출발해 파리-이집트 수에즈 -예멘 아덴-인도 뭄바이, 캘커타-싱가포르-홍콩-일본 요코하마-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으로 갔다가 다시 영국의 리버풀을 거쳐 런던으로 되돌아오는 긴 여로였다.

그들의 여행에는 끊임없이 뜻밖의 변수들이 끼어들었다. 무엇보다 큰 변수는 포그를 은행 강도로 의심하여 여행 기간 내내 쫓아다닌 픽스 형사(inspector Fix)였다.

또 다른 큰 변수는 언론의 오보였다. 영국에 보도된 인도 횡단 철도의 완공 기사가 실은 잘못된 정보였던 것이다.

때문에 할 수 없이 코끼리를 타고 정글을 지나던 포그 일행은 남편이었던 늙은 추장의 장례식에서 산 채로 화장을 당하게 된 여인 아우다(Aouda)를 구해주게 된다. 이후 아우다는 끝까지 여행에 동행한다.

그 밖에도 돌발변수들이 계속 일어난다. 미국 횡단 중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대륙횡단 기차를 습격하고, 기차를 놓친 포그 일행은 돛 달린 썰매를 타고 이동한다.

리버풀로 갈 땐 배의 연료가 떨어지자 타고 가던 화물선의 나무란 나무는 죄다 석탄 대신 때어가며 항해해야 했다.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세계 일주를 다 마치고 리버풀에서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막 타려 할 때였다. 그 마지막 순간에 그만 픽스 형사가 포그를 은행강도 혐의로 체포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진범이 3일 전에 이미 잡힌 것으로 밝혀진다.

“포그씨…포그씨, 죄송합니다. 너무나 닮아서 그만…3일 전에 도둑이 잡혔답니다. 당신은 자유입니다.”

그렇게 풀려나긴 했지만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런던에 5분 늦게 도착했다. 포그는 이로써 내기에서 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마지막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 반전의 계기는 여인 아우다가 제공한다. 그녀는 내기에 져서 재산을 몽땅 잃게 된 포그에게 오히려 청혼을 했다. 돈이 아니라 포그 자신을 사랑한 때문이다.

근데 파스파르투가 목사에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러 갔을 때, 목사는 다음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주례를 해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 오늘이 토요일? 그때서야 파스파르투는 자신들이 동쪽으로 날짜변경선을 넘어오는 바람에 하루를 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파스파르투에게서 그 얘기를 들은 포그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려가 극적으로 약속시간 3초 전에 리폼 클럽에 들어간다. 마침내 그는 내기에서 이겼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까지 얻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포그는 인간으로서 최고 수준의 치밀함과 정확성을 대변하고 있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이를 타개하는 담대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80일간의 세계 일주란 목표는 그런 포그조차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론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작가는 도처에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이 도사리는 여행길에서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단 3초의 면도날 같은 차이로 성취해내게 이끈다.

실로 잠언 16장9절의 교훈을 생생하게 배우게 하는 실감나는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프랑스의 수학자 파스칼(Blaise Pascal)은 그의 기독교 변증집 팡세(Pensées,“생각”이란 뜻)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게 되면 교만해질 수 있다.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고도 하나님을 모른다면 절망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의 비참함과 하나님을 동시에 아는 균형을 갖게 된다.”

그렇다. 신앙은 우리 인생이 스스로의 무능과 한계에 절망할 때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이다.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우리의 입술에서 시편 115편1절의 고백을 절로 이끌어낸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이 소설은 겉으로만 보면 돈이 여행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돈내기로 시작된 세계 일주 여행이 위기 때마다 돈에 의해 난관이 돌파되다가 마침내 포그가 내기에 이김으로써 여행 중에 썼던 막대한 돈을 되찾게 되었다는 줄거리로 요약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의 속 모습은 그렇지 않다. 여기엔 돈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본질적 가치가 심겨져 있다. 특히 주인공 포그에 못지않게 하인에 불과한 파스파르투의 존재가 부각되어있는 점이 그러하다.

파스파르투는 이 여행의 시작 때부터 끝날 때까지 주인공 포그의 분신 같은 역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지막에 날짜변경선으로 벌게 된 하루를 포그에게 안겨다준 장본인도 파스파르투였다. 파스파르투는 포그의 하인이면서 동시에 동역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포그와 파스파르투의 관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쏙 빼닮았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은 또한 교회와 이웃을 섬기며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을 때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정체성을 갖는다.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인생길은 나그네 길이다. 이 나그네 길을 우린 포그의 하인인 파스파르투와 같이 하나님의 종으로 달려간다. 파스파르투가 그랬듯 우리의 갈 길은 하나님이 가시고자 하는 그 길과 정확히 같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대로 우리의 인생을 ‘80일간의 세계 일주 처럼 반드시 목표지점에 이르게 하시어 친히 목적을 성취하실 것이다. 그 섭리를 신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곧 신앙인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