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여! 교회로 회복합시다

조충만 목사<오클랜드한인교회>

그리스도의 교회! 교회는 참으로 신비한 공동체이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되어 끊임없는 박해와 탄압 속에서도 여전히 그 본질을 상실하지 않은 채 오늘도 계속 새롭게 탄생, 발전, 부흥, 확장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교회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곳이어야 한다. 교회에서 우리는 충만한 사랑을 느끼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용기를 얻고,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교회를 왜 세워 주셨는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떠나시면서 성령을 보내 주신 이유는, 이 지상에 교회를 세워 잃은 양들을 구원하라고 하셨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영광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뜻을 펴시는 지상의 현장이며,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높임을 받으시는 거룩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언제나 그 시대의 사람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 파악하여 그 뜻을 펼 수 있게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요즈음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교회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인지 다니던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가나안 성도’들이 있다. 그들은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라고 말한다.

이전에 목회자나 다른 성도들에게 받았던 상처 때문이라고 말한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목회자로서 하나님께 죄송하고 송구스럽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일 뿐 아니라 ‘교회의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가 교회에 속한 사람이어야 하고 교회에 헌신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교회를 세우셨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보면 만족하지 못할 뿐 아니라 환멸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이 교회를 포기할 수 없다. 여전히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교회를 어머니같이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교회는 우리의 포기할 수 없는 꿈이어야 하고 끓임 없는 헌신이어야 하며 지속적인 개혁과 경신이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신앙공동체이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래서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교회를 “교회는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라고 정의한다. 교회가 교회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임재’여부에 달린 것이다.

건물이 웅장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고, 그리스도의 주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곳은 교회일 수 없다.

얼마나 모였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그리스도의 임재, 그리스도의 주권이 충만한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행전 22:7).

분명 사울은 교회 공동체를 핍박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마치 자신처럼 여기시고 “네가 나를 박해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 그분의 현존을 드러내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 공동체이다
교회는 그의 ‘몸’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 그분의 뜻을 실천하고, 실현하는 공동체라는 말이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구원이요, 선교요,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다. 곧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이다(디모데전서 2:3).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공동체’여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교회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상담소도 아니다. 교회는 병원도 아니고 사회봉사 기관도 아니다. 인권 단체도 아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곳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기도하면서 2천 년 전 예수 십자가 부활 사건을 오늘 나의 십자가 부활 사건으로, 나의 구원 사건으로 경험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풍성케 하는 축복 공동체이다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이다. 교회가 세상을 위한 축복 공동체라는 뜻이다. 왜 교회가 축복의 근원지일까? 교회의 주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축복하시고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시기에 교회로부터 축복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교회가 축복 공동체임을 시편 기자는 상징적으로 이렇게 표현한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편 133:3)

인류 역사를 볼 때 그 나라의 전성기는 바로 교회가 부흥될 때였음을 알 수 있다. 교회가 부흥되어 질 때 나라와 민족도 더욱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미성숙으로 인하여 안타깝게도 교회답지 못한 교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여전히 세상의 희망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흘리신 땀방울과 피눈물, 무너질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통곡하신 주님의 눈물, 십자가 위에서 버림받은 아들이 아버지께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하고 부르짖은 눈물,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이 눈물 위에 세워졌다.

고난의 눈물 없이 든든하게 세워지는 교회를 본 적이 있는가?
2천년 교회 역사를 보면 고난과 눈물이 풍성할 때 교회의 참 모습이 드러났다. 순수한 복음은 세속적인 번영이나 성공과 안락함을 추구할 때보다는 고난과 시련의 시기에 더욱 강하게 그 능력을 나타내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억하고 주님과 함께 그 길을 담대히 걷는 제자의 삶이 풍성할 때 교회는 진정 교회다웠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을 외면하고 그리스도를 이용하여 영광스런 자리만 탐내던 시기의 교회는 즉시 세속화되었고 오히려 세상보다 더 썩는 냄새만 났다. 하나님의 교회라 부르기 두렵고 부끄러운 일들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사실 그것은 교회가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아니고 머리가 아니며, 그리스도 대신 사람들이 주인이 된 순간 더 이상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